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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15. 2024

만들어진 불교 성지 '간다라'

간다라 이야기 #48

간다라는 불교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방문하지 않았던 곳임에도 이곳에 다양한 불교 설화와 성지가 전해져 내려온다는 사실이다. 비둘기의 목숨을 살리고자 자신의 허벅다리 살을 내어준 시비왕 이야기, 굶주린 호랑이 모자를 살리고자 스스로의 몸을 바친 살타태자 이야기, 머리를 보시하라는 요구에 기꺼이 응한 월광왕 이야기, 연등불의 수기를 받은 선혜선인 이야기는 이 지역에 전해지는 대표적인 불교 설화이다. 또한 이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는 각각의 장소들이 있고, 이 장소들은 불교 성지로 다루어진다.


비둘기의 무게만큼 살을 잘라내고 있는 시비왕 ⓒ 영국박물관(CC. 4.0)


시비왕(King Sibi) 이야기 - 스왓 지역
시비왕이 숲을 거닐다가 비둘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매를 만나게 되었다. 시비왕은 매에게 살생을 하지 말 것을 권하였다. 그러자 매는 자기는 오랜 시간 굶었고, 이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러자 시비왕은 매에게 비둘기 무게만큼의 자신의 허벅다리살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살타태자(Prince Satva) 이야기 - 만키알라 스투파
살타태자가 숲을 거닐 때, 절벽 아래에서 아기 호랑이를 낳은 후 기력이 없어 죽어 가는 어미 호랑이를 만났다. 살타태자는 자신의 피를 주어 호랑이들의 기력을 회복시켰고, 자신의 살을 주어 모두를 살렸다.
월광왕(King Chandraprabha) 이야기 - 발랄톱 스투파
아낌없이 보시를 내어주던 월광왕에게 한 브라만이 자신의 머리를 보시해 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월광왕은 망설임 없이 머리를 잘라 보시하였다.
선혜선인(Sumedha) 이야기 - 간다라 어느 지역
선혜선인은 연등불이 자신의 마을에 온다는 사실에 마중을 나갔다. 연등불의 앞길에 진흙길이 나오자 스스로의 머리카락을 바닥에 깔아 연등불의 발이 더럽혀지지 않게 하였다. 연등불은 선혜선인에게 언젠가 해탈에 이를 것이라는 예언을 주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먼 이국 땅, 간다라에서 어떻게 많은 불교 설화들이 전해질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를 받아들였던 당시 간다라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당시 불교를 받아들였던 통치자나 민중들은 마음 깊숙이 불교를 받아들였다. 다만 자신들의 땅에는 석가모니와 관련된 성지나 설화가 없다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을 것이 추측된다.


한편 앞서 나열한 간다라에 전해지는 불교 설화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실제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아닌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이다. 불교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자타카(Jataka)'라고 부른다. 자타카는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설화 모음집으로 총 547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생애를 거듭하며 쌓아온 위대한 보시와 희생을 이야기한다. 다만 이러한 세계관 설정으로 세상 여러 곳에서 수많은 석가모니의 전생이 있었다는 가설이 성립될 수 있다. 간다라의 사람들은 이 점을 활용해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었고 간다라를 성지화 한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내러티브를 통한 당위성 확보와 확장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힌두교의 시바교는 확장된 지역에서 믿던 신은 사실 시바의 가족이었다는 이야기로 포섭했고, 비슈누교는 그 신들은 사실 비슈누의 화신이었다는 이야기로 포섭했다. 이런 흐름에서 봤을 때, 불교는 그 지역에 있었던 훌륭한 인물이 사실은 부처님의 전생이었다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좌) 시바와 가족들(ⓒ public domain), (우) 비슈누의 화신들 ca. 1771-1779 AD from Andhra Pradesh (ⓒ public Domain)


이와 같이 간다라 사람들이 가진 콤플렉스와 불교 세계관의 결합 속에서 간다라에서 부처님의 여러 전생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 이야기들은 아마도 실존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혹은 아닐 수 도 있다. 그저 러한 방법으로 간다라는 만들어진 성지가 되었다.


다만 시기가 2천 년 전이었고, 이후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로 믿어졌다. 또한 중국이나 한국에서 구법승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간다라의 성지를 다녀가며 부처님의 인생에 존경을 표했다. 이렇게 쌓여온 많은 사람의 의미 부여는 지울 수 없는 가치를 더해간다. 과적으로 간다라 불교와 깊은 관련성을 가진 성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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