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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 끝에서 온 빛 Mar 14. 2024

30살, 그 아찔함에 대하여

원맨쇼

나는 내 세상이 강하다. 그리하여 또 망상을 하다가 혼자 넘겨짚기를 하다가 결국 남자친구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이것은 정말 좋아하면 나와버리는 나의 고쳐야하는 파괴적 방어기재이다.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사랑하는 사람으로하여금 나를 포기하게 하는 방어기재. 이건 나도 상대도 괴로운 파괴적인 방어기재이다. 버림받는 것을 너무도 두려워한 나머지 누군가 나를 보살펴주거나 양육하려하는 사랑의 행위 또한 두려워한다. 그렇게 따뜻하고 귀하고 빛나는 그 존재가 사라지면 쓰라리게 아프니까. 그 고통은 무척이나 시리고 아프다. 진짜 아프다. A형 독감처럼 아프다. A형 독감은 가슴은 안아팠는데 버림받는 고통은 정신적으로 심장안속부터 공허함이 가득채워져 아무것도 안남았다는 공허가 가득해져 공허가 닿는 심장속의 살결이 모두 다 괴롭다.


 살면서 수백 수천번은 느껴보았던 감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헤어짐을 말하고 또 괴로워한다. 이런적이 여러번 있었다. 만난지 얼마안된 남자친구에게 헤어짐을 몇번이나 통보했다. 한명만이 아니라 다수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사람을 밀쳤다. 솔직한 마음은 늘 하나가 되고싶은데 '아니, 나는 너랑은 하나가 되기싫어' 라는 이상한 마음이 따라다닌다. 나를 다 알게 된다면 결국은 버림받을 것을 알기에. 불안한 예감은 늘 틀리지않는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한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기로 선택을 했으면서 혼자 고립되었다며 울부짓고 불평을 하고 있다. 남이 내게 맞춰지기를 이런 나를 감당하라고 불평불만을 하고있다. 그 누구도 내게 종속될 수 없는데 말이다. 종속시키려는 열망은 버림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기인된다. 내가 나의 의식의 흐름을 적지않았을 때는 진짜로 내 지금 이 글에 적힌 그대로 내가 나를 실행해버린다. 그런식의 매커니즘으로 짜여진 AI나 장난감처럼. 아무런 생기도 없이.


마치 끊어진 쇠사슬에 묶여있다고 어디에도 못간다고 울부짓는 것처럼. 쇠사슬은 이미 정말 옛날에 옛날에 잘렸는데 말이다. 그 기억은 망상이라 없는 것인데도 악몽을 가끔 꾸나보다. 심장 안속에서 타들어가는 듯한 버림받는 고통이 있다. 이건 어떤식으로 없애야하는지 감도 오질 않는다.


다행히도 내가 징징대고 열심히 눈치를 보고 살살 기어서 상냥했던 남자친구가 무서워지는 것을 보고는

그리고 내가 헤어지자 해놓고서 힘들어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 한심해서 아부를 싫어하는 까다로운 남자친구가 나를 여전히 미워하고있다고 의심을 끊임없이 하면서 저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다시 어찌 예전처럼 돌려놓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또 남자친구에게 진다.


남자친구의 사랑에 진다.


남자친구는 애정표현을 잘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랑이 느껴진다.

나를 침대속으로 들어오라고하는 그 손짓이 말을 히지않아도 나를 위로한다.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니 거의 기적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다니. 이건 억지 긍정이나 학습된 긍정이 아니라 정말 난 그냥 남자친구가 놀라웠다. 나한테 위로를 준다고...? 내가 지금 위로를 받고있다고...?


그런 점이 좋다. 함부러 사랑을 논하지않는 그것이 좋았다. 카톡을 많이 하지도 않는다. 그런 부분이 좋다. 사실 존나 서운할 때가 있지만 그런 것도 좋다.

결국 만나면 서운한 마음이 눈녹듯 해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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