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아톤>: 누구나 처음이 있다

달리기야말로 인생에 대한 가장 위대한 은유다. 벗어나려면 몰입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프라 윈프리


마라톤은 모든 사람이 빠져들만한 운동은 아니다.


달리는 것이 도무지 맞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한때 아프리카 평원을 달리던 수렵인이었지만 이제 도시에서 문명인으로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을 리셋하고 본능보다는 이성을 찾고 땀보다는 매너 있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가끔 뛰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있지만 편안한 소파에 몸을 기대며 뛰는 일은 더 이상 자신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의 조상들이 포식자들에게 쫓길 때 도망치거나 상처 입은 먹잇감을 쫓아갈 때 뛰던 본능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인간만이 두 발로 걸으며 인간의 몸은 뛰기 위해 진화했다. 인간이 흘리는 땀, 발에 있는 돔 모양의 발바닥 활, 큰 볼기근(대둔근), 목덜미 인대 등은 먼 거리를 잘 달릴 수 있게 만든 인간 몸의 특징들이다.


우리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다만 오늘날 진화의 형태는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문화적 진화다. 생각하고 학습하고 소통하고 협력하고 혁신하는 문화적 수단을 통해 인간은 진보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가 선택한 행동들 중 어떤 것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뛰지 않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마라톤은 모든 사람이 빠져들만한 운동이기도 하다.


인간 몸에 새겨진 사냥의 본능과 쾌감에 귀를 기울이면서 몸을 움직이면 달리기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처음부터 42.195 킬로미터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는 없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 바퀴 200미터를 뛰는 게 생각지도 못한 도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뛴다면 그 다음에는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빨리, 그렇게 뛰다가 보면 호흡도 여유가 생기고 거리도 늘어서 단 일분의 뜀박질에 지구의 중력을 느꼈던 사람이 마침내 10킬로미터, 하프, 이어서 풀코스까지 완주할 수 있게 된다. 마라톤은 누구나 뛸 수 있다. 내가 믿기에는.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언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 30분경 도쿄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다.


구름 한 점 없이 좋은 날, 맥주를 마시며 잔디밭에서 그해의 센트럴 리그 개막전으로 야쿠르트 홈팀의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선두 타자인 데이브 힐턴이란 미국인 선수가 2루타를 치고 달리던 그 순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2003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신학교에서 학부 4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 오하이오 주에 있는 클리브랜드(Cleveland) 신학대학원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원장 신부님께서 가라고 해서 '예'라고 했지만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곳이었다.


더욱이 겨울이 5개월이 넘는 혹독한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운동은 일주일에 한번 하는 농구가 전부였다. NBA 선수들처럼 보이는 미국 신학생들 사이에서 처음 해 보는 농구는 도무지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도 꾸준히 열심히 했는데 신학교 간의 대항전과 같은 중요한 시합에 나가면 꼭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H.Paul, (우리가 이겨야 하니) 넌 쉬는 게 좋겠어.”


한번은 신학생들이 나에게 ‘축구(football)를 하자.’며 나가길래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며 아껴둔 축구화를 꺼내 신고 나갔다. 드넓은 잔디구장에서 실력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한 축구란 이상하게 생긴 공을 손으로 던지고 받는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였다. 내가 보기에는 ’핸드볼(handball)'이었지만.


KakaoTalk_Photo_2020-06-17-20-33-03.jpeg 미식축구 시합, 2004년 (녹색 반바지가 필자)


그래서 할 수 없이 러닝머신을 뛰기 시작했다. 비가 오거나 눈 폭풍우가 몰아쳐 일주일 내내 건물 안에 갇혀 있어야 할 때도 러닝머신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움직이는 벨트 위를 뛰는 것이 어색했고 거울을 보면서 달리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나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이었다.


격렬한 달리기로 땀을 흘리면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유학생활 중 밀려오는 거친 물살을 맞아 버틸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달려야 했다. 그런데 살기 위한 달리기는 오래 지나지 않아 변화를 맞이한다.


