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 Jan 02. 2020

'엄마'를 위하여

Project Number 02. 하늘에 #3

아직 20대인 내게 동갑내기 친구가 아이 엄마라는 것은 생소한 일이다. 쉬는 시간에 커피가 아니라 유축기를 들고 나가는 모습은 꽤나 신선했다. 그러나 아이가 있고 없고를 떠나 무척이나 마음이 잘 맞았던 우리는 금세 친한 사이가 됐다. 


그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공부, 학회, 논문, 취업과 같은 자신의 미래를 꿈꿀 때, 그 친구는 아이의 미래를 먼저 생각한다. 그는 이름을 들으면 학창 시절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겠다 싶은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다. 졸업 후에 어떤 것을 할 거냐는 나의 물음에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좋은 직장, 보장된 미래, 자신의 꿈보다 아이가 잘 크는 것이 더 큰 바람이라는 친구의 말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도 엄마 모든 것보다 내가 잘되길 바랐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을까? 


나는 사실 엄마의 희생이 싫었다. 엄마의 희생으로 얻게 된 나의 모든 것들이 부담이었고, 때론 족쇄였으며, 벗어던지고 싶은 무거운 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나를 위에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살기를 아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내가 엄마의 삶을 소망하기 이전에 엄마가 자신의 삶 대신에 선택한 나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해 줄 수가 없다. 그런 답답한 마음에서였을까?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친구를 보며 그게 옳은 길이라고,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고 선뜻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부끄러웠다.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 것은 그런 엄마를 위해 나는 감사와 존경이 아니라 엄마 때문에, 엄마를 위해 내가 했던 아주 작은 양보를 떠들어 대며 엄마를 탓했다는 것이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우리 엄마들도 우리를 위해 젊음을 받쳤을까? 그렇겠지. 그랬겠지. 우리 엄마도, 그 친구의 엄마도 자식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겠지. 


자식을 위에 무언가를 바치고 희생하는 것이 내게는 아직 너무 어렵다. 아직 아이를 낳아보지 않아서, 아직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만, 아이를 위해 내 젊음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 그 시절이 내게도 다시없을 젊은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함께 커가고 싶다. 아이가 커갈 때 나도 함께 크고 싶다. 나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으로, 아이의 사랑으로 함께 커가고 싶다. 함께 성장하고 싶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가면서 지켜야 할 의무와 무게에 비추어 본다면, 내가 너무 큰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쉬웠다면 우리 엄마도, 친구네 엄마도, 친구도 다 그렇게 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엄마가 되면, 아이와 함께 커가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고자 한다. 나는 엄마의 젊음과 희생의 날들에 보답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찾아야 한다. 젊음을 바칠 만큼 어렸을 엄마, 그 엄마가 그 젊은 날 자식을 키우느라 느꼈을 고단함과 고뇌 그리고 감내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조금 더 감사해야 한다.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을 친구를 응원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를 생각해본다. 자식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주겠다는 그 마음을. 그리고 존경을.





세상 모든 엄마를 위해, 온 마음을 담아, 二月드림


  

https://www.instagram.com/february_31th/?hl=ko

매거진의 이전글 하늘에 쓰는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