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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공간을 보다 듣다 만지다

이타미 준과의 만남

물, 바람, 돌.

제주에서 가장 흔한 이런 것들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냥 '많다', '좋다'를 넘어서 이런 흔해 빠진 것들에서

자연을 발견하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자연을 공간으로 창조하는 힘은 

아주 예민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자주 예민한 사람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까칠한 사람, 

광기를 가진 사람, 

경계에 선 사람일 경우가 많다. 


내가 만난 이타미 준이 그랬다.


재일교포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의 경계에서 

건축물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보는 법을 보여준 이타미 준, 

그는 한국 사람 유동룡이기도 했다.


한국 갈 때 늘 가던 공항 이름 '이타미'에서 이름을 가져와 

일본에서 건축사무소를 낼 때 자신의 이름으로 썼다고 하니 

기이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이타미 준은 보이지 않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듣고 만지게 하는 건축가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제주도 중산간에 물, 바람, 돌을 자신만의 건축물로 표현해 숨겨 놓았다.


숨겨 놓았다는 표현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어 잘 보이지 않으며, 

사람이 살고 있는 일상의 공간 속에 있으며, 

일반인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물 박물관은 밤과 아침 두번 들렀다. 

박물관 위에 모습을 드러낸 보름달은 하늘이라는 달 속의 달과 같았고, 

달빛이 비친 물은 기이했다.


물 박물관에서 본 하늘과 물에 비친 달


한낮 물 박물관에서 본 구름과 하늘을 담은 물은 찬란했다. 

위와 아래의 경계가 없으며, 

하늘이 물에 담겨 있고, 

땅과 하늘이 하나되는 공간은 

창조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늘과 구름을 담은 물 박물관


바람 박물관은 초원의 언덕과 같은 억새밭 사이에서 바람의 친구처럼 서 있었다. 

무엇 하나 막지 않는 건물의 벽 사이로 수많은 바람길이 소리를 내며 이어져 있었다. 

혹여나 거친 바람 소리만이 들릴까 벽을 곡선으로 부드럽게 담아냈다. 

조용히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으니 나도 바람이 되고 싶었다.


바람 박물관에서 만난 바람과 공간


돌 박물관은 육중하지만 세심한 공간이다. 

붉은색의 건물은 빛바랜 쇠로 자연의 일부가 되었으며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하트 모양으로 어두울 것 같은 공간을 밝게 만든다. 

창 밖으로 보이는 돌과 자연은 공간 속에서 공간 밖으로 보는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돌 박물관의 연결된 안과 밖


두손 박물관은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다. 

물, 바람, 돌 사이에 왜 두 손이 있을까?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야말로 인간이 가장 자연스러울 때일까?


기도하는 인간의 마음을 담은 두손 박물관


두손 박물관 안에서 만난 하얀 나무는 인간 안에 담긴 빛을 향한 갈망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두손 박물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하얀 나무


내친 김에 포도호텔을 갔다. 

호텔 숙박비로 하루 100만원을 낼 수 없어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자연 속에 위압감을 주지 않는 낮은 포도송이 속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표현된 포도호텔은 이타미 준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포도호텔


마지막으로 방주교회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 위에 떠 있는 방주교회, 

인류 멸망의 순간에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노아와 온갖 생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역사적 장소, 

그래서인지 방주교회에 꼭 들어가고 싶었다. 

안은 편안하고 거룩한 공간이었다.


물 위에 떠 있는 방주교회와 내부, 그리고 빛나는 지붕과 단순한 뒷모습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알까?


신앙인, 예술가, 건축가는 모두 같은 질문을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한다.


자연 안에 녹아든 건축물을 만든 안도 타다오와는 결이 다른 시선으로 

자연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게 공간으로 표현한 이타미 준은 

제주도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위대한 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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