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JTBC 서울 마라톤
'도저히 더 못 뛰겠다.'
하프 지점을 지나면서 떨어진 체력은 30킬로지점에서 벽같은 언덕을 만나면서 완전 무너졌다. 사실 전날 밤잠을 제대로 못 잔 것, 대회 출발 전에 화장실을 못가 달리다가 7킬로 지점에서 화장실을 간 것 등이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지난 이십년동안 열 여섯번의 풀코스, 일곱번의 하프 마라톤 완주를 하면서 한번도 생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보며 놀랐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아무리 다리를 빨리 움직여도 앞 사람들과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뒤에서 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를 지나쳐 달려나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젊은이들만이 아니었다. 나이 든 아저씨, 아가씨와 아주머니까지 나를 지나쳐 힘있게 달려나가는 모습을 보며 내게 무언가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멈추면 어떻게 될까?'
밀려드는 자책감이 나를 흔들었다. 연습이 부족했고 체력이 못 따랐고 그런 나를 보고 있으니 화가 났다. 준비가 안된 오케스트라가 내는 음악을 듣고 있자니 견디기 힘든 지휘자의 마음이었다.
처음의 당혹감이 자책감으로, 이어서 포기까지 생각하는 나에게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
계획한 1킬로 4분 40초 페이스에서 점점 밀리더니 결국 6분대도 겨우 버텨내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무엇보다 주위의 모든 러너들에게서 점점 뒤쳐지는 나를 견디기 힘들었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뭘까? 42.195킬로를 뛰면서 자신을 이긴다는 건 또?
그러고보면 지난 이십년동안 내가 달려온 방식은 확실했다. 천천히 시작해도 속도를 높여 앞에 있는 주자들을 제치며 나아가는 것, 걷거나 뒤쳐지는 러너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같이 뛰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을 앞서는 것이 내 주법이었다.
말은 안했지만 대부분 러너들보다 더 잘 달리고 끝까지 버티는 정신력이 강해 상위 5% 안에는 든다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있었다.
그래서 매번 지난번보다 나은 기록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한번도 설렁설렁 뛴 적 없이 최선을 다해 (내가 정한)목표에 도달하려고 애썼고 대부분 나름의 성공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속 남들보다 뒤쳐지고 발은 무거워지고 포기까지 생각하는 것 말이다.
35킬로 지점이었던 것 같다. 급수대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멈추었고 한잔 후에 두잔을 연거푸 마시고 바나나를 까서 입에 넣고 있었다.
"김성래, 잘하고 있어요!"
내 배번을 보며 봉사자가 큰 소리로 나에게 외쳤다. 짧은 눈빛 교환, 그 환한 미소에 바나나가 목에 걸릴 뻔 했다.
'그래, 이 정도도 나쁘지 않아.'
기록이야 어찌 되었든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낼 수 있다는 것, 그것만해도 대단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론 처음부터 잘 안될 때도 있고 달리다가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다 잘되다가 안 되는 일도 있는데 이만큼 온 걸 보면 그래도 최악은 아니지 않는가 싶었다.
나를 앞서간 사람들은 내가 속한 B그룹으로 풀코스 기록이 3시간 30분 이내이니 당연히 그들의 속도에 맞춰 달렸고 나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간 것 뿐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흘렸을 땀과 노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내가 많이 모자랐던 것이다.
박수를 힘껏 세번 쳤다. 나를 앞서간 사람들을 위한 응원의 박수이면서 동시에 나를 격려하는 박수를.
‘그래,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말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호흡을 가다듬고 발을 정확하고 리듬있게 내디딜려고 애썼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나에게 말하면서도 미안했다. (적어도 마라톤에 있어서는)한번도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거나 기다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나브로 포기하지 않고 뛰었고 결승선이 보이는 곳에서도 스퍼트를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달려온 그 모습으로 골인했다.
2012년 경주국제마라톤에서 세운 뒤에서 최고 기록(3:30:07)을 가볍게 경신했다.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기록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기록이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뛴 것에 감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마라톤 인생 이십년만에 우물 안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험이었다. 그동안 우물 크기의 하늘만 보며 자신의 세계에 갇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남을 나보다 못하게 여긴 것이 산산히 부서지는 시간이었다.
있는 그대로 나는 이제 예전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다. 나보다 빠른 삼천 육백여명의 러너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치며 겸손을 배웠다.
무엇보다 조금 늦어도, 계속 빠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가장 기뻤던 것은 함께 풀코스에 도전한 동료 신부님이 생애 첫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했다는 사실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마주하고 용기를 내어 완주했으니 정말 대단했고 장했다.
첫 서울 마라톤에서 만난 35,000여명의 러너들과 수많은 러닝 크루의 응원, 아름다운 서울에서 펼쳐진 나의 특별한 레이스를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