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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Jun 26. 2022

[20220618] 18. 수락산 종주

한줄요약: 무럭무럭 자라나자!


구름 가득한 일기예보였지만 그나마 전날까지 비예보였다가 비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산으로 향한다.

작년 가을엔 보통 많이 찾는 수락산역 들머리에 석림사-장암역 날머리 코스로 다녀왔으니 오늘은 거의 수락산 종주에 해당하는 코스로 운동을 제대로 해보려고 한다.

당고개역에서 만나 역 뒤편에서 김밥과 도토리묵을 사서 출발 (근데 솔직히 둘 다 맛은 별로...).

학림사로 가는 들머리 찾기가 좀 복잡했지만 친절하신 등산 선배 블로거님들 덕에 헤매지 않고 오르기 시작한다.

포장도로이긴 하지만 조금 가파른 초입부를 지나고 학림사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숲길이다.

원래 비가 올 뻔한 날씨였기에 해는 안 보이고 습도는 매우 높은데 바람마저 불지 않아 초반부터 땀이 쭉쭉 나기 시작한다.

한참 오르다 보니 전에 수락산역에서 올라왔던 길이랑 얼추 만나는 느낌이다 (그땐 진짜 산생아 수준이었어서 확실치는 않지만).

그래 한 번 다녀왔다고 도솔봉까지는 조금 눈에 익은 길이라 열심히 오른다.

작년에는 벌벌 떨면서 오르내리던 도솔봉 아래 암릉도 이젠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오르내리는 나 자신에게 사뭇 뿌듯하다.

다시 수락산 정상인 주봉으로 향하는 길.
물이 떨어질 만큼 큰 암벽이 많은 덕에 이름도 수락산(水落山)인지라 사방이 확 트인 능선에서 보는 전망도 수려하고 곳곳에 돌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중간중간 철모바위, 코끼리바위 등 주워들은 바위 이름은 많긴 한데 슬랩에 도전할 정도의 깜냥은 아니라서 잘 타는 사람들 흘깃흘깃 구경만 하고 그냥 능선에 놓인 암릉 밟는 정도로 만족한다.

얼마 전 어느 정신 이상한 사람이 수락산 주봉 정상석을 뽑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린 까닭에 잠시 생겼던 임시 정상석과 다시 찾아온 정상석 덕분에 수락산은 이제 더블 정상석이 되었다.
2주 연속 곰탕에 아쉽기는 했지만 비가 오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주봉 근처에 자리를 잡고 오늘의 점심을 먹기로 한다.
각자 조금씩 준비해온 음식을 노나 먹으면서 별것 아닌 수다에 깔깔 한바탕 웃으며 오늘도 이렇게 산우들과 식탁의 정(?)을 나눈다.

배도 채우고 에너지도 채우고 이제 슬슬 하산을 시작한다.
정상석을 집어던진 사람이 수락산의 명물 기차바위의 로프도 끓어버린 탓에 (도대체 왜?!) 기차바위 슬랩은 다음을 기약하며 기차바위 우회로를 찾아 나섰는데 뭔가 길인 듯 아닌 듯 묘하다.
우왕좌왕 일행들과 헤매고 있는데 딱 봐도 포스 넘치는 산꾼 아저씨를 만나 따라나서기로 한다.
원래는 비잉 둘러가야 하는 우회로인데 기차바위 구간이 폐쇄된 탓에 다들 우회로로 가야 했던 몇 달 새 좀 더 짧은 지름길이 생긴 모양이다.
아마 우리끼리는 절대 찾아가지 못했을 길을 아저씨 꽁무니만 졸졸 따라 내려왔다.
우회로를 내려와 로프가 끓긴 기차바위를 올려다보니 다른 산악회 분들이 직접 가져온 로프를 늘어뜨리는데 길이가 택도 없이 짧다.
짧은 줄에 우물쭈물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 곧 끓기지 않는 튼튼한 로프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니 괜히 위험한 도전은 말고 안전하게 좀 더 기다렸음 싶어졌다.

한참 내려오다 갈림길에서 지난 산행에서는 가보지 않은 도정봉으로 가보기로 한다.
수락산은 수락산역-도솔봉-주봉-석림사-장암역 코스로 많이 찾는데 우리는 도정봉을 추가해 쌍암사-장암역 방면으로 날머리를 잡아 수락산을 준종주하는 느낌으로 즐겨보기로 한다.
약간의 깔딱과 한쪽엔 서울, 다른 한쪽엔 남양주가 보이는 능선을 지나 도정봉에 도착한다.
북적이던 주봉과 달리 도정봉에는 우리 일행뿐이다.
서울 근교산에서는 보기 드문 한적함에 나는 아예 드러누워 산바람에 잠시간 땀을 식히고 머리도 식힌다.
곰탕인 날씨 덕에 따가운 햇살 없이 편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니 세상 시름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잠시 뒹굴거리다 이제는 본격적인 하산길.
지난번 석림사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오늘 쌍암사 구간도 꽤 급격한 경사로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아마도 계곡이었을 골짜기일 텐데 물소리는커녕 물이 흐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정말 날이 가문 듯싶어 안타깝다.
이쪽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등로라 중간중간 긴가민가 싶은 길도 있었지만 헛갈릴만한 지점마다 등장한 친절한 이정표 덕에 알바 없이 오후 4시 즈음 무사히 하산한다.


오늘의 먹부림은 수락산 숯불 닭갈비.
철판 닭갈비 위주인 서울에서 보기 드문 숯불 닭갈비이다.
지글지글 타기 전에 열심히 뒤집어주며 단백질을 보충하며 원기회복!


작년 11월, 천둥벌거숭이마냥 백록담 한 번 다녀왔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등산.
초짜 시절 다녀왔던 수락산을 반년 만에 다시 찾으니 내가 얼마만큼 자라고 성장했는지,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세상에 고수들은 얼마나 많은지도 새삼 돌이켜볼 수 있는 하루였다.
서울 근교산들은 계절마다 자주 찾아갈 텐데 다음에 수락산을 왔을 때도 오늘보다 더 나아져있기를 바라본다.


[요약]
1. 코스: 당고개역 - 학림사 - 도솔봉 - 주봉 - 도정봉 - 쌍암사 - 장암역, 9.26km, 4.5시간 운행
2. 기온: 22/30, 습도 높음
3. 착장
- 나이키 드라이핏 반팔, 컬럼비아 레깅스
- 미스터리 렌치 배낭
4. 기타 준비물
- 무릎보호대, 벌레기피제, 선블락
5. 점심 메뉴: 도토리묵사발
6. 장점: 암릉, 능선, 전망, 계곡 두루 갖춘 팔방미인
7. 단점: 계곡에 물이 없어서 오늘도 족탕 실패
8. 다음 방문 계획: 기차바위 로프 설치하면 꼭 다시 와야지!

[별점]
1. 난이도: 3.0 (긴 코스 vs 짧은 코스 입맛대로 선택 가능)
2. 풍경: 2.0 (2주 연속 곰탕이라니 ㅠ)
3. 추천: 3.5

[오늘의 교훈]
1. 등산에는 탄수화물이 필수! 도토리묵사발(feat. 냉면육수)은 시원하긴 하지만 탄수화물만큼의 열량을 공급해주지는 못한다.

2. 여러 산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가끔씩 다녀왔던 산을 재방문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좋은 듯!

3. 날이 더우니 등에서 불난다;; 배낭에 등판 패널이라도 사서 붙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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