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안나 카레니나).
불행한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지만 불행하다는 점에서는 닮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여자가 그렇습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와 병에 시달리다가 죽은 회당장의 열두 살 된 딸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된 숫자 12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며 이 두 여인은 병들어 죽음에 이른 이스라엘이기도 합니다.
병으로부터의 고통과 그에 따른 죽음은 인간이 겪는 가장 비참한 가난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기가 많아도 권력이 강해도 고통과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하여 가난을 짊어지신 분이 계시니 그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인간이 되시었기에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과연 그분의 상처로 우리가 나았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치유되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때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마르 5,34).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병에서 벗어난 건강한 삶 대신에 곧잘 고통과 지루함 사이에 갇히곤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됩니다.
"우리 인생은 고통과 지루함을 오가는 움직임 사이에 있다. 빈곤과 결핍은 고통을 낳고, 안전과 과잉은 지루함을 낳는다. 고통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하층 계급이 있으면 지루함을 상대로 필사의 싸움을 벌이는 또 다른 계급이 있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결핍의 고통을 벗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안전과 과잉의 지루함에 갇혔습니다. '지루해 죽겠다'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중독에 빠집니다. 그저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오락과 쾌락, 탐닉의 수렁에 빠집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큰 위험은 중독에 빠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탈리타 쿰!'하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하십니다.
우리는 고통 때문에 안락을, 지루함 때문에 쾌락을 추구하면서 다시 병에 걸렸습니다.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예수님 말씀처럼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 움직여야 합니다.
잠에서 무기력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것이 건강한 삶의 시작입니다. 생각이 많을 때 몸이 무거울 때 일어나 움직인다면 우리는 고통과 지루함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고통에서 치유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것은 보기 힘든 기적이 아니라 지루함의 유혹을 떨치고 일어나 움직이는 것에서 시작되는 일상입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일어나 깨어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일깨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