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젊은이들과 함께

정신을 지탱하고 마음을 활기 넘치게 유지하게 하는 것은 운동밖에 없다. 키케로


2013년 '살아있는 사람 9'는 다시 경주국제마라톤을 뛰기 위해 27명의 젊은이들이 모였다.


대회 전날 사수동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녀원 뒷동산에 올랐다. 원장수녀님의 배려로 가든 파티를 연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후원자들까지 함께 했는데 수녀원 뒷동산에 이동식 탁자를 놓고 하얀 보를 덮으니 결혼식 피로연 같았다. 내가 직접 만든 수제 맥주 LP9(Living Person 9, 살아있는 사람 9)을 마시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마라톤 준비를 하다가 처음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살아있는 사람으로 뛰게 되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후원금 봉헌과 감사미사는 수녀원 경당에서 바쳤다. ‘기억은 살아있는 사람을 만듭니다(Memory makes a living person).'라는 주제로 강론을 했다. 마다가스카에서 만난 사라의 기억, 그 기억이 옅어지다가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두려워 달렸던 기억, 그래서 숨과 땀으로 선명해진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고백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2티모 2,8). 그날 제2독서의 말씀처럼, 예수님 친히 우리에게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하셨듯이 우리도 기억을 통해 신앙인이 되고,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미리 동영상을 만들어 사라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1킬로미터 1만원'의 후원을 제안해서 325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살아있는 사람 9, 2013년


남은 것은 42.195킬로미터밖에 없었다. 나름 지난 1년 동안 훈련을 했고 날씨도 좋아 출발선에 섰을 때 마음은 이미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 탓인지, 코스가 힘들어서인지 몰라도 1년의 훈련이 무의미하게도 3:27:40의 기록으로 마쳤다. 작년에 비해 겨우 삼분을 줄인 것이 아쉬웠지만 스물일곱 명 모두 무사히 레이스를 마쳐서 기뻤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풀코스에 도전한 청년들 중 하나는 기권, 하나는 응급차행, 다른 하나는 걸어오고 있는 것을 데리러 가 마지막 2킬로미터를 함께 뛰어야 했다. 그리고 단체로 경주시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사우나에 갔다. 다같이 옷을 벗고 지친 몸을 뜨거운 물에 담구었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었다. 대구로 돌아와 삼겹살 파티로 하루를 마감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젊은이들과 함께 마라톤을 뛰면서 그들을 위한 체계적인 훈련법을 가르칠 필요성이 생겼다. '마라톤을 뛰어야겠다.'하고 마음먹는 것과 그것을 현실에서 이루어내는 것이 다름을 가르치고 마라톤을 뛸 수 있는 몸을 준비시켜야 했다.


가장 먼저 내가 터득한 발착지 자세와 호흡법에 대해 가르쳤다. 나는 처음 몇 년은 달리기를 무리해서 하면 허리 통증이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한 기회에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발견했다. 그것은 달리기를 할 때 발착지를 뒤꿈치부터 하던 것에서 앞꿈치로 바꾼 것이다.


발뒤꿈치로 착지를 하면 지면을 내려찍을 때 충격이 고스란히 무릎과 척추로 전해지지만 발 앞꿈치로 착지를 하면 발바닥 전체가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에 충격이 현저히 줄어들어 가볍게 뛸 수 있다. 수만 번의 동작을 반복하는 마라톤에서 충격을 줄이고 가볍게 뛸 수 있다면 더 오래 더 빨리 뛸 수 있게 된다. 유명한 케냐의 마라토너 엘리우드 킵초케 선수 역시 기존 마라토너들과는 다른 발 앞꿈치 주법으로 2018년에 마라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호흡법은 또 하나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이다. 나는 달릴 때 코로 두번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한번 길게 내쉰다. 숨을 들이쉴 때 두 걸음을 뛰고 숨을 길게 내쉴 때 두 걸음을 뛴다. 따라서 네 박자에 맞춰 두번의 들이쉼과 한번의 긴 내쉼이 리듬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발 앞꿈치 착지까지 더하면 달리는 것은 마치 나비가 앞으로 나아가듯 조용하고 부드럽게, 가볍고 리듬감 있게 이루어진다. 이런 상태로는 먼 거리를 뛰어도 몸에 피로가 덜 쌓인다.


실제로 마라톤 선수와 같이 달려보면 참 조용히 뛴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호흡과 발착지가 부드럽고 리듬감 있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번은 60대 후반의 수녀님께 발착지법과 호흡법을 가르쳐 드렸는데 몇 달 안에 10킬로미터를 가뿐하게 완주하실 수 있었다. 호흡과 자세를 갖추었다면 다음에는 하프코스와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알아보자.


