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 게시판에 붙여놓은 학급 친구들 얼굴에서 한 아이의 눈이 없어졌다. 동글동글 돌아가는 눈알이 있는 플라스틱 눈을 아이들이 그린 얼굴 위에 글루건으로 붙였는데 이 눈이 없어진 것이다. 눈이 없어진 얼굴 그림의 주인은 눈을 가져간 아이와 친하지만 묘하게 경쟁을 하고 있었다.
5학년. 이기고 지는 것에 민감한 시기에 게시판에서 나보다 더 멋진 모습을 한 친구의 눈을 가져가고 싶었던 것 같다. 30년 전 일이다. 그 당시 이러한 단순한 눈 도난사건이 아닌 다소 심각한 학교폭력도 있었다. 일본에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는데 한국어를 어눌하게 하는 아이에게 반 친구들이 모질게 대한 일이 있었다. 이사실을 모르던 초임교사였던 나는 그 일에 대한 아픔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아이들과의 면담과 여러 조치로 해결 아닌 해결이 되었지만 그때 그 아이의 모습은 마음속에 남아있다. 담임인 나에게도 아픈 사건이었는데 그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때면 한없는 미안함을 갖는다.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성숙한 교사였었더라면, 좀 더 노력하는 교사였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지금도 마음이 불편하다. 교직에 대한 소명감을 일찍이 알게 해 준 사건이었다.
15년 만에 다시 교사로 나갔다. 이제는 내 아이를 길러본 부모가 되었고, 학부모도 되어보았다. 나름 예전과 다르게 부모의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마인드도 가지게 되었다. 그때도 5학년이었다. 반 아이가 물건을 훔쳤다. 친구들의 돈을 훔치고 거짓말도 하였다. 학교 옥상에 가서 울면서 말하는 아이는 아파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심한 곱슬이어서 항상 붕뜨고 게다가 탈모가 일어나고 있었던 아이였다. 이해력도 다소 뒤져서 친구들 눈치를 보면서 친구들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자신감도 없어 보였고, 친구들도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고 함부로 말하거나 무시하기도 했다. 길쭉한 몸매로 발레와 운동을 잘하던 아이였지만 결국 자신의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물건을 훔치는 습관으로 자신이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요즘과 다르게 정보를 얻을 곳은 책과 경험뿐이었다. 책을 찾아 아이의 사례를 비교해보았다. 또다시 재교육이 필요한 교사임을 느끼고 급한 대로 나의 부모로서의 경험만을 가지고 주먹구구 처방을 하며 아이를 위로하고 지켜보았다. 나는 교육전문가가 아닌 그냥 정상적인 부모라면 취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 부모라면 할 수 있는 일에 교사라는 명칭을 쓴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다시 나간 학교에서 나는 그렇게 부모로서 교사로서 애매하게 지내다 그만두었다.
늦둥이 막내를 낳고 기르면서 15년을 엄마의 모습으로 지내다 다시 교사로 나갔다. 이제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름을 달고 학급을 담임하였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모습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15년 만에 다시 학교에 나가도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예뻤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아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 아픔을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비슷했다. 인터넷에서 교사 연수가 넘쳐나도, 다양한 e-book을 통해 실시간으로 책을 찾아볼 수 있어도, 인터넷 정보가 다양하게 펼쳐져도 아이들의 아픔에 대한 치유는 더디게 가고 있었다. 학생수가 예전의 반 정도로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교육전문가, 심리학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어도 학교에는 여전히 아파하는 아이들이 넘치고 있었다. 기간제 교사를 하는 3개월 짧은 기간 동안 학교는 변하지 않았지만, 학교 밖의 상황들이 너무나 변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하지 못하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빠르게 변하는 학교 밖과 학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노력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냥 학교에 순응하고, 교육전문가가 아닌 교육공무원의 일만을 착실히 수용하며 다양한 혜택을 받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자포자기 선생님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의 많은 정보는 교사만의 것이 아니었다. 학부모, 아이들이 그 정보를 공유하자 가르침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고, 학부모들은 나름대로의 정보를 들이대며 교사의 아이들에 대한 접근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교사를 유모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총체를 보는 것 같았다. 교사의 전문성이 도전받고 교사는 부모와 학교가 시키는 대로 하는 보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부모는 학원과 학교에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고 그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더 아파하는 것 같았다.
말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아픔을 치료하고 속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진 가정과 노력하지만 한계를 경험한 선생님들의 허탈함과 무기력이 아이들을 분노장애로 만들기도 하고 친구들 앞에서 강한 척 허세를 부리거나 거짓을 말하며 주위를 혼란스럽게도 하는 아이들을 만들고 있었다.
한 아이가 선생님 보세요. 하면서 쑥 내민 손에 문자가 가득 있는 핸드폰 화면이 보였다. 2학년 초등학생이 하기 힘든 욕이 쓰여있었다. 놀이터에서 놀 때 친구가 자기에게 화를 내면서 이런 문자를 보냈다고.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하며 보여준다. 심한 말이네. 아이를 불러 진위를 알아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보았다. 욕을 한 아이도 이유가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기 전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의 옷에 신발 자국이 묻어있고, 친구들이 아이를 발로 밟았다고 따진다. 2학년 아이가 험악한 얼굴로 친구의 몸을 짓밟는 상상을 할지 몰라도 드문 일이다. 아이들은 아직 예쁘다.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먼저 묻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목소리가 크고 항상 반에서 주도하기 좋아하는 신발 자국 묻은 친구가 친구들의 관심을 위해 바닥에서 구르면서 말리는 친구에게 자신의 몸을 밟으라고 했다고 한다.
모두 예쁜 아이들이 아파한다. 아파서 구르고 외친다. 너무 소중한 아이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면 교사로서 도와주지 못해 발을 구른다. 능력이 없어서도, 정보가 없어서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 학교, 학부모, 교사 모두가 함께 애써야 아이들이 행복하고 아프지 않다는 어디에서 많이 들은 이 말이 심장에 깊숙이 다시 파고든다.
단독주택인 우리 집의 창을 통해 보니 중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집 앞을 걸어간다. 검은 국민 코트를 입고 같은 머리스타일을 하고 즐겁게 웃으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집 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 한 장은 집 앞 송사리 떼가 있는 하천에 떨어졌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울타리 대문으로 달려가 '학생들 종이를 여기에 버리면 어떡해요 '하며 소리쳤다. 아이들은 벌쭘하게 웃음을 멈추고 도망가듯 가버렸다. 던지고 간 종이 쓰레기는 pc방 영수증이었다. 10000원이 결제 금액이었는데 결제 취소라고 되어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친구들과 pc방에 가고 싶었는데 결제 취소가 된 모양이다. 계획대로 되지 못해 그 상황이 싫어져서 영수증을 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만 보고 소리치고 부르르 하고 달려 나간 나는 아이들의 아픔을 돌보라고,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어보라고 외칠 면목이 사실 없다.
모두가 협력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교육이라는 두 글자가 새삼 너무 어렵고 불편하게 다가온다. 성적이라는 보이는 교육의 결과에 치중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교육의 결과는 이렇게 어렵고 불편하기에 외면받고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바람직한 인간 형성이라는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교사나 어른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아이들이 아파하는지를 살피고 점검하고 이해해 주는 일 같다.
아, 정말 어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