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 차로 일찍 출발할 계획이었는데 내 앞에 주차한 이웃이 전화를 받지 않아 아침부터 멘붕이 되었다. 다행히 친구 차는 앞에 주차된 세 대의 차가 바로바로 차를 빼주어서 급 친구 차로 변경. 원래 출발 예정이던 8시보다 30분이 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계획대로 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살짝 늦어진 탓에 고속도로도 조금 더 정체되기는 했지만 주말임을 감안하면 무난하게 10시 반에 팔봉산 입구 도착. 작은 주차장은 이미 만차라 근처 커피숍에 차를 세워두고 내려와서 한 잔 마시기로 한다.
음기가 강해 인명사고가 많이 나서 그 기운을 누르려고 세웠다는 남근석을 무심한 척 지나치며 재밌기로 소문난 팔봉 어드벤처, 드디어 입장! 1봉부터 8봉까지 외길이지만 중간중간 하산로가 있다.
1봉으로 오르는 길은 적당한 오르막인데 오르는 산객은 많은데 길이 좁아 비켜서지를 못해 속도를 내지 못 하고 찬찬히 오른다.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1봉 도착! 1봉 정상석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길래 반대편 조망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순서를 기다린다.
8개의 봉우리는 거의 암릉이고 오르내리기 가파른 편이라 등린이들의 꺅꺅 소리가 난무하다.
은근슬쩍 손을 잡아주는 듬직한 오빠 놀이를 하는 장면들도 자주 연출되는 걸 보니 이런 걸 노리고 온 젊은이들도 꽤 있는 듯 하지만 우리는 산쟁이 언니들이니 혼자서도 잘 타요,를 시전하며 쿨하게 추월한다. 2봉은 작은 암자도 보이고 한편으로는 전망대까지 설치되어있어 홍천강 조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역시 줄을 서서 인증 사진을 찍고 3봉으로 이동. 사다리 같은 계단, 돌팍마다 박혀있는 철봉과 호치케스(스테이플러가 맞는 표현이지만 느낌이 살지 않아 ㅋㅋ), 형광색 로프까지 다양하게 경험하며 봉에서 봉으로 오르내린다. 봉과 봉 사이가 그리 멀지 않기에 봉우리마다 사람들이 열심히 기어오르는 것을 보는 것도 또 나름의 팔봉산 감상포인트인 듯.
3봉을 지나고 나니 하산길이 보인다. 먼 길 와서 입장료까지 냈는데 우리는 당연히 사람들이 7봉까지는 (8봉은 험하다고 해서)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중탈하는 것을 보고 좀 의아했는데 그 비밀은 to be continued!
4봉을 지나고 5봉, 6봉, 7봉까지는 정상석이 쪼그매서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나마 주말이라 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이 대기 중이어서 놓치지 않았지만 한산한 주중이었다면 한두 개는 못 보고 지나쳤을 듯하다. 6봉을 지나 적당한 자리에 앉아 가볍게 김밥으로 충전을 한다 (요번 주 김밥은 방배김밥).
(나는 안 하지만)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인증하는 친구와 한참 걷다 보니 문득 팔봉산의 정상 인증은 어디였는지 궁금해졌다. 전에도 와본 적 있던 친구는 줄서기 번거롭다며 1봉 이후에 굳이 인증사진을 찍지 않았던터다. 지나가던 아저씨가 여기는 2봉이 정상이라며 알려주셨는데 돌아가기엔 우리는 이미 7봉까지 와버렸... 연두연두한 아기손가락 같은 단풍나무의 잎새를 보며 가을에 꼭 다시 오자고 위안하며 8봉을 향해 (눈물 좀 닦고) 직진. 내리막을 따라가다 보니 유튜브에서 봤던 무시무시한 경고문이 뙇!
그렇지만 8봉산의 인증사진을 7개만 남길 수는 없기에 우리는 모두 8봉으로 향했다. 그런데 딱히 8봉 오르는 길만 힘들다고 하기엔 앞의 봉우리들도 그렇게 유순하지는 않았기에 경고문이 붙을 정도인가, 싶었다. 아무튼 기분 좋게 8봉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이제는 본격 하산길. 가파른 내리막을 난간에 매달려 내려오면서 그제서야 깨달았다. 8봉 입구의 경고문은 이 하산길 때문이라는 것을... 팔봉산의 암릉미에 대해 익히 들었던 우리 일행은 접지력 좋은 등산화를 신은 덕에 그나마 수월했지만 깎아내리는 듯한 내리막은 사실 거의 팔힘으로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 가루를 따라가듯이 호치케스만 졸졸 따라 밟으며 내려간다. 가파른 각의 내리막에서는 몸을 돌려 오르는 자세로 내려가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짧은 구간이 아니라 내리막 내내 그런 코스라 나 때문에 행여 정체가 되어 뒷사람들에게 민폐가 될까 팔에 힘을 잔뜩 주고 쭉쭉 내려왔다.
드디어 지상에 당도하자 홍천강을 끼고 걷는 예쁜 산책로가 나타난다. 방금 전까지 거칠게 오르내린 8개의 봉우리가 전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잔잔하게 흐르는 강줄기를 벗삼아 걷는 산행의 마무리는 평안하기 그지없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온 후에는 배낭을 머리에 이고 시원하게 강에 몸을 담그고 걷기도 한단다.
세 시간의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팔봉산은 나에게 알러지와 근육통(어깻죽지와 허벅지) 역시 강렬하게 남겼다. 그래도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 타는 재미 뿜뿜한 팔봉 어드벤처는 기회가 닿는 대로 금세 다시 올 것 같은 산이다.
[요약] 1. 코스: 1봉부터 8봉까지 외길 (중간중간 하산길 있음), 2.6km, 휴식 포함 총 3시간 운행 2. 기온: 10/16 3. 착장 - 상의: 컬럼비아 집업티,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 하의: 블랙야크 춘하바지 4. 기타 준비물 - 장갑(필수) 5. 장점: 1일 8봉 성취감, 암릉미 최고 6. 단점: 입장료, 서울출발시 고속도로 정체 7. 다음 방문 계획: 단풍 예쁠 때 다시 가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