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마다가스카의 기억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영양이 잠에서 깨어난다. 영양은 자기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침이다. 사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사자는 자기가 가장 빠른 영양보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자든 영양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해가 떠오르면 당신은 이미 달리고 있을 것이다. 베른트 하인리히


만남이라는 신비는 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칼날이 자꾸 쓰면 무뎌지듯이 수많은 형식적인 만남 역시 사람을 신비에 둔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하다. 여행은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만남을 통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신비를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행은 단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며, 세상을 발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더 멀리 떠날수록 더 가깝게 볼 수 있고, 더 오래 떠날수록 더 깊게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여행이 아프리카 마다가스카(Madagascar)라면 무뎌진 마음이 충분히 벼려질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여름, 미국 가톨릭 구제회(CRS-Catholic Relief Services)에서 신학생들과 성직자들을 위해 마련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마다가스카로 떠났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마다가스카는 때묻지 않은 자연과 야생동물로 유명하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바오밥 나무, 카멜레온, 리머(Lemur)라고 불리는 검은색과 흰색의 긴 꼬리를 가진 여우원숭이가 마다가스카에 널리 퍼져있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17시간을 비행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해 하루를 쉬었다. 시간을 내어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의 생가를 방문했다. 다음날 다시 비행기를 서너 시간 타고서야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섬인 마다가스카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마다가스카는 ‘붉은 섬’이었다.


우리나라의 1960년대를 연상시키는 익숙한 논밭과 흙길에서 아이들이 그링고(Gringo-백인을 낮춰 부르는 스페인 말)를 보자 잔뜩 모여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아이들이 나와 닮아있었다. 알고 보니 마다가스카르인의 조상은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과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시아 사람의 얼굴과 흑인과는 다른 붉은 피부빛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지만 부드러운 얼굴과 함께 붉은 심장이 느껴지는 열정적 눈빛을 가진 사람들에게 남다른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성녀 마더 테레사(St. Mother Teresa, 1910-1997)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Missionaries of Charity)'는 오래전부터 마다가스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 일행은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이 운영하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방문했다.


일정보다 늦어져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한 소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쳐다보았는데 그 눈빛이 너무 무겁고 슬퍼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라(Sara), 2005년


우리는 서둘러 홈리스들에게 밥과 국을 퍼 주었다. 그들은 작은 통이나 비닐에 밥과 국을 받았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그날 한끼 식사만이 아님을 곧 알 수 있었다. ‘메르시!(고맙습니다)’라고 불어로 말하는 홈리스 중에 어느 누구도 더 달라고 보채지 않았다. 실은 어느 누구도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밥을 퍼 주는 백인을 본 적이 없었다.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식사를 다 나눠드리고 나니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익숙한 뿌듯함도 들었다.


그때 엠마누엘 수사님께서 기타와 아프리카 드럼, 쌀이 들어 있어 흔들면 소리가 나는 라이스 쉐이커를 들고 나오더니 신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했다. 우리는 즉석에서 신나는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가 흥겨워했다.


나는 라이스 쉐이커를 흔들다가 앞줄에 앉아계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일으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둘씩 일어나더니 곧 쉼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어나 기타와 드럼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었다.


1590380223525.jpg?type=w966 사랑의 선교회, 2005년


그때 깨달았다. 예수님께서 왜 하늘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신지를.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춤을 추는 곳, 모두가 가난, 배고픔, 걱정을 잊고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곳, 더 이상 주는 손도 받는 손도 없이 그저 마주 잡은 손만 있는 곳, 지위나 재물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된 기쁨만 있는 그곳에 바로 하늘나라의 충만함이 있었다.


햇볕과 비처럼 쏟아지는 하느님의 무상(無償)의 축복 속에 모두가 행복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노래와 춤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나는 자신을 잊고 춤을 추며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소녀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쉼터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마주쳤던 그 무겁고 슬픈 눈빛이 침묵 가운데 더 깊이 느껴졌다. 밥도 먹이고 사탕도 주었지만 아무 말도 없는 소녀를 보며 수사님은 아마 길거리 생활의 충격이나 배고픔의 고통 때문에 말문을 닫았을 것이라며 일러주셨다.


떠날 때가 되어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름 없는 홈리스들이었던 그들이 밥을 나눠먹고 춤을 추면서 이제는 형제자매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면서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한 분씩 사진을 따로 찍으며 나중에 보내드리기로 약속했다. 비록 옷은 남루했지만 태어나서 처음 사진을 찍을 때에는 근엄한 얼굴로 옷매무새를 만지는 모습이 짠했다.


어느 할머니, 2005년


이빨이 듬성듬성 빠진 할아버지, 얼굴에는 주름뿐인 할머니와 사랑스럽게 키스를 나누며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인사를 한참 나누고 있는데 아래에서 어떤 작은 손이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내려다보니 그 소녀가 사탕을 물고 애절한 눈으로 내 손을 더 세게 잡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흐르는 눈물로 소녀의 얼굴을 비비면서 꼬옥 껴안았다. 하지만 ‘벨로마!(Veloma-안녕)’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다가스카에는 말 못하는 이름 없는 소녀가 많았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조금이라도 장애가 있으면 부모는 문화와 관습 때문에 큰 죄책감 없이 그 아이를 버린다고 했다. 그렇게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키우고 있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을 방문했다.


모두 하나씩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 그 조그마한 아이를 가슴에 안으면 아주 약한 떨림으로 전달되는 슬픔과 불안, 절망이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사랑의 선교회 성당 십자가 옆에 쓰여 있던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I Thirst(목마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극심한 육체적 고통 중에 느끼셨던 그분의 목마름은 한편으론 희망을 잃고 고통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목마름이기도 했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은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매일 한 시간씩 그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셨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목마름을 안고 예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사랑의 선교회 성당, 2005년


열흘간의 마다가스카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었다.


수도꼭지에서 언제나 나오는 깨끗한 물, 월마트와 코스트코에 넘치게 쌓여 있는 물건, 남아 버리는 음식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며 심하게 목이 말랐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똑같은 인간인데 이렇게 다르게 살고 있음이 이해되지 않았고,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화가 났다.


많은 고통 받는 아이들 가운데 특별히 홈리스 쉼터에서 만난 소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 소녀를 나는 ‘사라(Sara)’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라는 마다가스카 언어로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그때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사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배고픈 사라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라를 잊지 않기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몸과 마음에 사라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달리기를 했다.


사라는 사제가 되기 위해 공부하는 나에게 그냥 사제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사제로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였다. 사제가 되는 것은 하루의 일이지만 사제로 살아가는 것은 평생의 일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가난한 이를 잊지 않는 것이 나의 사제성소에 중요한 목표가 될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떤 사제로 살아갈지 답을 찾는 과정이 나에게는 달리기였다.


가장 본질적인 행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반복적으로 되새기는 것, 그제서야 나의 달리기가 얼굴을, 아름다운 사라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