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희 May 08. 2024

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가난이었다.

"엄마, 아빠랑 이혼하려고 했었어?" 아들이 넌지시 물었다. 내가 8년 전 쓴 책을 최근에 읽더니 이혼 위기 대목에서 흥미가 당겼나 보다.


"큭큭. 왜? 왜 이혼하려고 했어?"

"음.... 가난해서.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서로 엄청 예민했지."  


그 시절 우리는 시시때때로 싸웠다. 신혼 초엔 '지나가는 여자를 너무 길게 쳐다보는 거 아니냐'라는 둥의 별 시답잖은 이유로 싸웠고, 아기를 낳고 나선 억울해서 싸웠다. 이혼 얘기가 나오기까지 다양한 사건과 이유가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 불화의 배경엔 돈이 없어 쪼들리는 마음이 짙게 깔려 있었다.


신혼 초에 남편과 홍대에서 클럽을 운영했다. 장사가 잘될 때는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불경기가 오고 카드값, 임대료, 이자 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마음이 쪼들렸다. 여유롭지 못 한 마음은 잔소리와 책망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친구를 만나고 오면 어디서 만났는지, 돈은 누가 냈는지? 일거수일투족 간섭하고, '커피를 너무 자주 사 마시는 거 아니냐?' '담배를 끊으면 안 되겠냐?' 시시콜콜 잔소리를 해댔다. 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엔 남편이 자는 모습만 봐도 화가 났다. '이 상황에 잠이 온다고?'


한숨은 나 혼자 쉬지만, 분노의 기운은 그대로 전달되었을 터. 남편은 나를 점점 불편해했고, 나는 그런 그를 원망했다.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 돌렸다. 피해 의식에 절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을까? 나도 이런 내가 싫다. 사랑받는 아내가 되고 싶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든거냐? 라며 울분을 토했다. 술을 자주 취하도록 마셨다. 취하면 울었다. 정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병원은 가지 않았다. 병원비가 아까워서.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사랑이 식었느니 어쨌느니 실랑이할 시간에 돈을 모아. 돈에 대해 공부를 좀 해.”


그럼 서른 한살의 나는 이렇게 말했겠지?

"돈이 전부가 아니잖아. 내가 꼭 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야."


경제 관념이 없는 것에 더해 나에겐 돈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이 있었다. 하루 종일 돈 생각을 하면서도, 돈 생각 하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는.... 뭐랄까? 가난뱅이 선비같은 태도랄까? 다른 주제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도, 돈에 대한 욕망에 관해서는 솔직해지기 어려웠다.


"누가 돈이 전부랬냐? 넌 지금 돈 때문에 힘들잖아. 남편과 너 자신을 들들 볶고 있잖아. 편해지고 싶잖아. 원할 때 여행도 하고, 사람들 밥도 잘 사주고, 메뉴판보며 길게 고민하고 싶지 않잖아. 집도 아름답게 꾸미고, 무엇보다 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라잖아."


“맞아. 하지만 욕망이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불안해. 가난해서 행복하지 못 하면, 부자가 된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젊은 시절의 나에게 당부한다. 그런 걱정은 돈을 벌면서 해도 된다고. 내가 행복해 지는데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 사람인지는 머리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자급자족하며 살래도 쫓겨나지 않고 농사지을 땅이 필요하고, 히피 노마드로 살래도 비행기표 살 돈은 있어야 한다. 돈으로 물건을 사서 쟁이고 사치하라는게 아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돈을 버는 것이다.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은 삶을 잘 살아보겠다는 건강한 의지이다.


40대 후반이 된 나의 욕망은 소박하지 않다.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툇마루가 있는 단층집을 지어 나이 든 부모님이 언제라도 편히 머무실 수 있도록 하고 싶고, 친구들을 초대해 기분 좋게 몇 날 며칠 먹이고 재우며 함께 놀고 싶다. 큰 아들이 뛰는 축구 경기를 언제든 어디든 보러 다니고 싶고, 둘째를 계속 대안학교에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은 낯 선 도시에 머물며 살고 싶다.


그러고보면 욕망에 끝이 없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빚에 시달리지 않고, 따뜻한 집에서,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게 되니 확실히 예전보다 덜 싸우게 된다. 심지어 남편이 빽다방에 갈 때, 스타벅스 가라고  할 수 있는 아내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자가 되고 싶어.'라고 소리내어 말 할 수록, 돈에 대한 집착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욕망을 받아들이고 나니, 욕망에 대한 수치심이 사라지고, 수치심이 살아지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돈은 시간과의 등가교환을 위한 하나의 아이템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짙어졌고, 그래서 돈을 버느라 너무 바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시간을 벌려고 돈을 버는데,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는 모순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어쩌면, 나는 가난 자체보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수치스러워하는 마음 때문에 우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돈보다 고차원 적인 것을 꿈꾸며 살고 싶은 마음.... (돈은 저차원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돈을 너무 밝히면 못 써'라는 마음과 '돈이면 장땡이지.'하는 마음은 결국 같은 수준의 집착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 알것 같다.


돈이 없으면 우울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다. 내가 속물이네 아니네, 비참하네 어쩌네 우울한 마음에 생각의 기름을 붓지 말자. 후딱 털고 일어나 가난을 벗어나는데 집중하자. 아껴쓰고 더 많이 벌자. 살이 쪄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진정한 자존감은 무엇일까 고민할 시간에 살을 빼는 게 낫다. 체질 탓, 야식으로 유혹하는 남편 탓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그냥 덜 먹고 더 많이 운동하면 된다. 그렇게 인생은 단순하다.


고요한 하루, 리즈



매거진의 이전글 슬플때는 명치를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