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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슬 Apr 15. 2021

육아 브이로그를 보는 이유


  몇 해 전 처음으로 발령받은 학교는 다소 외진 곳에 있었다. 발령지가 발표 나던 날, 거리뷰로 학교 주변을 살펴보던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어 헛웃음이 났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사거리 교차로로부터 학교 정문에 이르는 길가에 건물이라고는 비닐하우스 몇 개가 전부였다. 당시 나는 뚜벅이였다. 학교 정문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긴 했지만 그곳은 등하교 시간에만 버스가 지나가는 특수 정류장이었다. 교실 청소하느라 자칫 10분이라도 늦게 하교하는 학생은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기에 이 학교에 배정받은 학생들은 3년 내내 등하교의 고단함을 푸념하는 게 일상이었다. 자차를 소유한 모 동료 교사는 인터체인지에 인접한 그곳을 교통의 요지(?)라며 좋아했으나 차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잔인하게 들리는 얘기였다. 그 학교에 발령받는 신규교사 대부분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가용을 구입하는 게 문화라면 문화였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한 덕분에 나는 그 문화에서 1년 동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해 이사를 하게 되면서, 나도 별 수 없이 운전면허를 따고 자가용을 갖게 되었다.


  도로는 경쟁심을 돋우기 좋은 구조를 갖고 있다. 마치 육상트랙처럼 라인이 그어져 있고 운전자들은 그 선을 따라 같은 방향으로 달린다. 성별, 나이, 직업, 가족사항, 학력, 외모 등 운전자의 정보는 차체에 가려 단숨에 파악하기 어렵기에, 오로지 스피드 하나로 등수가 매겨지곤 한다. 물론 차종에 따라 재력을 가늠할 수 있고 그것이 등수에 반영되긴 하지만.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나는 도로 위에서 언제나 경쟁 모드를 장착했다. 추월해 앞서가는 차를 보면 불쾌감을 느꼈고, 나보다 느린 속도로 가는 차를 추월하면서는 우쭐해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예상 시간보다 5분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때 단전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그 짜릿함이 좋았다.







  출산과 동시에 여성은 출산 이전의 삶에서 물러난다. 물론 이후의 상황은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펼쳐진다. 누군가는 채 몸도 다 풀지 못하고 100일 만에 복직을 하고, 누군가는 3년 동안 휴직을 하고, 누군가는 그 사이에 직업이 바뀌기도 하고, 누군가는 경력 단절 여성이 되겠지만, 어쨌든 처음의 물러남은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것 같다. 이전 삶과는 무관하게 모든 여성은 그 물러남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된다. 그곳에서 새로운 종류의 달리기를 시작한다. (작년 11월에 방영했던 드라마 <산후 조리원>의 주인공은 출산 전 대기업 상무 자리까지 오를 만큼 사회적으로 선두 그룹이었으나 아이 양육에 있어서 만큼은 꼬리칸 신세였다.)


  육아 브이로그를 보는 일은 그 달리기 경주에서 나와 아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육아 일상이지만 그 비슷비슷한 장면들 속에서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 영상 속 아이의 인지/신체 발달이 빠른지 혹은 느린지,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어떤 표정과 감정을 내보이는지, 과학적이고 최신의 육아 상식과 지식을 잘 갖추고 그것을 얼마나 바르게 실천하고 있는지, 핫한 육아 관련 제품들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그 와중에 저 아이의 엄마는 출산 전 몸매를 어느 수준까지 회복했는지, 살림은 얼마나 깔끔하고 야무지게 하고 있는지 등등. 브이로그를 보며 브이로거와 나, 둘 중 누가 육아 레이스에서 우위를 점하는지 재보았다. 브이로그를 찍어 온라인에 게시하는 일을 할 만큼 자신의 육아 일상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 여길 테고, 그러므로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 육아를 점검해본다면 이 레이스에서 심각하게 뒤처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이전만큼 육아 브이로그를 보며 촉수를 곤두세우지 않는다. 많이 보지도 않고. 경쟁심이 사라졌나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경쟁심이란 것은 언제든 새롭게 돋아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니까. 그보다는 동시대에 육아에 힘과 재능을 쏟고 있는 엄마들을 향한 공감과 연대감 같은 것들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다. 1년 넘게 꾸준히 시청하고 있는 육아 브이로그 채널이 하나 있다. 어쩌면 친한 친구들보다도 그 채널 속 아이 엄마 얼굴을 더 자주 보는 셈인데, 그래서 그런지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대화해 본 적도 없는 그녀에게 이상하게 친근감을 느낀다.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게 될 것만 같은 그런 친근감. 이젠 그녀의 집 구조도 익숙하고, 아이에게 어떤 요리를 자주 해주는지도 알고, 도마는 어떤 색깔인지, 요즘은 어떤 드라마를 보며 육아 스트레스를 푸는지도 안다. 편집된 일상을 나는 숨어서 구경할 뿐이지만 영상을 보고 나면 그녀와 와구 수다를 떨고 온 것 같다.



  육아라는 세계가 한 방향으로 질주해야 하는 도로보다는, 걸어가다 마주치면 수다를 떨고 저기 누구 누구네 집에 들러 문을 두드려 볼 수도 있는 마을길을 닮았으면. [차량 출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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