보통 10킬로미터는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젊다면 누구나 뛸 수 있지만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내가 사용했던 6주 훈련 프로그램을 가르쳤다.


KakaoTalk_Photo_2020-07-13-07-44-29.png


평소에 운동을 즐겨 하는 사람이거나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6주 훈련으로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훈련법은 평일에는 가볍게 달리면서 주말에 장거리를 뛰는 것이다. 여기서 크로스 트레이닝이란 달리기 외에 자전거 타기, 수영, 등산 등 다른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핵심은 주간이 늘 때마다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다. 평소에는 각자 훈련을 하다가 일주일에 한번 신천 강변에서 만나 젊은이들과 함께 달렸다. 신천은 강을 거슬러 가창 쪽으로 달려도 좋고 반대로 금호강 쪽으로 달리기에도 좋았다. 달린 후에는 맥주 한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젊음은 도전에 맞서는 특권이다. 몇 몇 젊은이들이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했다. 16주 훈련 프로그램을 가르쳐 주고 함께 훈련에 임했다. 풀코스 마라톤 훈련은 쉽지 않다. 4개월 이상을 매일 달리기에 초점을 맞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먹고 마시는 식생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탈수 예방을 위해 어느 시점에서는 술까지 끊어야 하니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열심히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은 '마라톤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중독되었다'라는 표현은 '미쳤다', '제 정신이 아니다' 등에 비하면 부드러운 표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말에 있는 장거리 달리기를 충실히 해내는 것이다. 누구나 벽에 부딪치게 되는 32킬로미터를 적어도 두번 이상 뛰어서 몸이 장거리에 익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32킬로미터 장거리 훈련을 한다고 실제 대회 레이스에서 남은 10킬로미터를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머지는 정신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훈련이다.


IMG_3758.JPG 춘천마라톤, 2016년


32킬로미터 장거리 달리기 연습은 쉽지 않다. 나는 장거리 연습 때에는 꼭 '비상금 만원'을 챙겨서 뛴다. 종종 16킬로미터를 뛰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몸이 제 컨디션이 아니거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뛰다가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그때 땀이 식으면서 추위와 배고픔까지 닥치면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비관적인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다음부터는 그런 때가 오면 비상금으로 바로 택시를 탄다. 장거리 달리기에 실패한 것보다 집중력과 용기를 잃는 것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도 '비상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힘으로 안될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위기의 순간에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행 계좌의 잔고만이 아니라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도 때론 멀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는 일기장을 편다. 마음을 글로 옮기다보면 차분해지고 정리가 된다. 그리고 몇 년 전 같은 날들의 일기를 읽다보면,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라는 진리를 발견하고 하느님의 섭리를 되새긴다. 신앙인에게 가장 큰 비상금은 하느님밖에 없다.




피 끓는 마음만 가지고 풀코스에 임했던 젊은이들은 색다른 경험을 많이 했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 자동차로 찾으러 나가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친구를 태워온 경우는 웽웽 소리를 내는 앰뷸런스에 실려서 온 친구보다 나았다. 그 가운데에는 몇 시간을 달려서라도 결승선을 통과한 이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일생의 버킷 리스트를 체크하며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소개한 나의 16주 훈련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KakaoTalk_Photo_2020-07-13-07-44-37.png


'페이스' 달리기는 자신이 목표한 마라톤 기록에 맞춘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쉬운 예로 풀코스를 3시간에 달리고자 한다면 1킬로미터를 4분 16초 페이스로 달려야 한다. '템포런'은 여러가지 방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천천히 시작해서 중간에 목표한 페이스보다 조금 빠르게 달리기를 유지하다가 천천히 마치는 달리기다. '조깅'은 편안한 달리기며, '레이스'는 실제 대회처럼 달리는 것이다. 일요일에 실시하는 장거리 달리기는 천천히 편안하게 달리면서 거리를 늘려가는 것이 핵심이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준비하는 데에는 정도(正道)가 없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훈련법과 자세, 호흡을 찾고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초보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훈련해야 한다. 먼저 체력을 키우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10킬로미터 완주, 그리고 하프코스 완주, 그 다음에야 풀코스에 도전할 수 있다. 완주가 목표라면 무리하게 속도에 신경을 써서 훈련하기보다 42.195킬로미터를 뛸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때론 준비 없이 너무 무모하게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가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주자는 곧 달리기를 그만둔다. 그러나 자신의 체력에 맞는 마라톤 준비로 적당한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목표를 완수할 수 있다면 다시 뛰고 싶어진다. 그리고 제대로 마라톤 완주를 체험한 후에 들어서는 새로운 세계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마라톤 레이스다.


예전에 뛰었던 기억은 모두 잊고 언제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것, 이것이 마라톤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