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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부자 기린쌤 Jul 01. 2020

길 좀 잘못 들어가면 어때

직진만 하던 나는 뭐가 두려웠을까?

나 힘들어, 안아줘


<멜로가 체질> 9화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친구들에게 "나 힘들어, 안아줘"라고 말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함께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몇 번을 다시 보면서도 저 장면, 저 대사가 나올 때면 마음에 큰 울림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나는 매일 퇴근을 하면서, 과제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하는 등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들어'라는 말을 한다. 매일 같이 사용하고 있는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그렇게까지 반응을 했을까?


'힘듦'을 고민하다 보니 '두려움'으로까지 생각의 고리가 이어졌다.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는 뜻의 두려움. 나는 뭐가 두려웠을까?



포기하는 게 두려워


(시기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내 토론 대회에 참여하였다. 평소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떠한 주제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나누는 것 자체를 좋아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참석을 했지만 내가 평소에 하던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교실에서 하는 거랑 달리 토론 장소도 참여한 친구들도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느낌이었다. '나만 잘 모르는 것 같고, 나만 못 하는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료, 저 자료 열심히 보면서 발언할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미 머리는 새하얘졌다. 벌써 내 차례. 단상에 올라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쥐구멍에 숨고 싶다'였다. 말은 해야겠는데 입은 움직여지지 않아 한 마디도 못하겠고 다리도 후덜 거리고 있었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 단상 아래에 주저앉았다. 울고 싶었지만 차마 울기까지 하면 민폐라는 생각에 꾹 참았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토론에 참여했던 친구들에게 엄청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은 기억난다.


저 당시 내가 했던 '쥐구멍에 숨고 싶다'는 생각처럼 포기하면 도망치는 기분이 든다. 도망치는 건 책임을 지지 않고 회피하는 건데, 포기를 하면 내가 도망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 가끔 너무 힘이 들고 지쳐서 내가 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꽉 잡고 버티고 있던 것들을 놓아버리면 나 자신이 사라질 것만 같다. 이 세상에서 저 멀리로 도망치는 것처럼. 나는 도망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저 순간을 회고하며 "숨지 말자, 버티자"를 다짐하곤 한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힘들어"를 내 입 밖으로 표현을 하면 내가 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는 기분이 든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마음만이 아니라 정말 주저앉는 것처럼.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많이 힘들었지?"라고 물어보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길 좀 잘못 들어가면 어때


계획을 세우고 생활하는 편이다. 계획에 맞게 정확하게 살고 있지는 않다. 단지 계획이 없으면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 나날들을 보낼 것 같아서 계획을 세우고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니며 정말 '삶은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 천지구나, 계획대로만 살 수 없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논문.


논문을 읽기만 했지 쓰는 건 처음이다. 대학원 학기 내내 열심히 공부를 했어도 졸업 논문 앞에서는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았다. 박사 과정도 꾸준히 계획하고 있었기에 나는 칼 졸업(학기에 맞춰서 딱 맞게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주제를 정하는 것부터도 한참 걸렸다. 주제를 정한 뒤에도 선행 연구를 찾고 세부 내용을 정하고, 생명윤리위원회 심의를 받아 통과해야 하고, 주제 발표도 하고, 연구 진행을 하고, 그 과정에서 틈틈이 논문 내용을 써야 했다.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상자 모집 또한 시간이 엄청 걸린다. 그러다 보니 10월쯤 상담하면서 교수님께서 이번에 졸업은 힘들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할 수 있다며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의견을 존중해주셨고 일단 해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11월이 되자 나는 너무나 조급해졌고 압박감이 나를 짓누를 정도가 되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용기 내어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에 졸업은 어려울 것 같다고, 이번 학기 졸업은 포기하겠다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마음 하나를 내려놓았는데, 수많은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해했을까? 왜 그렇게 여유가 없었을까? 다 욕심이었나? 내가 좀 더 부지런했으면 어땠을까? 너무 직진만 고집했나?'

이런 생각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가 해준 말이 정말 위로가 되었다. "직진만 하다가 우회전도 하고, 좌회전도 하는 거 아닐까? 길 좀 잘못 들어가면 어때. 우린 아직 20댄데."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교수님들도 비슷한 조언을 해주셨다. 인생은 기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경력도 쌓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직진만 해오던 나에게 우회전과 좌회전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용기를 낸 후에는 며칠이 멍할 정도로 성장통을 앓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한결 여유가 생겼다. 아직 "힘들다"는 표현을 진심으로 하기엔 용기가 부족하지만,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의연한 태도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는 나도 "나 힘들어, 안아줘"를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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