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의지입니다. 김수환
2018년 1월 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년반만에 비서 신부로서의 소임을 마치고 군위본당 주임신부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본당신부가 된 것이다! 2017년 10월에 있었던 군위 삼국유사 마라톤의 좋은 기억이 운명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 동시에 2017년 12월에 완공된 김수환 추기경님의 생가에 들어선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원장도 겸임하게 되었다. 신학교 일학년 때 뵈었던 추기경님의 따듯한 미소가 떠오르며 그분이 유년시절을 보낸 초가집이 내 집처럼 느껴졌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그리신 자화상 '바보야'에는 추기경님의 삶과 그분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다. 47세에 세계 최연소,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되어 평생 하느님 사랑을 말하고 실천하며 살았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한 바보, 그래서 스스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하고 말씀하셨다. 85세 노구에 자신을 그리고는 '바보야'라고 부르며,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하고 수줍게 고백하셨다.
추기경님께서는 달리는 사람, 더 정확하게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많으셨다. 2002년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창립 미사에서 "달려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친필을 적어주셨고, 지금은 천오백 명이 넘는 전국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이 마라톤 대회 때마다 그 옷을 입고 달리고 있다. 추기경님의 응원을 몸에 새기고 달리는 이들을 보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뛰었던 바오로 사도의 열정과 환호가 느껴진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2018년 10월 13일, 189명의 '살아있는 사람 14'는 다시 군위 삼국유사 마라톤을 찾았다. "서로 밥이 되어주십시오."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새긴 파란 손수건을 모두 목에 두르고 시월의 가을날을 신나게 달렸다. 마라톤 후에는 군위성당에 모여 바베큐와 수제맥주를 마셨고 다함께 감사와 후원금 봉헌 미사를 드렸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What you dream alone remains a dream, but what you dream with others becomes a reality.)" 본당 주일학교 어린이, 학부모, 신자들, 수녀님들, 전국에서 온 청년들이 모두 함께 꿈을 꾸니 한번도 보지 못한 현실을 만났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서는 더 큰 현실, 곧 사랑의 공동체가 가져오는 신선한 즐거움과 보람이었다.
'열정'을 뜻하는 영어 패션(passion)이 고유명사로 더 패션(The Passion)이 되면 그것은 예수님이 겪으신 ‘수난’을 뜻한다. 무엇인가에 열정을 쏟아부을 때, 시간과 에너지를 과감히 투자할 때 때론 우리는 그것으로 인한 고통, 혹은 그것을 이루지 못한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실패가 두렵다고 시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런 열정에 ‘함께’라는 뜻의 컴(com)을 더하면 컴패션(com-passion), 곧 연민, 공감, 사랑이 현실이 된다. 남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 곧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이며 함께 달리는 행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는 14년째로 접어드는 나의 마라톤에서 특별한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매번 마라톤을 준비할 때마다 나는 마라톤에 입문한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해 달리고 목표에 도달하는지 함께 뛰면서 가르쳐 준다. 그러나 막상 레이스가 시작되면 언제나 혼자였다. 하프마라톤 4번, 풀코스 마라톤 15번을 완주하면서 한번도 적당히 뛴 적이 없었다. 나에게 마라톤이란 한계에 도전하는 절정의 경험,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녹아드는 시간,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영웅이 되는 전장과 다름 없었다. 먹이를 뒤쫓는 사자처럼 나름의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이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마라톤에서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보폭에 맞춰 함께 뛰기로 했는데 그 상대는 본당 구역에 있는 '성 바오로 청소년의 집' 중학교 1학년 김은준(시몬)이었다. 사라와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강론 때 듣고서 달리기 연습을 시작해 하프 코스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는 걱정을 했지만 매일 연습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함께 뛰기로 했다. 실제로 청소년의 집에 가서 소년들과 함께 연습도 했다.
중학생과 보폭을 맞춰 함께 하프 마라톤을 뛴다는 것, 내게는 생각지도 못한 도전이었다. 맘대로 뛰고 싶은 나의 욕망을 누르고 상대를 배려하며 뛰는 것은 나에게는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누군가와 동행할 때 나의 방식, 기대, 목표를 내세우기보다 동반자에게 '밥이 되어주어야 한다.'라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프코스 후반부에 들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 하는 소년을 계속 격려하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함께 뛰는 법을 배웠다. 내 것을 내려놓으니 우리 것이 있었다. 우리는 2시간을 훌쩍 넘겨 함께 골인했고 서로에게 완주메달을 걸어주었다. 나도 그만큼 기뻤다.
2018년 '살아있는 사람 14'를 준비할 때에는 한가지 평소와는 다른 일을 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공식 로고를 만든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Living Person)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과 인간에 대한 예수님 사랑을 가장 깊이 표현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십자가'를 결합해서 한 발자국 뛸 때마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냄을 형상화했다.
