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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Apr 27. 2024

오래된 불탑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간다라 이야기 #19

탁실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불교유산은 다르마라지카(Dharmarajika) 스투파이다. 탁실라의 상징과도 같아서, 구글에서 'Taxila'라고 검색하면 이 스투파가 탁실라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나오는 유명한 탑이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중심부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는 고대도시 시르캅에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이는 부처가 정한 '승원은 마을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지어야 한다.'는 지침을 따른 듯하다. 덕분에 이 역사적이고 유명한 문화유산에 접근하기는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파키스탄의 불교유산들과 같이 언제나 고즈넉한 편이다.


스투파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 있기에 약간의 경사진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한다. 도중에는 스투파 건립 당시부터 흘렀다는 작은 실개천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이 물을 마시면 깨달음을 얻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물 자체는 설령 깨끗할지도 모르겠지만, 듬성듬성 녹조가 껴 있어 차마 마실 엄두는 나지 않는 모습이다.


은 계단 길의 끝에 서면, 홀연 고대의 문화유산들이 넓게 펼쳐진다. 곳곳에 크고 작은 돌방들이 가득한데, 그 사이로 거대하고 둥근 돌산이 우뚝 솟아있다. 바로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이다. 아소카대왕이 만들었다고 하니 시초는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듯하다. 하지만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건물들이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스투파 설립 이후 이 일대에 증개축과 신축이 끊임없이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분명 지금의 한적한 모습과는 달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바라보고 수도를 하고자 했던 불교도들이 돌방 하나하나에 들어가 명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전역 사진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돌방들을 지나쳐 스투파로 다가간다. 스투파의 상부는 대부분 무너져서 원래의 모습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스투파 둘레로 이어진 두 길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기단 위의 돌로 포장된 길이고, 다른 하나는 기단 아래쪽에 배치된 흙길이다. 기단 위로 스투파를 시계방향으로 돌아보는 것은 아마도 격이 높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록 격이 높지 않음에도 기단 위 탑돌이 길을 돌아보는 호사를 누려본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정면사진


시계방향으로 탑을 따라 돌다 보면, 투박하게 마감된 석재들이 사이사이로 과거에는 무엇인가 들어있었던 것 같은 공들이 눈에 다. 특히 스투파로 접근할 수 있는 네 방향의 계단 인근에는 큰 부조조각들이 설치되어 있었을 공간들이 확인된다. 탁실라 박물관의 유리장 안으로 옮겨간 불상들이 이곳에 놓여있었을 모습을 상상해 면 과거의 다르마라지카 스투파의 위상이 약간이나마 느껴진다. 보존기술만 충분하다면 박물관에 있는 회반죽 조각들을 다시 원위치로 되돌고 싶다.


다르마라지카 승원


스투파를 중심으로 한 건물군 뒤쪽으로 승원이 있다. 승원의 한가운데에 사각형의 커다란 연못이 놓여있고, 연못을 둘러싸고 작은 방들이 배치되어 있다. 간다라의 전형적인 승원 모습으로 시기는 스투파의 건립시기에 비해 많이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모습은 대부분 석조 구조만 남겨진 것이라 딱딱하게 느껴진다. 스님들이 살았던 곳인 만큼 분명 목조로 된 시설이 석조보다 훨씬 풍부하게 배치되어 있었을 것이고, 중앙의 연못에는 연꽃들이 가득 피어있었을 것이다.


(좌) 다르마라지카 출토 석가모니 뼈사리, (우) 존 마셜 초상화


1912년 존마셜은 처음으로 다르마라지카 스투파를 발굴했다. 이미 도굴로 인해 메인 스투파는 빈 상태였다. 그럼에도 많은 발견이 있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발견은 부처님의 뼈사리라는 이름표가 붙은 유물이다. 스투파의 맞은편 예배공간의 발굴 과정에서 수 겹으로 된 금과 은상자에 담겨서 출토되었는데, 상자 안에서 명문 은판도 출토되었다. 명문에는 서기 78년에 Noacha 마을의 Urusaka가 부처님의 뼈사리를 봉헌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부처님의 뼈사리는 불교 유산에 있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이다. 다만, 아소카 대왕이 아니라 그보다 3백 년이 지난 시점, 부처님 사후로부터 5백 년 이상이 지난 시점에 새롭게 봉안한 점에 다소 의문이 들기는 한다. 해당 뼈사리는 탁실라 박물관의 전시실에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다르마라지카 스투파 발굴조사 보고서 일부


그 외에도 수백수천의 동전들과 불교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가장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동전은 기원전 2세기의 동전이다. 아소카대왕이 기원전 3세기의 사람이니 이 동전을 통해 다르마라지카의 시대에 대한 신빙성을 다소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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