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엔 경기, 강원, 주말엔 서울의 하이브리드 삶을 살고 있다.덕분에 친구로부터 시골쥐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은 보따리를 싸서 서울에 올라오는 모양새가 퍽이나 웃겼나 보다.
이동 동선이 확장되어 피곤할 때도 있지만 딱히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지를 불태워야하는 상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순수하게 사는 게 재밌다고 느껴지는 건 오래간만인 것 같다.
아파트 숲 대신 산과 강을 보며 서울을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하게 된 것도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인 것 같다. 보통은 마음먹고 놀러 가야 하는 장소에 틈만 나면 산책을 나가는 여유랄까.무엇보다 회사를 나가지 않아서 편안해진 것 같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생활은 굳이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이렇듯 서울을 벗어난 생활이 시작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심심하지 않아?'
음... 심심할 틈이 없다.
프리랜서로 전향하면서 오전에는 회사 관련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영어학원으로 출강을 한다. 저녁쯤 집에 오면 기타 업무 처리나 요즘 배우는 취미들이나 운동을 하고 나면 하루가 다 간다. 짬을 내서 산책을 하거나 읍내에 나가 장을 봐오는 일도 있다. 내 시간을 많은 부분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결정이 있었기에 가능해진 라이프스타일인 것 같다. 봄이 되면서는 농사도 시작되어 거의 쓰리잡의 생활을 퍼즐 맞추듯 이어 나가는 중이다.
잠깐의 휴식
이렇듯 지난 한 달간 많은 변화를 맞이하며 바쁘게 봄을 준비했다. 그 사이 희월헌은 겨울에서 봄으로 탈바꿈을 마쳤다. 주택에 살며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변화를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희월헌의 봄
먼저 다양한 꽃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노란 수선화, 왕수선화라 불리는 타히티, 강렬하고 매혹적인 향기를 가진 히야신스, 오밀조밀 모여있는 것이 너무나 귀여운 크로커스. 희월헌의 정원을 물들이며 봄을 알려오는 중이다. 이 외에도 튤립이 나오기 시작했고, 홍매화가 꽉 뭉쳐있던 붉은 봉우리를 터뜨리며 커다란 분홍 꽃을 피우고 있다. 대부분의 꽃들은 네덜란드에서 살 때 길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꽃들이라 요즘 한 창 예쁠 네덜란드의 풍경과 꽃밭들이 많이 그립다.
색다른 경험도 하나 했다. 할머니를 도와 된장을 담가봤다. 일하는 중간중간 짬을 내어 할머니 댁에 가서 메주를 빠았다. 열심히 망치로 두들겨 빠은 메주를 바짝 말리도록 며칠을 놔두었다가 방앗간에 가져가 가루로 만들어왔다. 거기에 다시 고춧가루, 보리밥, 그리고 굵은소금을 섞어 열심히 버무렸고 그걸 희월헌으로 운반하는 작업까지 진행했다. 희월헌의 햇살이 좋은 관계로 마당에 있던 장독을 닦아 그 안에 된장을 옮겨 담고 소금을 조금씩 더 얹어서 천으로 밀봉을 하여 놓아두었다. 이제 햇살 좋은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두고 밤이나 비올 때는 닫아두고 하는 작업을 1년 간 반복하여 숙성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장독에 올려두는 유리 판을 구매하여 혹시나 뚜껑을 닫는 것을 까먹는 불상사를 막을 예정이다.
1년 후에나 맛보게 될 된장
며칠 전부터 희월헌 새집에 곤줄박이 커플이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종종 손에 날아와 앉아 땅콩을 먹는 녀석들인데 새끼를 까고 비행 연습하는 그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설렌다. 길냥이들로부터 열심히 보호해줘야겠다. 새들의 움직임 하나 덕에 쌓일 뻔한 스트레스도 사라지는 희월헌의 하루는 또다시 바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