머리로 혹은 입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아니라 몸으로, 더 정확하게는 발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라 믿는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간 바오로 사도처럼 어디에서나 당당하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약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42.195 킬로미터를 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길인 한 걸음, 이 구체적인 한 발자국 없이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한 걸음부터 시작되고 한 발자국이 모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인생 여정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담론>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남아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그것입니다. 발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삶의 현장입니다. 수많은 나무들이 공존하는 숲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다시 발까지의 여행이 우리의 삶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마음 좋은 사람만 못하고, 마음 좋은 사람이 발 좋은 사람만 못합니다."
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달리기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가슴에서 발로 가는데에도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할 일이 없어 그렇게 오래 달리느냐?‘ 혹은 '제정신이냐?’ 같은 비아냥거림의 말이었다. 그렇다. 달린다는 것 자체는 생산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바보가 하는 일 같다. 그리고 한번 풀코스를 완주한다고 해서, 혹은 개인 기록(Personal Best)을 세운다고 해서 다음에도 그렇게 뛰리라고 보장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항상 처음부터 다시 준비해야 하는 마라톤, 바보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이렇게 달리는 바보는 처음에는 같이 달리는 사람들과 경쟁하지만 그 다음에는 날씨, 언덕, 기록과 싸우다가 마침내는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가장 최고의 적은 자기 자신이며, 다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은 관심도 두지 않을 보이지 않는 자신,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고픈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러너는 목숨을 건다.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안주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그 모습이 때론 고결해 보이지 않을까!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했다. "남을 아는 것을 지(智)라 하고, 자신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남을 이기는 것을 유력(有力)이라 하고, 자신을 이기는 것을 강(强)이라 한다." 여기서 지(智)는 외향적 현상을 아는 것이고, 명(明)은 내성적 근원인 도를 살피는 것이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다(有力)고 하지만 자신을 이기는 것이 참으로 강(强) 한 것이다(自勝者强). 그래서 노자에게 강함이란 오히려 부드러운 것으로 남과 다투지 않는 것이다. 남과 경쟁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을 넘어서기 위해 애쓴다.
예수회를 창시한 이냐시오 성인 역시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Dei Gloriam)'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달리기에는 항상 더 높은 목표가 있다. 최고의 개인 기록을 세웠어도 다음에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최선을 다해 레이스를 마쳤어도 다음에 더 잘 달릴 수 있다. 모든 일에서 더 높은 목표를 향해 최선의 노력을 바치는 것, 달리기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이와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늘 성장할 수 있는 더 높은 어떤 것을 바라보며 매일 최선을 다해 달리는 바보, 그래서 달리는 바보의 삶은 단순하다. 자신이 세운 더 큰 목표에 비하면 세상의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세상 다른 것들과 관계된 모든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했다. "참으로 중요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그 생활에 있어서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발 좋은 사람은 이런 생각도 한다. 발을 계속해서 움직이다 보면 가슴으로도 느끼고 머리로도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달리는 사람에게 인생 여정은 발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가슴에서 머리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무리 멀어도 한번에 한걸음씩 가야 한다.
64세의 울트라 마라톤 주자 소렌이 100마일(160킬로미터)을 완주하고 나자, 한 기자가 그에게 '어떻게 그 나이에 100마일을 달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나는 100마일을 달리지 않는다. 나는 1마일을 100번 달린다." 한번에 오직 1마일만 초점을 맞추며 달릴 때 그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달리는 철학자 역시 한번에 한발씩, 한번에 한호흡씩, 한번에 1킬로미터씩 달린다.
"독서는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라고 말한 프란치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말을 빌려서 말하면, 달리기는 완전한 인간을 만든다.
그 완전한 인간이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부족해 넘어지고 실패하지만 다시 일어나 털고 달려 나아가는 상처투성이인 인간을 말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그 한계에 계속 도전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러운 사람이 달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조지 쉬한 박사(Dr. George A. Sheehan, 1918-1993)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는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다. 조용하고 침착하며 좀처럼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 그는 대립을 피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머문다. 그러나 마라톤이 시작되면 그는 호랑이가 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발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끝까지 밀고 간다. 그는 자신을 고통의 가마솥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는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노력이든지 간에 불가피한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처럼 러너는 현상을 유지하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바보다. 남들이 인정하는 위치에 도달해도 편안히 그 자리에 안주하지 못한다. 항상 도전해야 할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몸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 누구나 꿈꾸지만 누구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깨달음, 오로지 달리기가 가르쳐 주는 것이다.
조지 쉬한은 계속 말한다. "많이 달릴수록 더 많이 달리고 싶다. 더 많이 달릴수록 달리기가 주는 깨달음과 가치, 매력을 가진 삶을 더 깊이 살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이 달릴수록 나의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더 확신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