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지난 2월 14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예 발렌타인 데이이지요. 그렇습니다. 재의 수요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한가지 더 의미있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날 저는 우리대학 인성교육원 원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마치 사순절 시작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의 수요일 단식으로 속이 쓰린데 머리까지 아파왔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우리는 주어진 일에 자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을 했으니.
그래서 늘 살던대로 살지는 않아야겠다, 무언가 바꿔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결심을 했고, 그 중 하나가 사순기간 맥주를 마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매일 한캔씩 마셔왔던 것을 사십일 넘게 참았으니 나름의 절제를 해냈습니다. 물론 필요한 경우 소주, 와인, 고량주까지 마신 적도 있습니다. 제 부활의 기쁨은 첫번째로 부활성야 미사 후에 맥주 한캔 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대축일에 죽음을 생각합니다. 곧 시작될 4월은 애도의 달입니다. 4월 2일은 동기신부였던 서영민 신부의 10주기입니다. 4월 16일은 전국민을 슬픔과 고통에 빠트렸던 세월호 10주기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이가 들수록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은 점점 더 가까이, 더 오래 머뭅니다. 지난해 유월, 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두번째 치르는 부모님 장례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음을, 오히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내야 할 진리입니다.
이제 어머니 무덤 곁에 묻히신 아버지, 두분이 나란히 계신 군위묘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어두운 자궁(womb)에서 와 어두운 무덤(tomb)으로 간다. 삶이란 그 두 어둠 사이의 짧고 빛나는 순간이다."
성주간의 여정의 목적지는 무덤(tomb)입니다. 십년전에 방문했던 예루살렘의 '예수 무덤 성당(Church of the Holy Sepulchre)'이 떠오릅니다. 거대한 성당 안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골고타 언덕이 있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예수님의 무덤이 있습니다.
열여덟명의 동기 신부들 중에 그날이 제 미사 주례 당번이었기에 저는 조그마한 예수님 무덤에 들어가서 미사를 집전하였습니다. 예수님 무덤 앞에서 사제로 미사를 드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놀라운 감동도 있었습니다만 크나큰 슬픔도 느껴졌습니다. 나의 스승이, 나의 친구가 이곳에서 죽어 묻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덤은 부활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부서지고 견디고 죽는 곳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수 무덤 성당을 정교회에서는 '예수 부활 기념 성당'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덤 없는 죽음, 죽음 없는 부활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활은 사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부활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그분이야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걸어야 할 진리이며, 그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요한 8,32).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넘어서는 자유, 그것을 살아내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입니다. 인생길에서 그분을 만나고 진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생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부활하신 그분의 생명을 먹고 마시며, 우리는 매 주일 부활을 맛봅니다. 참으로 놀라운 소식, 기쁜 소식 아닙니까!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부활대축일 인사를 다음과 같이 합니다.
'그리스도 부활하셨네!(Christ is risen!)'하고 인사하면, '그분은 참으로 부활하셨네(He is risen, indeed!)'하고 응답합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Christ is risen!
He is risen, IND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