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40분, 사당역 10번 출구에서 안내산악회 버스에 올랐다. 말로만 듣던 안내산악회를 처음 이용하는지라 설레기도 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일단 도전! 방태산행은 인원이 부족하여 인근의 곰배령 산객들과 한 차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안내산악회는 칼같이 시간 맞춰 출발한다던 소문과 달리 출발 예정시간인 6시 50분이 지났는데도 차가 출발을 하지 않는다. 7시에 양재역에서도 사람들을 태워야 하는데 왜 이러지? 이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7시가 되자 순식간에 들이닥친 경찰의 주정차 단속에 차가 드디어 움직인다. 그런데 좌회전을 하는 줄 알았던 버스가 갑자기 유턴에 유턴을 거듭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기사님은 여기저기 급하게 전화통화를 한다. 불꽃처럼 단속 중인 경찰에 못 이겨 다시 출발한 버스가 양재에 멈춰 서고 기사님께서 황급히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는 7시 15분에 복정에서도 사람들을 태워야 하는데 기사님은 돌아오지를 않는다. 한참을지나고서야 씩씩거리며 올라선 기사님께서 대뜸 죄송한데 자기 오늘 이 버스 운행 안 하겠다며 다른 차 타고 가시라고 이제 내리라는 폭탄발언을 쏟아내신다. 알고 봤더니 안내산악회는 차마다 한 명씩 산대장님이 동행해야 하는데 사당에서 산대장님이 버스에 타질 않으셔서 빙빙 돌았는데 우리 버스가 출발해버렸다고 생각한 산대장님은 양재에서 합류할 계획으로 다른 버스를 타버리셨단다. 게다가 곰배령팀과 방태산팀이 한 차로 합쳐지면서 아침에 배차가 변경되어 기사님과 산대장님이 서로 연락처를 잘 몰라서 커뮤니케이션이 꼬여버렸던 것이다. 기사님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사람들, 빠른 포기로 배낭 들고 내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일행은 어찌할 줄 몰라 어버버거리며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러고도 한참을버스가 꼼짝 안 하길래 그래도 오늘 산을 가긴 가야겠어서 근교의수락산이라도 가자 싶어 지하철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산대장님께서 올라오시더니 기사님께서 양해해주셔서 이제라도 출발을 하게 되었다며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하셨고 기사님께 드리는 응원의 박수와 함께 정말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로 출발하게 되었다. 40분이나 늦게 출발한 통에 휴게소에 도착하니 화장실까지 인산인해다. 버스에서 나눠준 김밥으로 대충 요기를 하고 다시 열심히 가던 길을 간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강원도답게 굽이굽이 산길이 이어지고멀미가 날 것 같은 무렵, 드디어 방태산 자연휴양림에 입장한다.
안내산악회의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반 넘게 늦게 도착했기에 다시 모이는 시간도 그만큼 늦추기로 하고 차에서 내린다. 화장실에서 정비를 하고 계곡 옆 아스팔트 도로로 1km 넘게 야영장까지 걷고서야 2주차장 옆의 등산로에 진입한다.
드디어 걷는 흙길. 경쾌한 계곡 물소리와 머리까지 맑아지는 새소리, 서늘한 기온에 역시 여름산으로 유명한 방태산답구나, 감탄을 거듭하며 트레킹처럼 완만한 길을 걷는다. 첫 갈림길에서 우리는 환종주의 긴 코스를 택해 좌회전 후 초반 1.2km를 빠르게 걷고 조금 가파른 등로 앞에서 첫 번째 목적지인 매봉령이 0.8km 남았음을 확인한다. 매봉령까지는 깔딱이라고 유튜브에서 미리 예습을 하긴 했지만 초반 평탄한 길을 워낙 빠르게 왔기에 이제 시간 걱정을 좀 내려두고 평소 내 페이스대로 가기로 한다. 숨이 헐떡이는 가파른 언덕에 습식 사우나처럼 안개 가득한 숲길을 걷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흐른다. 손수건을 깜빡해서 계곡에서 닦으려고 챙겨온 극세사 스포츠 타월을 목에 둘렀더니 친구들이 한사랑산악회같다며 놀린다.
0.8km는 충분히 지난 것 같은데도 매봉령 표지는 보이지 않는데, 산위쪽에 비가 와서 포기하고 내려오신다는 산객분들을 만나니 발걸음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초반 1.2km보다도 훨씬 더 오래 걷는 기분이 들고서야 드디어 만난 매봉령.
여기서부터 구령덕봉까지는 상당히 완만한 능선길이긴 한데 안개같던 공기가 가끔 보슬비처럼 흩뿌려지는 듯하여 바람막이를 꺼내입었다. 드디어 나무숲을 벗어나 하늘을 마주하는 구간. 그런데 햇님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의 안갯속은 여전하다. 그나마 산매화와 각종 야생화에 조금 위로를 받긴 했지만 작년보다 꽃도 덜 피었다고 한다 (그만큼 벌도 적은 것 같아 그나마 다행). 유튜브에서는 조망이 환상으로 펼쳐 보이던 전망대에 가서도 구름은 개일 줄 모르고 우리는 진짜 한 치 앞 정도만 간신히 내다보며 아쉬움을 삼킨다. 주억봉으로 향하는 도중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편육에 열무김치, 도토리묵사발과 샐러드로 맛나게 허기를 채우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산객님 한 분이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신다. 우리가 뭘 잘못했나 싶었는데 두리번거리는데 알고 보니 일행이 마시던 막걸리에 잠시 넋을 잃으신 모양이다. 비주류 3인에 외로워하던 주류 1인이 기분좋게 한 잔 따라드리니 세상을 다 얻으신 표정이다.
