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신부' 이야기를 시작하며
"달릴 때 나는 하느님의 기쁨을 느낀다(When I run, I feel God's pleasure)."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에서 주인공 에릭 리들이 한 말이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잘 뛰도록 만드셨고 있는 힘껏 뛸 때 하느님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달릴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나를 살아있게 만드신 창조주를 찬미한다.
위대한 바오로 사도 역시 달리기를 즐겨했을 것이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내달리는 것'으로 고대 올림픽 달리기 경기에 비유하여 '썩지 않는 화관을 얻는 것'(필립 3,12 참조)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그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키기 위해'(1코린 9,25-27 참조) 바오로 사도는 계속 달렸을 것이다. 그는 세상 끝까지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하는 마라토너 선교사로서,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달리기로 아름답게 고백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나의 세례명은 '하상 바오로'다. 정하상(1795-1839)은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산 정약용의 형인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형 철상 가롤로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 때문에 순교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동생 정혜를 데리고 어머니 유 세실리아와 함께 풀려날 수 있었지만 재산은 몰수당했고 가문에서도 쫓겨나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자신의 수호성인인 바오로 사도처럼, 정하상 바오로는 온갖 어려움에도 신앙을 지켰으며, 조선에 사제가 없던 시절에 관헌들의 눈을 피해 걸어서 중국 북경까지 아홉 번이나 가서 사제를 청하였다. 마침내 조선에 엥베르 범 주교와 사제들이 몰래 입국했고, 엥베르 주교는 독신을 지키며 평신도 지도자로 활동하던 정하상 바오로가 사제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여겨 직접 그에게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정하상 바오로 가족은 모두 잡혔고 또 하나의 꿈인 순교를 맞이함으로써 사제가 되고자 하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렇지만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이하여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함께 한국의 대표 성인(Saint)으로 선포되었다. 정하상 바오로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신앙을 묵상하면 그 이름이 나의 존재에 새겨진 까닭은 그가 그토록 꿈꾸던 사제가 된 내가 달리는 신부의 삶을 통해 그처럼 성인이 되라고 부르신 것은 아닐까 되묻게 한다.
이 책은 지난 십오년동안 마라톤과 함께 한 나의 황홀한 이야기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아도취의 황홀감(Ecstasy)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체험, 곧 엑스터시(Ecstacy)의 그리스어 ex-stasis 어원대로 ex(바깥)와 stasis(서 있다 혹은 존재하다)가 합해져 '바깥에 존재하는' 혹은 '자신을 넘어서 초월하는' 체험이다. 달리기를 통해 자신에게서 나와 자신을 잊어버리고 타인에게로 향하는 일은 신비롭고 그 때문에 황홀하다. 자신을 넘어서 타인을 향해 완전한 무아(無我)의 경지를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나의 몸을 통해 나 자신 안에 머물지 않고 세상과 이웃, 마침내 하느님에게로 향해 달려간다.
동시에 달리기는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방법, 곧 나를 이해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세상에 대해 묻는 내가 철학하는 방법이다. 한 인간으로서 '하느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사도 17,28) 나만의 방식이며, 예수님께서 말한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한 기초를 놓기 위해 먼저 육체적으로 부지런해지기 위한 노력이다. 그동안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진실하게 대면하는 각성(覺醒)에 이르렀고 더 나아가 창의적인 길인 '살아있는 사람(Living Person)'을 만날 수 있었다. 달리기는 익숙한 내가 아니라 원하는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
그동안 그 여정의 황홀감을 혼자 묻어두었는데 지금에서야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부부를 위한 가톨릭 프로그램인 ME(Marriage Encounter)에서 활동하는 사제로 부부들에게 늘 하는 나의 말 때문이다. "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표현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고 표현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을 이제 고백함으로써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다. 그 사랑을 통해 내가 배우고 깨달은 것, 더 나아가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것에 대한 은혜와 감사함을 말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나처럼 달리기를 통해 삶에서 신앙에서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특히 젊은이들이 더 많은 상상과 도전으로 몸과 마음의 자신감을 찾으며, 마침내 믿는 사람 모두가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이 글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살아있는 사람'에서는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리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에서 '사라'와의 만남으로 어떻게 얼굴을 가진 달리기를 하게 되었는지, 또 보스톤, 뉴욕, 시카고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일,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사람으로 서브쓰리에 도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 '사제생활의 주춧돌'에서는 귀국하여 마라톤을 통해 젊은이들과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살아있는 사람의 십주년을 함께 기념하며, 새로운 도전으로 제주, 춘천, 군위마라톤에 참가하면서 성장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3부 '함께 꾸는 꿈'에서는 피로사회에서 바보처럼 뛰는 일을 통해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구원을 가져오는 '몸의 신학'을 체험하고,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이 함께 꾸는 꿈으로 끝을 맺는다.
의사이자 러너이며 달리기에 관한 한 철학자이기도 한 조지 쉬한 박사(Dr. George Sheehan)는 말했다. "달리기는 일반적인 것을 비상하게, 평범한 것을 독특하게, 일상을 영원하게 만든다. 놀이로 시작해서 고통을 통해 나아가고 마침내 기쁨으로 끝난다." 이제 그 비상하고 독특하며 영원한 여정의 첫 발을 내딛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