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구법승들이 간다라를 다녀갔지만 전승되고 있는 여행기는 한정적하다. 6세기 초반, 송운(宋雲, Song Yun)과 혜생(恵生, Huisheng)은 황실의 명령을 받아 간다라에서 불경 170부를 가져왔음이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담겨있다.
낙양가람기와 송운행기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는 6세기 중반 북위의 상황을 기록한 소중한 역사서이다. 저자 양현지(楊衒之)는 낙양을 중심으로 70여 곳의 사찰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하는 한편으로 관련된 사건, 인물, 역사, 문화 등 자신이 본 관점에서 중요하다 싶은 이야기들을 다섯 권의 책에 담았다. 1500년 전의 일이기에 하나하나의 기록이 희소하여 과거를 이해함에 있어 소중하다.
낙양가람기 사진 ⓒ Baidu 백과사전
이 낙양가람기의 마지막 권인 제5권에 간다라를 다녀간 구법승 송운에 대한 기록, '송운행기(宋雲行記)'가 포함되어 있다. 5천 자 내외로 짧은 기록이지만 간다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문의리에는 둔황 사람 송운의 집이 있다. 그는 혜생과 함께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 신구 원년(518) 11월 겨울 호태후가 숭립사 비구 혜생을 보내 서역에서 경전을 가져오게 하였더니 170부를 가져왔는데 모두 대승경전이었다. - 송운행기 첫 부분 (낙양가람기 5권) [다정, 김규현 역주]
송운행기는 앞의 인용구와 같이 송운이라는 사람에 대한 소개글과 같이 시작한다. 하지만 갑자기 저자가 송운이 된 듯한 느낌으로 여행기를 풀어나간다. 여행의 순서대로 1) 적령, 2) 토욕혼국, 3) 신선성, 4) 좌말성, 5) 한마성, 6) 호탄, 7) 칼르갈리크, 8) 타쉬쿠르간, 9) 발화국, 10) 에프탈국, 11) 파지국, 12) 사미국, 13) 볼로르, 14) 우디야나, 15) 간다라국, 16) 나라가흐라에 대한 짧은 설명들이 등장한다. 대략적인 이동경로는 아래 지도와 같다.
송운의 여행 동선
여행기에 따르면 송운의 일행은 518년 11월에 출발했고, 혜생은 521년 2월에 돌아온 것으로 나온다. 대략 3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다. 서술된 순서가 이동경로라고 생각하면 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확인된다. 아마도 1) 저자가 직접 가지 않았던 여행을 자료만 보고 정리한 상황, 2) 송운과 혜생이 도중에 별도의 행동을 하였고, 귀국일정도 달랐는데 이를 시간순으로 엮은 점, 3) 충분하지 않았던 자료의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글을 집필한 양현지는 송운행기의 말미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 양현지] 살펴보니 '혜생행기'에는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많아서 지금 '도영전'과 '송운가기'에 의존하여 함께 실어서 빠진 문장을 보충하였다. - 송운행기 마지막 부분 (낙양가람기 5권) [다정, 김규현 역주]
'도영'은 위나라의 승려로 송운보다 일찍이 간다라를 다녀가, '도영전'이라는 여행기를 남긴 인물로 추정된다. 지금은 도영전, 송운가기, 혜생행기 모두가 전승되지 않기에 양현지가 '송운행기'를 엮지 않았다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이야기들이다.
송운과 혜생이 본 간다라
송운행기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간다라로 가는 길에 들렀던 나라들에 대한 묘사로, 여러 나라 중에서도 특히 에프탈(Ephthal)에 대한 부분이 흥미롭다. 백흉노(White huns)라고도 불렸던 에프탈은 5세기말, 간다라를 지배하던 쿠샨왕조가 붕괴된 이후 침략해 와 불교유산을 파괴하고 약탈을 자행했다. 따라서 간다라의 쇄락의 상징과도 같이 말해진다. 이들은 5세기 중엽에 등장해서 100년간 이 일대를 장악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지만 기록된 정보가 많지 않다. 이에 송운이 에프탈의 수도를 방문했던 기록은 중요한 사료이다.