덩달아 우리까지 기분좋게 점심을 마무리하고 다시 주억봉으로 출발. 매봉령까지의 0.8km에 비하면 세상 순한 깔딱을 지나 예상보다 빠르게 정상에 도착했다.
행여나 했지만 구름은 여전히 잔뜩 심술을 부리는 중이었고 정상석과 정상목에서 각각 인증사진을 찍고 이제 버스를 타러 하산.
하산길은 유부트에서 본 대로 아주아주 가파르다. 이쪽으로 올라왔으면 매봉령쪽보다 훨씬 힘들었을 듯하다 (아침에 안내산악회에서 받은 등로안내엔 주억봉을 먼저 들는 시계방향 코스로 안내되어있었는데 유튜버들은 다 반시계로 돌길래 우리도 반시계로 돌았다). 챙겨온 스틱을 꺼내 들고 조심조심 한 발씩 디뎌 내려간다.
올라온 길과 비슷하게 가파른 등로를 내려오면 다시 물소리 시원한 트레킹 구간이다.
버스 시간까지 빠듯하지 않아서 휴양림 화장실에서 잠시 정비도 하고 숨을 고른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버스 타는 곳 근처 이단폭포까지 구경하려고 다시 포장도로를 걷는다. 터덜터덜 걷다 보니 이단폭포에 도착. 가물어서 졸졸거리는 계곡물조차도 구경하기 힘든 서울 근교 산들만 보다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폭포를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그런데 너무 마음을 놓고 천천히 걸었던 건지, 포장도로가 우리 예상보다도 길었던 건지 계곡에 발까지 담글 시간은 나질 않아 그냥 눈에만 담고 버스에 도착하니 예정 시간인 5시 30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는데도 우리 빼고 다 탑승완료였다 (짧은 코스로 간 팀도 있고, 우리보다 점심을 후다닥 드셨을지도). 토요일 저녁이라 상경하는 고속도로는 그다지 막히지 않아 사당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넘었다. 오늘은 좀 고급스럽게 먹어보자며 정한 메뉴는 참치회. 스키다시도 괜찮고 가격 대비 참치회도 무난하다 (사실 배가 고팠던 우리에게 뭔들 맛이 없었을까 싶긴 하다).
그저 뽀얀 곰탕으로 밋밋하게 기억될 뻔했던 방태산을 쫄깃한 에피소드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겨준 안내산악회 해프닝 덕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역시 어느 산을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한 함산. 부디 오래도록 함께 다닙시다! (라고 적고 델꼬 다녀주세요!라고 읽기)
[요약] 1. 코스: 방태산 자연휴양림 - 갈림길 - 매봉령 - 구령덕봉 - 주억봉(정상) - 방태산 자연휴양림 총 12km, 4.5시간 운행 2. 기온: 15/27, 습도 80% 3. 착장: 반팔티, 반바지, 니삭스, 바람막이 4. 기타 준비물: 등산스틱, 벌레기피제 5. 점심 메뉴: 도토리묵사발 (도토리묵, 야채, 얼린 냉면육수) 6. 장점: 휴양림부터 1km 넘게 평지에서 계곡소리 들으며 걷는 시원한 트레킹 구간 7. 단점: 날씨요정님이 필요해 ㅠ 8. 다음 방문 계획: 날 좋은 날 매봉령에서 전망대까지만 갔다가 원점회귀할 듯 + 기왕이면 자차로 2주차장까지 올라가고 싶다 (포장도로 걷기 싫어하는 1인)
[오늘의 교훈] 1. 강원도 높은 산은 꼭 화창한 날씨에 가자! 2. 다음엔 방태산 휴양림 내에 통나무집 같은 숙소 잡아두고 9시 일반등산객들 입장 전 새벽에 조용히 오르는 것도 괜찮을 듯. 3. 주말 나들이가 많은 시기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북적이니 차내 간식도 꼭 챙겨가자 (노는 데에도 진심인 부지런한 한국인들).
덧. 안내산악회 + 들머리 날머리를 다르게 할 수 있다. + 차에 갈아신을 양말, 신발 등을 두고 내릴 수 있다. + 운전 스트레스 없이 우등버스 좌석에서 편하게 잘 수 있다. 더불어 노선에 따라 버스 전용 차선 개꿀 (강원도는 제외). - 출발지인 사당역은 주말 아침이면 대형버스 대혼돈이라 내 버스를 잘 찾아야 한다 (시간 여유있게 미리 도착할 것). - 산대장님의 역량에 따라 산행 코스 설명이나 진행이 많이 달라진다. - 등린이가 끼면 안내산악회가 주는 시간에 못 맞출 수도 있다 (처음이라 쫄려서 계속 쫓기듯 걷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