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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Hearted Jul 29. 2020

교사가 공무원이 아니라면

우리 팀에서 작년부터 준비했던 새로운 프로젝트가 최근에 NSF 펀딩 지원을 받게 되면서, 앞으로 5년 정도 제대로 깊이 파고들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5년째 추가 펀딩을 받으면서 연구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프로젝트는 교실에서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초점을 두고 디지털 학습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인데, 아직까지는 유일무이한 형태이자 굉장히 매력적인 가상공간이다. 연구가 조금만 더 빨리 진행되었더라면 지금과 같이 온라인 개학이 불가피한 시국에 수많은 학교의 수업 운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우리끼리 참 아쉬워한다. 지난 4년간 필드 테스트를 통해 지속적인 이론적,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해 왔고 올 해는 연구 결과가 쏟아질 것 같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초점을 두고 교사 교육 혹은 교사 지원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다. 슬슬 본격적으로 5개년 계획과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첫 회의를 가졌고, 나는 교사 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연구원 자격으로 화상 미팅에 참석했다. 그 미팅에는 디렉터 두 분이 초대되었다. 두 분의 디렉터가 맡고 있는 학교의 교사들과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의 필드 테스트를 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학교 단위나 지역구 단위에 수학 교과 디렉터 혹은 코치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미국 학교에서의 수업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전적으로 수업을 하는 교사에게 달려 있기에, 디렉터는 진도, 평가와 같은 사항을 결정하여 학교나 지역의 전반적인 통일성을 유지하는 역할도 하고, 교사가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한다. 교사 개개인의 수업 계획을 함께 짜기도 하고, 수업 중 발생한 고민을 듣고 조언을 해주기도 하는, 그런 조력자. 미팅에 들어오신 두 분은 이렇게 대책 없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당장 가을 학기 개학을 앞두고 코로나 심각성 단계에 맞추어 네 가지 학사 운영 계획안을 짜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온라인 수업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 같은 분위기라, 매주 스터디를 통해 교사들이 온라인 수업으로의 전환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에게 위험하고, 이런 상황에서 교사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두 분의 디렉터가 새 학기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멍하게 듣고 있으려니, 한국에 있는 나의 교사 친구들이 떠올랐다.



 

나는 2015년까지 학교에서 근무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니까, 지금의 공립학교 분위기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다를 것이고 다르기를 바란다. 그때 내가 심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 년 단위로 돌고 도는 똑같은 업무인 것 같은데도, 학기 초와 학기 말에는 어김없이 몸도 마음도 바빠서 죽을 것만 같았다. 수업이 많은 날이나, 출장 때문에 수업을 미리 바꿔서 해야 하는 날에는 하루에 수업이 5, 6개인 날도 있었고, 아침 자습 지도, 점심 급식 지도, 종례 및 청소 지도까지 하고 나면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체력이 바닥나 있기 일쑤였다.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서 발견되는 수백 가지 경우의 걱정거리들, 학부모님들의 다양한 기대치, 동료 교사 사이의 묘한 갈등, 교장 교감의 리더십과 교육청의 난데없는 정책들이 돌아가며 마음을 고되게 하기도 했다. 더욱이, 수업이 없는 빈 시간에 수업 자료를 만들고 교재 연구를 하면 "여유롭게 그럴 시간이 있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할 만큼 수업보다 업무가 우선시 되었다.  


맥주 한 잔, 소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고 싶은 퇴근길, 친구들을 불러내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일반 회사에 가면 안 힘든 줄 아니? 어느 직장, 어느 부서에 들어가더라도, 다 똑같이 겪는 거야. 세상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시대가 그래. 다 똑같이 힘들어"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공감했다. 어른이 되어 사회에서 한 역할을 맡아서 일을 한다는 것이 이만큼의 책임감을 요하는 것이었구나,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한 친구들이건 대충 아는 지인들이건,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가 비슷하게 힘드니 너도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기운 내"와 같은 응원이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은 종종 "배부른 소리야. 다른 회사에 취직해봐. 더 힘들어. 니가 선생님이라서 세상 물정 모르고 복에 겨워서 불평하지" 같은 말을 덧붙이곤 했다. 연배가 좀 높으신 지인분들은 "딴 데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라고 충고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교사 친구들과 만날 때면, 옆 테이블에서 우리 이야기를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고, 학교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이상했다. 누구나 똑같이 겪는 일이고, 세상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시대가 그런 거면, 교사도 힘들 수 있는 거, 아닌가. 누구나, 퇴근길에 허름한 포장마차에 들러 꼰대 같은 부장님들 욕도 하고, 하는 일에 성과가 나지 않아 괴롭다고 괜한 주정도 부려보고, 그렇게 그치그치? 맞아 맞아 맞장구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러는 거면, 교사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왜 교사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 힘들지 않다고 여겨지는지, 왜 교사는 힘들다는 말을 하면 배부른 소리 하는 게 되는 건지, 이상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도 못 하나. 억울했다.


