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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Jul 17. 2024

심리상담을 시작하기로 결심.

유튜브에서 최근에 봤던 영상 중 공감이 갔던 영상이 있었다.


거기에 출연했던 분이 했던 말 중에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타인과 대화를 하며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이 하는 대화는 '독백 = 혼잣말'에 가깝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것이 기인해서 저 표현을 이해한다면 너무나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자신의 할 말을 하며 공감과 위로를 받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나의 말을 상대방이 들을 때에도 상대방의 말을 내가 들을 때에도 각자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해석하기에 모든 대화는 어찌 보면 독백에 가까울 수 있다는 말이 굉장히 와닿는 표현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타인과 대화를 할 때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랬기에 인간관계에서 실망을 하거나 상처를 입기도 했던 것 같다. 


실망과 상처를 받은 이유를 다시 되짚어보면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타인은 절대로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그런 타인에게 기대하고 바라다보니 내 생각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괴리감 때문에 관계를 힘들게 여길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많이 힘들었었다. 특히, 회사사람들, 가족, 친구와 같은 가까운 사람들하고. 지켜보면 사람들은 다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관심 없는 연예계 뉴스나 남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 자체가 버겁게 느꼈다. 돌이켜보면 그 반면에는 내 이야기를 더 깊이 있게 하고 싶어 하는 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근의 나는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시간을 할애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관심이 없는 타인에게서 점점 거리를 두었다.


그러던 와중에 사귀게 된 '연인'이라는 존재에게는 나의 이런 결핍을 채워주길 바라는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무한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길 바랐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며 관계를 구축해나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일상을 시시콜콜 이야기 나눈다는 것은 친구, 가족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연인에게는 이상하게도 가능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지치지 않았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지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사랑인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서로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몇 개월이 흐른 시점. 나는 우리의 대화에 알맹이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 더 의미 있고 깊이 있는 대화를 원했기에 뭔가 해소되지 않는 감정이 내 안에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꽁기꽁기한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던 도중 나는 불현듯 그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또한 나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상을 공유하지만, 진짜 내면에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꿈을 갖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불안감이 생겨났다.


그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나? 나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맞나? 우리는 이대로 결혼을 해도 되는 것이 맞나?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일상적인 대화만 하는 그의 말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100일이라는 날짜를 까먹은 그를 책망하게 되고, 그가 하는 여직원 이야기에 '혹시 관심이 있는 건가?' 하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이 모든 생각의 뿌리는 그와 나의 관계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부터였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시점에서 나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내가 생각한 그 답만이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답.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오랜 시간 말다툼을 했다. 결론이 나지 않는 독백과도 같은 대화를.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억울해하고 서운해하던 우리는 결국 애매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 이후 서먹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왜 이렇게 됐을까?'


내 감정은 혼자가 된 이후에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소용돌이 속에서 계속해서 허우적대다 살기 위해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들은 내 모든 속내를 가감 없이 터놓을 수 있는 상대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랑 대화를 하다 보면 지금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내가 보였다.


여러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는 내가 보였고, 그런 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나와의 시간이 필요하며, '쉼'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오랜 친구가 조심스럽게 제안해 준 것은 '심리상담'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과거에 우울증을 겪으며 심리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는 나는 심리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가격이 비싸서 오래 지속하지 못했을 뿐이지 여력이 된다면 꾸준히 받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의 내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서 또한 앞으로 다가올 일들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나에게는 심리상담이 필요한 시점이 맞는 것 같다는 판단을 지체 없이 내릴 수 있었다.


'심리상담은, 오직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서칭을 시작했다. 요즘은 정신의학과도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바로바로 예약이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요가명상과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수련원을 찾아 그곳으로 바로 예약을 진행했다. 속전속결로 바로 다음날 예약을 해서 방문을 했고, 10회권을 끊었다.


정신의학과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나는, 우울증을 감기와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몸이 약해질 때면 언제든 병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고 또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약을 잘 먹고 숙면을 취해주면 심하게 앓지 않고 넘길 수 있는 것처럼 미리 예방할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이 우울해지는 느낌이 들면 지금처럼 미리 약처방을 하는 편이다.


먼저, 지친 정신을 쉬게 해 주고 몸을 움직이고 햇볕을 쐬고 그리고 필요에 따라 상담치료를 받는 것.


이렇게 미리 예방을 하면 병을 앓는 기간과 치료비를 모두 절감할 수 있다. 이대로 방치하다 나중에 정말 병이 와버리고 나서 손을 쓰려하면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치료비도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고민 없이 바로 10회권을 끊었다. 그리고 이번주 금요일부터 바로 상담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10회라는 기간 동안 쉴 새 없이 불안해지는 내 감정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다독이며, 복잡한 감정 속에서 숨어져 있는 진짜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길 원하는지 조금의 실마리를 찾길 바란다.


내 인생은 매번 그렇듯,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윽고 내 눈앞에 나타난다. 내 마음이 끌리는 곳을 가면 그곳이 나에게 잘 맞는 경우가 많다. 이번 상담센터 역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에 꼭 드는 조용하고 아담하며 아늑한 곳이었다. 꼬여있는 매듭을 하나씩 천천히 풀어나가 보려고 한다. 더 나은 내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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