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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Sep 06. 2023

누군가가 찾아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가?


과거의 나는 오로지 나의 삶에만 포커스를 맞춰 살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인생을 항상 달리며 사는, 경주하는 사람처럼 살았다. 내 인생은 마치 산더미 같은 숙제들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를 정리하면 또 다음 거 또 다음 거 연쇄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생겨났다. 그런 나에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발맞춰 걸을 수 없었다. 누군가 넘어지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에게 괜찮냐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다시 내 갈길을 가야만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미지를 그려보니 마치 전쟁통에 피난길에 올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할 일이 많은 나는 늘 바빴지만,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아마도 이렇게 촉박하게 살 때가 아닌 여유롭게 스스로를 돌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일 것이다. 나 역시도 늦잠을 자고 평온하게 지내던 시절이 내 인생의 행복한 순간들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그런 빈 시간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행복감도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찾아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몇 번 찾아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일들에 치여 친구들과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때로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진정으로 와닿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내 삶을 살기에도 벅차 남들의 목소리에는 집중하지 못했었다. 그런 시기는 그런 시기대로 필요하던 때였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 집중해서 발전해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도 '여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조금은 장착이 되었다. 남의 눈치를 덜 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먹고, 고르고, 살 수 있는 그런 아주 사소하면서도 간단한 것들 말이다. 그러자 내가 주체가 되어 내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나만의 문제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품고 있는 고민과 문젯거리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가진 문제 하나에 꽂혀서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양 매사에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부정적인 것 하나는 반대로 긍정적인 것 하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자 섭리라고 생각하면, 인생에 닥친 수많은 일들에 꽤나 초연해질 수 있으며, 사사로운 것들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게 된다. (물론 이것이 쉽게 잘 된다면 인간계를 탈피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과거보다는 이런 면에서 훨씬 나아졌다. 최근에는 마음이 주로 고요하고 평온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불같이 감정이 폭발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전보다 더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더 못 사는 것도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그 삶을 대하는 나의 시선과 자세가 바뀜으로 평온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신기하게도 불같이 화를 내고 역정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다.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을 보아도 '저게 그렇게 심하게 싸울 일인가?' 싶다. 너무 초월해 버린 것일까? 물론 나에게도 고민과 걱정거리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저 오늘 하루에 충실할 뿐이고, 오늘 나에게 닥친 일들을 해결해 나갈 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저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예전에 카페에서 대화를 나눴던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당시 나는 퇴사와 이직문제로 고민이 많아 익명의 힘을 빌려 카페에 글을 올렸었다. 주변 친구들에게는 이미 많이 이야기를 해서 이런 부정적이고 답이 없는 문제를 가지고 또 토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럴 때 은근히 카페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 거기서 우연히 나와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고민을 갖고 살고 있는 분을 만나서 우리는 하루종일 채팅을 했었다. 우리는 대화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내서 버텨보자!라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일이 있던 것은 불과 6,7개월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의 대화 이후로 나는 다시 현실에 순응하고 적응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분도 그동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버티고 계셨던 것 같다. 이제는 한계가 온 것 같다며 연락을 해오셨는데 내심 나와의 대화가 그때 기억에 남으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만나 일면식도 없는 나를 기억해 주고 다시 찾아주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렇게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예전에 나누었던 대화내용들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연은 어떤 식으로는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이분의 고민을 들으며 예전의 나라면 단순히 감정적으로 휩쓸려했을 대답들이 꽤나 현실적인 답변으로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깊은 고민을 들으며 진심으로 그 사람을 위한 답을 찾아 주려는 노력이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을 여태껏 너무나 사소하게, 무심하게 대해왔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이런 게 바로 마음을 나누는 소통이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점차 사람들은 서로를 감추고 숨기며 살아간다. 나 또한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의심과 경계의 시선을 품게 되고, 새로운 만남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진심으로 마음과 마음이 닿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대화가 오랜만이었고 그런 대화를 나누니 기분이 충만하게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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