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첫 발

'달리는 신부' 이야기를 마치며

외화번역가 이미도씨가 낸 <언어상영관>이란 책에 따르면 삶을 뜻하는 'LIFE'는 Love(사랑), Imagination(상상), Fun(즐거움), Evolution(변화)의 첫 글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삶이란 먼저 사랑해야 한다. 삶에 주어지는 모든 것, 심지어 책임과 시련까지도 사랑하기로 결심하면 삶에서 멋진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삶이란 또한 상상하는 것이다. 샤콩 미팜은 말한다. "현명한 자는 상상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어리석은 자는 상상력이 없기에 아무런 가능성도 보지 못한다. 나는 이 통찰이 달리기와 명상 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주 상상한다. 마라톤 역시 상상으로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재밌고 엉뚱한 상상 속에서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세번째로 삶이란 즐기는 것이다. 삶은 짧다. 무게잡고 근엄하게 지내기에는 너무 짧다. '즐겁지 않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하고 자주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장례식장에 다녀온 것 같은 우울하고 딱딱한 표정으로는 '복음의 기쁨'을 전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마지막으로 삶이란 변하는 것이다. 흐르는 물이 고이면 썩듯이 멈추면 안주하게 되고 굳어버린다. 계속해서 변하는 길은 안락한 곳을 떠나 경계 밖으로 나가서 감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악기를 배워도 좋고 달리기를 해도 좋고 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워도 좋다.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자신을 격려하면서 두려움 없이 경계를 넘어설 때 삶은 끊임없이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이 된다.


나에게 삶은 달리기며, 마라톤 안에는 사랑과 상상, 즐거움과 변화의 인생이 있다. 달리기는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며 가능하면 내 삶에 영원히 남기를 원한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달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삶이며 나는 아직 다른 것을 모른다.




42.195 킬로미터, 그 먼거리도 한 걸음이 데려다 준다. 요행과 요령을 추켜세우는 세상에서 마라톤은 한 걸음의 가치를 되새기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꾸준히 한 걸음씩 내딛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희열을 느끼며 세상 안에서 다른 속도로 살아간다. 어쩌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한 14,27 참조)를 지키고 몸을 가까이함으로써 사람다움을 잊지 않는 길이다. 나는 그 길에서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고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함께 걷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십오년동안 해 왔던 마라톤을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어떻게 뛰기 시작했고 무엇 때문에 뛰었고 누구와 어디에서 뛰었고 왜 지금도 뛰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았다. 그 찰나의 질문은 나와 계속 달렸고 어떤 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장소와 어떤 시간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래서 일상을 비상하게,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나아가 순간을 영원하게 만들곤 했다. 그 상상이 즐거웠기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난 이년을 그렇게 보냈다.


십오년동안 말하지 못했던, 표현하지 않았던 사랑을 글로 옮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마치 풀코스 마라톤을 뛰고 난 뒤에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마음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그래서 기꺼이 다시 첫 발을 내딛는다. 다가올 시련과 고통을 모르지 않지만, 때론 지루하고 외롭기도 하겠지만 달리는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 하고, 그리고 더 잘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다시 첫 발이다.


달리는 신부(Running Father)의 멘토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로 마칠까 한다. 그는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썼는데 나도 그러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Haruki Murakami / 1949-20** / 작가이자 러너 Writer (and Runner)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At Least He Never Walked)'


김성래 하상바오로 Fr. H.Paul Kim

1973-20**

사제이자 러너 Priest (and Runner)

달리기와 봉사로 살아있던 사람 Fully Lived in Running and Ser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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