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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대로 말하지 않는 연습

대방어

by 레이지마마


대방어 철을 맞아 남편이 한턱 쏘겠단다. 11월이 곧 끝나가는데 민생 지원금이 13만 원 남았다면서.

듣는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우리 가족 모두 술도 안 먹는데, 저녁 식사 메뉴로 회가 적당한가? 방어회 맛집은 방어 위주로 나와서 스끼다시로 배가 안 찰 텐데. 그렇다고 방어회로 배를 채우기엔 느끼할 것이고... 세 명이 5인분은 시켜야 할 테니 돈도 많이 들 것 같다. 이런저런 걸 감안하면, 방어회는 술 친구들 왔을 때나 먹고, 식구끼리는 다른 걸 먹는 게 낫지 않나?


머리를 굴리다 보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남편이 모처럼 기분 좋게 한 제안에 초를 치고 싶지 않은데.... 또, 한 마디 하려는 습관이 올라온다. 다행히, 잘 참았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습관을 재빨리 알아차리니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방어회 맛집, 만배 회 센터는 집에서 40분 거리다. 하지만 네비에 찍으니 퇴근 시간이 걸려서 소요시간이 한 시간으로 늘어났다. 후기를 검색해 보니 이 횟집은 다섯시 오픈과 동시에 대기자가 줄을 선다고 했다. 여섯시쯤 가면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글도 보였다. 우리의 도착 예정 시간은 여섯시였다.


다른데 가자고 하고 싶은 마음이 또 치고 올라왔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꾹 참았다.


도착하니, 가게 입구에 서 있는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보였다.


배가 너무 고픈데.... 엄청 기다리겠네.

하지만, 이번에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대신 차에서 내려 "주차하고 와. 먼저 가서 대기표 받아둘게" 하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에 들어갔다.


"세 명인데요,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일행이 다 오셨나요?"

"네. 주차하고 있어요."

"오시면 말씀하세요."


알고 보니 이 가게는 '모든 일행이 도착한 팀 순서대로 입장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미리 자리를 잡아두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가게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일행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주차를 마친 남편이 나타났고, 우리 가족은 바로 입장했다. 안내받은 상에는 밑반찬들이 이미 차려져 있고, 주문한 메뉴도 순서대로 금세 나왔다.


특대방어와 내장 수육, 머리 튀김 세트.


쫄깃하게 기름진 대방어를 백김치와 날치알밥, 김에 싸서 먹었다. 맥주 한 잔과 함께 먹으니 생각보다 안 느끼하고 배도 든든하다. 나는 내장 수육과 머리 튀김을 안 먹지만, 남편과 아들이 맛있게 싹싹 잘 먹었다. 기본 반찬으로 나온 석화도 신선했고, 고구마튀김처럼 생긴 감자튀김도, 적당히 칼칼한 방어 미역 지리탕도 만족스러웠다.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는 모르는 것들이 있다. 과거의 경험이 언제나 현재나 미래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자꾸 그걸 잊는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미리 판단하느라 일을 복잡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나의 이런 습성 때문에 남편과 다툰 적도 많다.


그래서 연습하는 중이다.

빠르게 추측하고 판단하고 주장하고 싶어 하는 나의 습성을

일상에서 맞닥뜨렸을 때,

즉시 알아차리고

멈추기.


오늘, 또 하던 대로 했더라면 맛보지 못했을 대방어를 떠올린다.


생각과는 달리,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밤.

생각을 따르지 않고

조용히 흘러가는 대로 지켜 본

나를 칭찬한다.


'가만히 있기를, 참 잘했군‘


2025. 11.20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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