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비와 기숙사비로 총 6715유로를 송금했다.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서진이는 내년 1월, 덴마크 북부 Ikast에 있는 포크 하이스쿨에 가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남은 3년간의 대학 학비 대신 6개월간의 포크 하이스쿨 학비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 후의 행보는 정해진 것이 없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생활비를 벌며, 유럽 어딘가에서 선수로 뛸 수 있는 축구팀을 찾아보겠다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다.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크다.
부모로서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흥미진진, 설레는 마음도 크다. 아마 아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난 10월 덴마크 학교 답사 글을 올린 이후, 포크 하이스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하시는 분들의 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 개인적인 답변을 드리기보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더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될 듯하여 정리해 본다.
포크 하이스쿨은 정확히 어떤 학교인가? 일반 대학이나 어학연수와 뭐가 다른가?
덴마크의 ‘포크 하이스쿨(Folk High School)’은 시험, 성적, 학위가 없는 비정규 기숙형 학교다. ‘삶을 위한 배움(Learning for life)’이 목표이며, 학생들은 3~6개월 동안 기숙사에서 함께 살며 배운다. 대학은 ‘지식을 습득하고 평가받는 곳’, 어학연수는 ‘언어 실력 향상’이 목표라면, 포크하이스쿨은 ‘내가 누구인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탐색하는 학교다. 함께 먹고, 자고, 배우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한 교육 과정의 일부다.
입학 조건이나 시험이 있나?
없다. 성적, 영어 점수, 추천서도 요구하지 않는다. 덴마크 법상 만 17.5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 평균 18세~24세 학생들이 많지만 나이 제한은 없다. 단, 영어나 덴마크어로 수업을 진행하니, 영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해야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갭이어 (Gap Year) 기간에 오는 경우가 많다.
전공이 있나?
덴마크에는 크게 7가지 유형의 포크 하이스쿨이 있다.
일반학교 - 나와 공동체적인 삶을 인문학적으로 탐구
체육. 스포츠 학교 - 축구, 핸드볼, 골프 등 각종 스포츠 분야
예술 전문학교 - 영화, 디자인, 음악 등 예술 분야
라이프 스타일 학교 - 요가, 지속 가능한 삶, 건축, 목공, 요리 등
기독교, 영성 학교 - 명상, 신학 등 삶을 깊이 있게 탐구
시니어 학교 - 50대 ~ 70대 성인 대상
청소년 학교 - 만 16세 ~ 19세 청소년 대상
수업은 덴마크어로만 진행되나?
국제 학생을 위해 영어로 진행하는 학교도 많이 있다. 일부 학교는 덴마크어 + 영어 혼용으로 진행하고, 생활 영어로도 적응 가능하다. 지난달, 학교 답사 방문에서 만난 일본인 학생은 영어 실력이 더듬더듬 수준이었지만, 다들 많이 도와줘서 지낼만하다고 했다. 그녀는 유럽 핸드볼 코칭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고, 포크 하이스쿨에서 영어와 자격증 공부를 동시에 하고 있었다.
주요 커리큘럼?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함께 식사하고, 청소하고, 공동체 행사에 참여한다. 학교의 유형에 따라 커리큘럼과 시간표가 다르지만, 모든 포크하이스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통 일과는 아침마다 ‘함께 노래하기’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유대감을 기르는 것은 모든 포크 하이스쿨의 핵심 목표다.
비용과 기간은?
학교마다 다르지만, 월 1,000~1,200 유로 (160~200만 원) 수준. 학비와 숙식비가 포함된 가격이다. 북유럽의 렌트비와 물가를 감안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12주 ~ 24주 (약 3~6개월) 코스가 있다. 여름, 겨울에 운영되는 1~3주 단기 과정에는 30대~50대 성인들도 많이 등록한다.
외국인 학생의 비율은?
영어 수업을 제공하는 학교의 경우 외국인의 비율은 30~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주로 덴마크 외 지역 유러피안들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학교엔 단 한 명의 동양인 (일본인) 학생이 있었다. 내년엔 아마 서진이가 유일한 동양인이 될 듯하다. 1994년 개교이래 한국인은 최초라고 했다.
아들이 대학 대신 포크하이스쿨을 선택한 이유는?
포크 하이스쿨은 스펙을 쌓기 위한 학교는 아니다. 하지만, 글로벌 감각을 기르고,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을 접하고, 자기주도적인 삶의 태도를 기르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라 생각한다.
대학이 인생의 최종 목적지인 것처럼 초중고 시절을 보내온 한국의 스무 살 들은 막상 대학 입학을 하고 나면 당황스러워진다. 끝인 줄만 알았는데, 또 취업 경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늘 미래를 위해 살다 보면, 지금의 나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지하게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아들을 기꺼이 떠나보내기로 했다.
그간 진학 걱정, 취업 걱정에 사로잡혀 지내느라 움츠렸던 마음을 크게 펴고, 더 큰 세상, 미지의 가능성에 기꺼이 몸을 던졌으면 한다. 망해봤자, 실패해 봤자 모두 자산이 되는 나이, 만 스무 살이니까. 스무 살은 현실과 타협하기보다, 부딪치고 도전하며 배우는 나이 아닌가?
2025. 11월 1일.
리즈
p.s.
사실 이 글은 포크 하이스쿨에 대해 내가 그동안 읽은 책과 인터넷 정보, 학생들의 후기, 하루 동안 한 군데의 학교를 답사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실제 경험담은 아들이 본인 블로그를 통해 아마 1월부터 기록할 예정이다. 실제 학교생활이 어떨지 아직은 알지 못하고, 그래서 함부로 추천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처럼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있음을 알리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