2005년 4월 어느 날, 한국 영화 <말아톤>을 보았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다섯살 지능의 스무살 청년 초원이(조승우 분)가 2001년 춘천마라톤 대회에서 서브쓰리(3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한 실제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500만명이 보고 감동했던 것처럼, 달릴 때 가장 행복한 초원이를 보며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나도 초원이처럼 마라톤을 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출처: 영화 <말아톤>


클리브랜드 신학교에 유학 온 유일한 외국인으로 살면서 말도 잘 안 통하고 이해도 느리고 학업에서도 늘 뒤처져 있던 나는 초원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멋진 말이나 뛰어난 머리로 나를 보여주기보다 몸으로 ‘내가 여기 있다.’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 역시 초원이처럼 ‘백만 불짜리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처음으로 뛰었던 마라톤 대회가 떠올랐다.


일반 대학교 2학년 때 과 후배들과 술을 먹다가 객기로 경주 벚꽃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선밴데 적어도 하프 마라톤 정도는 뛰어야지.’하고 준비를 했는데 연습 막판에 무리하다가 부상을 당해 10킬로미터로 변경해 대회에 출전했다.


벚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경주에서 10킬로미터를 거의 완주할 무렵, 갑자기 수백 명의 여학생들이 도로로 뛰어들어 달리는 사람들과 엉겨 엉망진창이 되었다. 소리 지르며 도로로 뛰어 들어온 여학생들은 그날 마라톤에 참가한 H.O.T.의 강타와 토니를 보러 온 열성팬들이었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 벚꽃 사이에서 괴성을 지르며 도로로 뛰어 들어오는 볼 빨간 소녀들의 모습은 첫 마라톤의 기억을 모두 삼켜 버리고도 남았던 것이다.




내가 초원이처럼 뛰고 싶었던 것은 하프코스 완주였다.


인터넷을 검색해 6주 훈련 프로그램을 찾았고 대회는 5월 22일에 있을 클리브랜드 락앤롤(Rock & Roll) 마라톤 대회였다.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에 이레네오 성인(St. Irenaeus, 130-202)이 남긴 말을 읽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The glory of God is the living man)."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그의 이름처럼, 그는 교회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며 이단에 맞서 정통교리를 수호하다가 순교했다.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이 인간의 길임을 믿고 가르치고 수호하다가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아있다는 것,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그것을 달리기를 통해서 다시 체험하면서 하느님을 바라보며 달리다보면 하느님의 영광을 내가 가진 몸으로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함께 뛰기로 한 학부 신학생 크리스(Chris Zerucha)와 ‘살아있는 사람 1(Living Man 1)’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우리만을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특히 가난한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신학교 교수 신부님 가운데 한 분이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신의 저항군(LRA: Lord's Resistance Army)이라는 무장 게릴라 반군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한 아이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LRA는 우간다 정부에 반대해서 생긴 군사집단으로 죠셉 코니라는 악명 높은 우두머리에 의해 지난 30년간 10만명 이상의 민간인 학살 뿐만 아니라 6만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납치해 소년병과 성노예로 삼았는데 '보이지 않는 어린이들(Invisible children)'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으로 그 어린이들을 위해 신학생들과 지인들에게 후원을 요청했고 $120을 모을 수 있었다.




마침내 대회일이 되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21킬로미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과 함께 도시의 도로 한가운데를 달리면서 내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달리기에 대한 동물적 본능이 깨어났다.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가운데 동물적으로 가장 살아있는 순간을 맛보았다. 이성과 매너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자유가 팔과 다리, 심장과 폐를 통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영혼마저 고양시켰다. 숨은 몸의 박자며, 땀은 몸의 환희였다.


달리기가 몸을 통해 나에게 주는 고통과 한계를 느끼며 결승선을 향해 뛰어갈 때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존재 방식이 있음을 깨달았다. 1시간 39분의 가슴 벅찬 체험이었다.


그날 밤 하루의 일을 돌아보며 일기를 적었다. 그리고 4663 번호표와 완주메달을 앞에 놓고 조용히 기도하였다. 신학생으로서만이 아니라 젊은 인간으로서 새로운 길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땀과 호흡으로 느꼈던 달리는 일이 가져다준 육체적 재미만이 아니라 가난한 어린이들을 기억하며 행동한 의미(意味), 나아가 몸을 내어줌으로써 더 깊은 자신을 발견한 삶의 묘미(妙味)를 깨달은 것이다.


나의 작은 상상이 맺은 생생한 결실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달렸고 땀을 흘렸고 환히 웃으며 마쳤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고픈 꿈이 생겼다. 어려운 삶을 견딜만하게 해 줄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