기록에 따르면 송운은 518년 10월에 에프탈의 왕을 방문했다. 에프탈족은 산과 호수가 펼쳐진 광활하고 평탄한 토지에 성을 짓지 않고 계절에 따라 이동하며 살았다. 송운은 에프탈의 풍습을 미개하게 보았다. 이들은 고향도 모르고 문자, 예절, 달력에 대한 이해도 없다고 하였다. 또한 불법을 믿지 않고 다른 여러 신을 섬기는데, 희생양을 죽여 피를 제사를 드린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첩라, 치러, 호탄, 페르시아 등 주변 40개국으로부터 조공을 받는다는 등 에프탈의 위상도 묘사했다. 6세기 초에도 에프탈은 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좌) 에프탈 군주가 조각된 인장 ⓒ public domain (우) 키질 벽화에 그려진 에프탈 군인들 ⓒ public domain
두 번째는 오장국에 대한 기록이다. 오장국은 우디야나(Uddiyana)라고 불리는데 지금의 파키스탄 스왓트 계곡의 밍고라 지역을 말한다. 이들은 519년 12월에 오장국에 도착했다. 국왕은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오랜 기간 채식을 하며 새벽과 밤에 예불을 드리는데, 북을 치고 염불을 하면서 비파, 공후, 생황, 피리 등을 같이 연주했다. 땅이 비옥하고 물자가 풍부하며, 풍년에 과실도 무성하다. 죽을죄를 지어도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는 등 오장국에 대한 기록이 전반적으로 매우 호의적이다.
여래가 옷을 말렸던 곳, 여래가 돌을 밟았던 곳에 쌓은 탑, 여래가 양치하며 사용했던 나뭇가지가 자란 나무 등 불교와 관련된 성지나, 여래가 고행할 때 몸을 던져 굶주린 호랑이를 먹였던 곳, 여래가 피부를 벗겨 종이로 삼고 뼈를 부러뜨려 붓으로 삼은 곳과 같이 자타카 이야기가 전승되는 장소들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무차대회(대법회)가 열려 나라안의 승려들이 몰려들었는데, 이들이 계율에 따라 정진하고 고행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여 노비 두 명을 주어 승려들을 모시도록 하였다고도 기록한다. 혜생은 오장국에서 두 해동안 머물렀다고 하니, 이들이 오장국에서 얼마나 감동을 하였는지 짐작이 간다.
밍고라에 위치한 Shingardar stupa ⓒ wikipedia
세 번째는 간다라국에 대한 부분이다. 이들은 520년 4월에 간다라국에 도착했다. 당시 간다라를 통치했던 왕은 칙근이라 하는데, 송운은 이 왕이 오랑캐로 예를 모른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간다라에서도 많은 곳들을 둘러보았는데, 여래가 자신의 머리를 베어 다른 사람에게 준 곳, 여래가 마갈대어가 되어 강에서 나와 그 육신으로 12년 간 사람들을 구제 한 곳, 여래가 눈을 뽑아 다른 사람에게 준 곳에 대한 방문기록이 나온다.
또한 카니슈카 대왕이 쌓은 작리탑(카니슈카 대탑)에 대한 기록이 흥미롭다. '탑 안의 안치된 불상은 모두 금과 옥으로 만들었는데 각양각색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금반은 밝게 빛나고 미풍이 불어오면 보배로 된 풍경도 함께 울려 퍼졌다. 서역의 탑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카니슈카 탑은 이미 세 차례나 큰 화재가 나서 복원했다고 하며, 일곱 번 불이 나면 이 땅에 불교가 없어질 것이라는 풍문도 기록하고 있다. 송운은 장인에게 시켜 카니슈카 대탑과 석가사탑을 본뜬 구리 모형을 만들게 하였다고 하는데, 과연 이 모형탑이 중국에서 전승되고 있다면 어떤 모양일지 한번 보고싶어진다.
카니슈카형 탑 모형 ⓒ 티벳 박물관 (글과는 무관)
참고자료
다정 김규현 역주, "송운행기", 글로벌콘텐츠,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