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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벚꽃길을 걸으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고한 신념과 끈기를 가지십시오.”


오늘 출근길, 벚꽃 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채울 수 없는 것들, 밀려드는 걱정들, 지극히 개인적인 바램들, 매순간 체험하는 한계들, 이 모든 것 앞에 선 작아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말씀이 봄날 벚꽃길에서 내 안에 생기를 돋우었다.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신다. "시간은 우리 앞에 언제나 열려 있는 지평의 표현으로서 충만함과 관련되지만 개별적인 순간들은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한계의 표현입니다"(복음의 기쁨 222항).


눈앞의 즉각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멀리 보고 바라고 믿는 마음은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꼭 필요한 자세일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빠른 길로 더 능력있고 효율적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곧 지치고 말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게, 자부심 있게, 그 자체를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게 중요해요. 왜냐면 그래야 오래 버티니까.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을 많이 만들어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작은 약속도 하고, 그 ‘인간적인 과정’을 잘 관리하면서 가는 것!”


그러고보니 나는 혼자가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동료들이 있고 마음이 무거울 때는 친구들이 있고 힘들 때는 가족이 있으니까.


우리 시대 사람들은 정보통신 혁명과 이동수단의 발전으로 지역이나 문화를 넘어선 정보를 순식간에 얻고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은 향상되었지만 대신 시간을 지배하는 능력은 감소했다. 활동과 결과를 강조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고독과 성찰은 부족해졌다. 


그래서 눈앞의 적대적인 상황이나 현실의 힘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는 권력으로 공간을 독점하고 모든 것을 현재에 가두려 한다.


작금의 의료사태를 바라보면서도 그런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공허한 말과 독설로 눈앞의 권력과 현재를 장악하려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시간과 진전, 역사를 생각하지 않음을 목격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독특한 시간관은 우리에게 지금의 공간을 현실로, 시간을 역사로 보도록 안내한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장대하게 열린 지평을 구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이 공간보다 위대함을 알게 된다.


현실을 지배하려는 권력인 공간이 아니라 역사의 진전을 추구하는 열망인 시간을 중요시할 때 우리는 당장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먼 곳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이어져온 유구한 하느님의 섭리에 의탁할 수 있게 된다.


벚꽃은 한철이고 봄은 곧 지나가겠지만 그 또한 여름을 위한 화려한 전주곡임을 안다면 조급해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지금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게, 자부심있게!

출근길 체리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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