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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슬 Jun 10. 2021

출신 대학을 밝히는 일에 관하여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

  "아... 저... 서울에 있는..."

  "서울에 대학이 한두 개도 아니고."

  "아, 그러니까... 서울대... 나왔..."


    아래는 '서울대'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튀어나올 때, 나타나는 상대의 여러 가지 반응과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을 나열한 것이다.


[반응1] 

  "(눈을 크게 뜨며)아, 진짜? 대박! 서울대 나온 사람 처음 봐요!"

  "처음이시라니 영광입니다."

[반응2] 

  "오! 내가 아는 OO도 서울대 나왔는데, OO 알아요?"

  "아마 모를 겁니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 중에 제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요."

[반응3] 

  "에이. 거짓말."

  "...... 저도 거짓말이면 좋겠습니다."

[반응4]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칭찬인가요, 욕인가요.

[반응5] 

  "어렸을 때 쭉 공부 잘했어요?"

  "성적이 좋았냐는 말씀이시라면, 성적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반응6] 

  "저도요!"

  "반갑습니다."


  반응은 다양하지만, 어떤 반응이든 퍽 무안하다. 짐짓 과민해서인지도 모른다.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지만,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무안함을 감추려는 태연함이 산뜻할 리 없으니, 별로 확인하고 싶지도 않다. ([반응6]의 경우를 논외로 하고) '서울대'는 상대와 나 사이에 단단한 벽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출신 대학이 들통나는 것을 최대한 미룬다.



  한 인간에게 무슨무슨 대학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며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 사람을 파악하는데 시험 성적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적은 경쟁을 요하고, 승자와 패자의 구분을 명백하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내가 서울대 나왔다고 하면 어떤 탁월함을 전제하고, 또 기대한다. 나는 부모님의 주변인들에게 '잘 키운 자식'으로 상징될 때가 종종 있다.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질투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다. 누군가는 나를 우러러보기도 한다.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느껴질 때면 '나 서울대 나온 사람이야!'하고 외침으로써 상대를 내리누르고 싶은 비루한 마음이 불쑥 솟기도 한다.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서울대라는 말은 다양한 모양의 마음과 얽혀있고, 여전히 껄끄럽다. 대입을 코앞에 둔 고등학생들과 밀접하게 만나는 직업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글을 쓰며 얽힌 마음에 관해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그래야 껄끄러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해방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해도, 이런 종류의 글쓰기가 껄끄러운 마음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누군가 출신 대학이 어디냐고 물을 때, 상대의 반응을 지레 염려하지 않고 경쾌하게 대답하고 싶다. 서울대는 나왔지만 그게 당신과 나 사이의 벽이 되지는 않길 바란다고.






* 위 글의 일부분은 문보영의 산문집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112쪽의 서술 형식을 차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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