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생인 나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멋쩍고 창피했다.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라는 둥의 말은 괜히 오글거려 입에서만 맴돌았다. 겸손이 미덕이라 배웠기에 내가 나를 칭찬하는 것에도 인색했다. 현실에 안주하고 노력을 게을리할까 봐 언제나 부족한 점만 바라보고 훌륭한 점은 모른 척했다.
뉴질랜드 3년, 호주 3년 살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칭찬과 감사를 입에 달고 사는 그들의 문화였다.
'You're awesome! 넌 훌륭해."
'Thanks for your help. 도와줘서 고마워"
'I love you mum. 사랑해요. 엄마"
또한 그들은 가족을 칭찬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내 아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내 남편이 얼마나 고맙고 스위트한지 아무렇지 않게 자랑질을 해댔다. 사실 자랑질이 아니라 칭찬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자랑질'이라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따지고 보면, 남들 앞에서 가족 흉보는 것이 더 이상한 건데 왜 나는 칭찬이 더 어색했을까?
한국에서 자식 자랑 남편 자랑은 팔불출로 여긴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가족의 부족한 점을 부각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 '못난 자식, 잘 부탁드립니다.' '이 양반이 좀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 것을 겸손이라 말한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태도'이다. 가족을 깎아내리는 위와 같은 표현을 겸손이라 할 수 있을까? 겸손이라 쳐도 왜 가족의 겸손을 자신이 대신하는가? 우리가 늘 스스로의 부족한 점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이유는 어쩌면 잘못된 겸손 - 자기 비하에 익숙해진 탓일 수도 있다. (라고 근거는 없지만 주장해 본다.)
서구인들의 칭찬 문화가 낯 간지럽고 영혼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 내 입에도 붙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사람들의 칭찬할 거리가 점점 더 눈에 들어왔다. 칭찬은 단점에서 눈을 거두고, 장점에 시선을 두는 행위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대상을 면밀히 관찰해 그 사람의 특별한 점에 조명을 비추는 것. 그래서 칭찬을 상대평가로 할 수는 없다. '네가 쟤보다 낫다.'라는 식의 말은 고유성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일시적인 상태에 대한 평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부족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훌륭하다. 칭찬의 가치는 대상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게 하는 데 있다. 제대로 된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는, 스스로의 가치를 남과 비교해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가 아닌가를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평가에 의존하지 않으니 세상에 자신을 증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경쟁과 상대평가, 서열 문화가 뿌리 깊은 이 나라에서 아이가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크게 하려면 부모인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저,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려고 노력할 뿐이다. 훌륭한 것을 훌륭하다고 말해줄 뿐이다.
아이가 과거의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란다. 자신의 부족한 점만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가 뭐라 하든 자기답게 살고, 자기답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 리즈의 고요한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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