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서의 업무는 다양하다
내향형 인간인 내가 공공도서관에 들어온 후 퇴직을 떠올리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3년 9월, 입직 후 일주일쯤 되었을까... 공공도서관에 들어와 어린이실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알게 된 바로 그날! 나는 하루빨리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서가 어린이실에서 유아, 초등 저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이라는 것을 해야 한단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공공도서관엔 어린이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공공도서관의 업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심장을 조여 오는 느낌... 내 인생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도서관의 업무는 실로 다채롭다. 영화 "러브레터"의 주인공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책만 꽂고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출 반납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없는 창의력을 쥐어 짜내기도 하고, 사람들과 긴밀한 소통을 해야 하기도 하며, 시민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기도 해야 한다.
사서의 일은 마주하는 대상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책을 다루는 일,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
먼저, 책을 다루는 일에 대해 알아보자.
책을 다루는 일은 전통적인 사서의 역할이라고 여겨지는 업무다.
자, 내가 의류 편집샵을 운영하는 사장님이라고 가정하자.
편집샵을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가게에 어울리는 옷들을 구입하는 것이다. 아마도 주기적으로 여러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옷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가게의 콘셉트에 맞는 옷을 구입해야 한다. 엄정한 기준에 따라 구입한 옷이라 할지라도 바로 진열할 수는 없다. 상품에 가격표를 붙이기도 하고 원활한 관리를 위해 전산처리용 바코드를 붙이는 등 판매를 위한 적절한 처리를 해야 한다. 작업이 완료되면 이제 사람들 눈에 띄는 곳에 예쁘게 진열하면 된다.
이와 흡사한 일을 도서관에서는 사서가 수행한다. 아마도 주기적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다양한 책들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도서관에 어울리는 책을 구입해야 한다. 자료선정기준에 따라 구입한 책이라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비치할 수는 없다.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분류기호를 붙이기도 하고 원활한 도서관리를 위해 등록번호 바코드를 붙이는 등 적절한 처리를 해야 한다. 작업이 완료되면 이제 자료실에 인계하고 이용자들 눈에 띄는 곳에 비치하여 제공하면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도서관은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여겨진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동안 사람으로 인해 기 빨리는 순간은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 사서 업무 중 두 번째 카테고리,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다.
우선 사서는 책을 빌리러 온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 옷을 사러 온 고객들의 쇼핑을 도와주듯, 독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도서 대출을 도와주기도 해야 한다.
전통적인 도서관에서는 딱 여기까지만 해도 됐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용자들의 질문은 비교적 평이했고, 그나마도 독서를 좋아하는 시민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덕에 질문의 수도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의 도서관, 특히 공공도서관은 책을 제공하는 것만큼 시민들에게 다양한 강좌나 이벤트를 자주 개최한다. 가끔은 슬프기도 하지만, 책을 다루는 일보다 강좌나 이벤트를 여는 것에 더 진심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됐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사서들이 강좌나 이벤트를 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이벤트를 기획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진행하는 등 사람들에 둘러싸여야만 진행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에 다녀본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작금의 공공도서관은 책을 상대하는 일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의 비중을 점점 늘려가고 있다. 내향형 인간들의 비극이 이제 막 시작된 게 아니라 비극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물론 업무적으로 사람들과 마주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축복받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뭐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공도서관 사서들 중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넘나 좋아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데 있다. 즉 공공도서관 사서들 중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다. 공공도서관의 업무가 실로 다양하다는 것을, 특히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업무, 대중에 나를 드러내야 하는 업무, 그래서 기가 쪽쪽 빨리는 업무가 많다는 사실을 모르고 들어온 사서들이 꽤 많다. 이게 문제다.
"저기요. 저는 내향형 인간이니, 저에게 맞는 업무로 바꿔 주세요!"라는 청원은 그 어떤 직장에서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공공도서관에는 잘못이 없다. 공공도서관의 사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입직한 내가 문제다. 그래서 널리 알리고 싶어졌다. 공공도서관은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사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직무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여러분, 사서의 업무는 실로 다양합니다. 조용하고 정적인 업무만 있는 건 아니지요. 심지어 MBTI의 16개 성격유형 중 무려 15개의 유형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냥 호기심에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사서가 수행하는 업무 중 이렇게까지 다채로운 직무가 있다는 사실에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그렇다. 사서의 직무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사서가 아닌 이상 짐작하기 어려운 업무들... 행정업무와 사서업무 사이 그 어디쯤 존재할법한 미묘한 것들과 이용자들이 볼 수 없는 공간에서 수행되는 비밀스럽고 궂은일까지... 그래서 드디어! 맘을 먹었다. 앞으로 이 업무들을 낱낱이 소개하기로... 그것도 MBTI 성격유형에 딱 맞는 업무들로 구분해서 말이다.
(다음 회차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