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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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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상에서 코모레비 찾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 함께

"날마다 새로이 생기는 무거운 요구에 시달리며 자신의 현존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로 일평생 걱정하며 살아간다."(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말은 모두가 공감할 우리의 현실이다. 매일이 똑같은 일의 반복이고, 일상이 걱정과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형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만났다. 제목 그대로 완벽한 날들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더 호기심이 생겼던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 즉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감독 빔 벤더스와 일본 배우 야쿠쇼 코지의 호흡이었다.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를 아침마다 깨우는 것은 옆집 할머니의 비질 소리다. 이불을 개고 세수하고 콧수염을 다듬고 화분에 물을 준다. 출근길 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이 인상적이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고 차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올드 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도쿄 화장실 청소부인 그는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 '어차피 더러워질텐데'라는 동료의 푸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점심시간엔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고, 퇴근 후 목욕탕에 들렀다가 '오늘도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반기는 단골 선술집에서 한잔하고 집으로 돌아와 늦은 밤까지 문고판 책을 읽다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것이 그의 하루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무료한 듯한 일상을 히라야마는 어떻게 잔잔한 미소와 따듯함으로 채우는지, 의미와 기쁨을 찾아가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느날 불쑥 찾아온 조카 니코로 인해 그의 일상이 조금 흐트러진다. 짐칸 방에서 자고 같이 출근해 일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딸기 우유도 하나 더 사고 자전거도 같이 탄다. 


니코가 '삼촌은 다른 세상 사람'이라고 엄마가 말했다고 하자 히라야마는 말한다.


"이 세상은 수많은 세상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결된 세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세상도 있지. 니코의 엄마와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


이쯤되면 주인공 히라야마의 세상과 그의 과거가 어땠는지 궁금하지만 영화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빔 벤더스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의 과거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때로는 혐오)과 함께 삶이 내리막으로 향해갔다. 죽음까지 생각하던 어느 날,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깼다. 싸구려 호텔 방이었다. 왜 이곳에 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픈 그에게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창문을 내다보니,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리 쬐고 있었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태양으로부터 1억 5000만㎞를 여행해 자신에게 닿은 이 빛이 ‘당신은 단 하나뿐인 존재’라고 속삭여주고 있다는 걸. 이후 그는 ‘행복하지 않은’ 일을 그만두고, 화장실 청소부가 됐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햇살과 나무를 늘 볼 수 있고,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주제는 그의 삶을 바꿔 놓은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다. 매일 코모레비를 찍으며 그는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음을 깨닫고 음미할 줄 알게 되었다.


일상은 반복이 아니다. 똑같은 일, 이미 존재한 것의 반복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는 반복이다. 반복의 본질은 반복 속에서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며 히라야마는 그렇게 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히라야마는 연모하고 있던 선술집 여인의 전남편을 우연히 만나 대화하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강변한다. 


히라야마의 깨달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음이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우리는 영원을 바라지만 그 세계에는 봄도 청춘도 사랑도 존재할 수 없다. 변하기 때문에 깨지고 기쁘고 애틋하다.


조카 니코에게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하는 히라야마는 지금 순간에만 존재하는 자신만의 코모레비를 찾고 그것에 집중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걸 잊으면 일상에 매몰되고 삶의 의미를 잃을 수 있으니까.


우리가 일상을 지루한 반복으로 만난다면, '현재의 모든 순간은 메시아가 들어오는 작은 문(벤야민)'임을 잊은 것이다.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지금 나는 코모레비를 찾고 이렇게 외치리라.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을리라.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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