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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 Mar 31. 2020

마스크 나누기

Project Number 03. 누군가의 작은 안도감을 위한 나의 시간

일상이 사라졌다. 밖에 나가는 일이 사라지고, 많은 일을 집에서 하게 되자 시간이 많아졌다. 차를 몰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어딘가를 걷고, 사람들을 만나던 시간이 고스란히 빈 시간이 되자 처음 며칠은 재미있는 것들에 몰두했다.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실컷 본다거나,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하루 종일 봤다. 배달 음식을 시켜먹으며 하루 종일 태블릿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침대와 한 몸이 된 것처럼 침대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것이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숫자를 붙일 수 있을 정도의 확진자가 나올 때만 해도 이 짧은 휴식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금방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확진자는 폭증했고, 과연 일상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하는 근원적인 물음마저 들었다. 연일 보도되는 놀라운 뉴스들이 오히려 일상이 되었다. 눈을 뜨는 순간 핸드폰을 켜서 내가 자는 동안 별일 없었나 확인하게 되었다. 매 시간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를 실시간으로 찾아보게 되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재난안전문자에 마음 졸이게 되었다. 더 이상 휴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달갑지 않았다. 남은 시간이 너무 무료하게 느껴졌고, 봐도 봐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극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사력을 다해 환자를 돌보시는 분들, 자원봉사자분들, 성금을 기부하시는 분들, 마스크를 만들어서 기부하시는 분들. 나도 무엇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이름 모를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누군가는 나와 밤길을 걸어주었을 테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사소한 기쁨과 슬픔을 나눴을 것이다. 작은 웃음을 주고받았으며, 내게 사회라는 울타리가 있음을 알려준 사람들이 언제고 내 곁에 있었다. 이웃을 위해 작더라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다.


마스크 부족이 큰 문제로 떠오른 만큼 마스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구한다 하더라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수제 마스크를 기부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고, 마스크 만드는 방법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나도 마스크를 만들어서 기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봉틀도 없을뿐더러 재봉틀을 산다고 해도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 고민했다. 그러던 중에 재봉틀 없이도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그 방법대로 만들기로 하고 재료를 찾아보았다. 우선 마스크 겉감과 안감의 기능을 해줄 것은 면 100% 행주로 했다. 청소포도 있었지만 얼굴에 닿을 마스크라 면 100%가 좋아 보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을 필터였다. 멜트블로운이라는 소재가 KF 94 마스크 필터에 쓰인다고 해서 검색을 해보니 대부분이 품절되어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뒤지던 중 멜트블로운을 구할 수 있었다. 많이 사고 싶었지만 수량이 많지 않아 6M 정도를 구매할 수 있었다. 80개가량의 마스크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런 다음 빵끈, 의료용 테이프, 고무줄을 구매했다.


빵끈도 은색을 사고 싶었는데, 다이소 3곳을 갔지만 금색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서 금색을 샀다. 고무줄도 처음에는 흰색을 주문했는데, 흰색이 품절되었다고 하여 검은색으로 주문했다. 마스크 만드는 일을 도와주기로 한 남자 친구가 흰색 마스크에 검은색 고무줄을 단다고 걱정했지만, '마스크가 기능만 좋으면 됐지 생긴 게 뭐가 중요해' 라면서 검은색 고무줄을 샀다.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손을 씻고 손소독제로 손을 소독한 다음 마스크까지 꺼내 쓰고 마스크 만들 곳도 소독제로 깨끗하게 닦았다. 블로그 글을 보고 따라 만들려니 처음에는 손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멜트블로운 필터를 자르는 것도 울퉁불퉁하게 잘렸고, 의료용 테이프를 같은 사이즈로 계속 자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마스크 내부 모습


몇 개를 시범 삼아서 만들어보니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면서 만드는 방법이 손에 익었다.


남자 친구랑 몇 시간을 만들었더니 꽤나 많은 양을 만들게 됐다.


완성된 마스크


10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마스크가 완성됐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마스크가 완성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면으로 된 겉감을 사용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나와있는 것보다 작은 사이즈로 만들었더니 소형 사이즈로 만들어졌다. 어린 친구들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완성된 마스크는 구청에 기부하기로 했다. 대단할 것 없는 작은 마음을 편지 한 통에 담았다.


구청에 가서 멋쩍은 웃음으로 마스크를 건넸다. 뭔가를 기부한다는 것이 낯설기도 했고 조금 설레기도 했다. 작지만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가려는데 구청 담당자께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별거 아닙니다'라는 나의 말에 '그래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셔서 준비해 간 편지봉투에 이름을 적어서 드렸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꾸벅 숙여서 인사를 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기쁨과 아쉬움 그 어딘가. 필터를 더 구할 수 있다거나 마스크를 많이 구할 수 있다면 또 나누고 싶다.


나의 시간으로 완성된 작은 마음이 누군가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며..




급한 마음에 함께 마스크를 만들어준 남자 친구 이름을 적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고마워!! 사랑하는 나의 푸른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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