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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티

by 김 정

단체의 티

어떤 단체나 모임이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의견 차이’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지만, 태도와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내고, 누군가는 묵묵히 일을 해낸다. 또 누군가는 한 발짝 떨어져 말만 한다.
결국 모두가 만족하는 지점을 찾는다는 건 늘 쉽지 않다.


과거 보육원 아이들을 돌보는 모임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30명 남짓한 아이들과 봉사자들이 제한된 시간과 예산 속에서 가을 야유회를 준비했다.
그중 누군가 제안한 것이 바로 ‘단체 티’였다.

작은 예산으로 가능한, '카라 티'보다 비교적 저렴하고 통일감 있는 '반소매 라운드 티'.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입는다는 상징성은 충분했다.
의견을 모아 깔끔한 디자인으로 확정했을 때,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동안 관망하며, 지켜보던 한 봉사자가 말을 꺼냈다.

“라운드 티'보다는 '카라 티'가 어떨까요? 훨씬 단정해 보이잖아요.”

마음은 이해됐지만, 이미 정해진 일정과 예산 속에서 '카라 티'는 불가능했다.

결국 선택은 다시 '라운드 티'로 모였다.그러자 그 봉사자가 덧붙였다.

“그럼 차라리 그 돈으로 더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게 낫지 않을까요?”

순간, 모임 전체가 조용해졌다.
마치 '단체티'를 준비하는 일이 다소 허영처럼 느껴지며,
즐겁게 준비하며 쌓아왔던 시간들이 한순간 공허하게 다가왔다


옳음의 티

그의 말은 얼핏 옳고 그름의 문제처럼 들렸다. 그러나 곱씹어 보면, 그 논리대로라면 야유회 자체를 취소하고 모든 비용을 기부하는 것이 더 선하고 뜻깊은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단체 안에서 의견을 모으고 방향을 정한 뒤, 그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다가 뒤늦게 규범적 옳음만을 내세우는 태도는 가장 손쉬운 개입일 뿐이다. 결국 그것은 함께 의견을 내고 발로 뛰는 이들의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고 만다.
사람들의 수고가 존중받지 못한다면 단체의 동력은 쉽게 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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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내고 싶은 마음

때로는 형식이 단순한 겉모습을 넘어, 내용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과 봉사자들이 같은 옷을 입고 함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순간, 우리는 ‘우리’라는 연대감을 체감한다.
그 따뜻한 경험이야말로 돌봄의 진심이며,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단지 티셔츠 한 장일지라도, 같은 색과 문양을 나눈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끈이 되어 공동체의 의미를 더욱 단단히 묶어준다.

비록 소박하고 값싼 옷일지라도, 그 옷은 말해준다.
우리는 한 팀이고, 진심으로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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