2018년, 사직서를 냈다. 그 절차는 생각했던 것보다 간단했다. 교장 선생님께 예의를 갖춘 인사를 드리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 나는 훌라 훌라~ 짱구춤을 추면서 교육청과 학교 업무에 대한 비밀 엄수에 동의하는 사인을 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 그때 술잔을 기울이며 교사의 투정을 타박하던 그 사람들은 "공부하느라 힘들지? 건강 챙겨"라고 나의 안부를 물어 온다. 이상하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그때가 더 힘들었는데.




수업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서, 수업의 모든 측면에 대해 조언을 구할  있는 디렉터나 코치를 바로 곁에 두고 있는 미국의 수학 교사들은 수학 교과 지식이 약한 경우가 많아서 따로 연수를 받기도 한다. 앞서가는 미국의 교육 연구 수준을 생각하면 의외다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교과 지식이든 수업 방식에 대한 지식이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주변에 있으며, 교사의 인권을 내세워 큰소리   있고 보호받을  있다. 아니, 큰소리치기 전에 기본 인권이 보호된다. 적어도, 교사라는 이유로   미움을 받지는 않는다.  눈에는 그들의 당당함이 낯설고, 부러웠다.


미국에서도, 코로나를 최전방에서 맞서 싸워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을 영웅 Frontline Hero이라 칭하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모금 마련 온라인 콘서트도 열리고, 티비쇼에서 특별 코너를 만들어 응원의 메시지도 전하며, 병원 건물 앞에는 "여기 영웅들이 일해요!"하고 커다란 팻말을 설치해 두기도 한다. 가정마다 꼬마들은 택배 기사님에게 전하는 따뜻한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스케치북과 간식을 현관 앞에 내어두고, 맥도날드 같은 드라이브 쓰루 체인점에서는 그들에게 음식값을 받지 않는 이벤트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그런 최전방 직업 종사자에 교사도 포함된다. 


한국의 SKT같은 미국의 통신사 Verizon에서 내보낸 티브이 광고를 보았다. 교사들을 향한 광고였다. 힘드시죠, 이렇게 힘든 시기에 저희가 힘이 되어 줄만한 것은 이것 뿐이네요,와 비슷한 메시지와 함께 교사들을 위한 파격 할인 요금제를 제시했다. 코로나가 끝나도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요금제라고 했다. 내 눈에는 그들이 받는 인정이 낯설고, 부러웠다.


한국에 있는 교사들을 생각한다. 분명 지금도, 카오스 같은 학교 현장에서 앞뒤 없이 하달되는 정책들에 혀를 찰 새도 없이, 기똥차게 세련된 온라인 학습 자료를 만들어 내고 있을 것이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안위와 학습에 마음을 쓰고 있을 것이며, 등교 개학과 온라인 개학에 적절한 수업 방식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교실 수업에서 교사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에 같이 노출되지만 자신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은 애써 숨기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전파자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주말여행도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너무, 힘들 것 같다. 이런 팬데믹 상황이 아니어도 한 여름의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는 일은 힘든데 말이다. 부디, 내가 근무하던 5년 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이 힘든 시기의 우리 교사들이 힘들 때는 힘들다고 말하면서, 술잔 기울여 스트레스 풀어 가면서, 그렇게 버티고 있기를 바래 본다. 미국에서 공립학교를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내가 한국의 교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당신들,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을 만큼, 잘하고 있어요."





내가 교사이던 시절에 종종 생각했었다. 교사가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내가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사람들이 조금 너그럽게 이해했을까. 남들과 똑같이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고, 그러면 토닥토닥 위로받으면서 살아갔을까. 그랬더라면, 어쩌면 나는 사직서를 내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보다 맥주가 더 중하다고 하니, 오늘 퇴근길에는 맥주 한 잔 하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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