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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31. 2020

11. 할로윈의 선택

공주마녀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날이 있다. 매년 10월 31일에 돌아오는 할로윈이다. 두 가지 큰 이유에서 할로윈은 아이들에게 한 해 중 가장 기대되는 날이다. 많은 청소년이나 어른들은 전통에 따라 귀신, 마녀, 마법사 등 귀신을 쫓는 캐릭터로 분장한다. 대신 아이들은 평상시 좋아하는 캐릭터나 인물의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하루 동안 마치 만화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할로윈 시즌에는 항상 아이들이 동경하는 캐릭터로의 변신을 도와주기 위한 부모들로 쇼핑몰이 붐빈다. 할로윈이 좋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날 만큼은 마음껏 사탕을 먹고 다양한 사탕도 수집할 수 있도록 허락된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첫 할로윈은 설렘 그 자체였다. 아이는 반의 단짝 친구들 몇 명과 공주로 콘셉트를 맞춰 입기로 했다. 디즈니 만화영화 비디오가 50개도 넘게 있을 정도로 디즈니 시리즈를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개중에 꼭 되어보고 싶은 공주가 생겼다. 바로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다. 재스민 공주를 택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예쁜 건 둘째치고 머리가 검은색이다. 아이의 머리도 검은색이니 다른 공주에 비해 더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았다. 바지를 입었다. 아이는 치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바지를 입었어도 우아하고 멋있는 재스민이 좋았다. 재스민이라는 인물 자체도 좋았다. 비교적 다른 공주들에 비해 주관이 뚜렷하고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도 진정한 트루 러브를 선택한 공주였다. 호랑이를 애완동물로 키우고 악당에 굴하지 않는 포스도 있는 공주였으니 아이는 재스민이 그 어떤 디즈니의 공주들 보다 마음에 들었다.


할로윈 코스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할로윈이 되면 진행되는 학교 퍼레이드 때문이다. 멋지게 빼입은 코스튬을 입고 전교생이 동네를 줄지어 다니면서 장관을 이룬다. 마법사로 변장한 교장선생님을 선두로 유치원생부터 고학년까지 티비나 만화책에서만 존재하던 인물들로 변장을 하고 동네 주민들을 위한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헐크, 마녀, 마법사,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말머리, 절규 머리, 귀신,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할 것 없이 다양하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마치 Débutant(데뷰탕트 - 사교계 첫 데뷔)를 하듯이 쏠리는 시선을 즐기고 모르는 이들에게 손을 들고 인사를 하며 퍼레이드를 즐기고 학교 운동장으로 복귀를 한다. 이렇게 아이들이 신나 하니 부모들도 매년 코스튬을 사줄 수밖에 없다. 아이도 친구들과 함께 1학년 공주 군단의 하나로 신나게 퍼레이드를 걸으며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파파라치 역할을 해주는 엄마 아빠한테 손을 흔들며 포즈를 취해 보였다.


하교를 하고 저녁시간에는 더 신나는 활동이 기다리고 있다. 동네 한국인 친구들과 모여 함께 'Trick or Treat! (맛있는 거 안 주면 장난칩니다!)'을 나가기로 했다. 낮에 입은 캐릭터 복장 그대로 해가 지고 난 후 동네 입구에 모였다. 어둠은 내렸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할로윈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고 있어서 동네에는 활기가 돈다. 동네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불 켜진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Trick or Treat!'을 외치면 집주인이 나와 사탕을 한 움큼을 쥐여준다. 분장을 한 친구들과 함께 'Trick or Treat!'을 외치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Jack-o-lantern 호박 귀신 모양의 플라스틱 바구니에는 다양한 사탕이 가득하다. 부모님들은 이가 썩으니 하루에 하나씩만 먹으라 옆에서 잔소리를 하지만 아이들은 사탕 바구니가 하나뿐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동네 순회를 마치고 나면 누가 더 많이 사탕을 모았는지 비교를 하기도 하고 서로 좋아하는 맛을 교환하기도 하며 할로윈은 마무리가 된다.


이듬해 할로윈에 아이의 선택은 마녀였다. 역시나 고분고분한 캐릭터는 아니다. 그새 키가 자라는 바람에 재스민 복장은 더 이상 맞지 않았고 작년과는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고 싶었다. 한 학년이 올라 2학년이 되었으니 조금 더 할로윈 다운 복장을 입을 필요도 있다 생각했고 작년 퍼레이드에서 선배들이 입은 마녀 복장도 나름 괜찮았었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의 빨간 루즈를 바르고, 가짜 손톱을 빨갛게 붙이고, 챙이 넓고 뾰쪽한 모자를 쓰고, 하루 동안 올 블랙의 치마와 망토를 입은 무서운 마녀가 되었다. 마녀가 'Trick or Treat'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 위상에 맞지 않으니 대신 집 현관에 높은 의자를 놓고 앉아 사탕을 나누어주기로 했다. 엄마는 아이가 맡은 배역에 몰두할 수 있도록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들에게 환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는 초인종이 눌리기 전까지는 누가 올까 긴장을 해서 똥 마린 강아지 마냥 자리에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지만 'Trick or Treat!'의 외침이 들리는 순간에는 마녀로서 무서운 표정 연기를 유지하며 사탕만큼은 양손 가득 인심 있게 푹푹 퍼서 주며 'Bye! Go away!'를 외치며 각종 캐릭터들을 쫓아내었다.


30살이 된 아이는 공주든 마녀든 상상 속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꿈 많던 어린 소녀 시절을 추억한다. 무엇이든 되어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하루살이를 해보던 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어려운 선택들을 하며 살아가니까. 다만 재스민 공주의 용감무쌍함과 아름다움, 마녀의 츤데레 면모를 갖춘 냉철함 만큼은 유지하며 그 시절 어린 소녀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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