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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moiyaru Nov 08. 2024

혐오가 난무하는 시대

요즘은 무언가를 혐오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드문 것 같다.


사회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정 상황이나 사람이나 무언가에 대해 혐오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될 때가 많다. 모두가 자신만이 정당하다거나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생각 혹은 누군가 내 이 불편함을 해소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어느 한편에서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혐오라는 단어를 크게 해석하면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작게 보면 그냥 '불편함'인 것 같다.

나는 이 '불편함'이 난무하는 시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나는 저 상황이 불편해.

나는 저 사람이 불편해.

나는 저런 것들이 불편해.

등등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불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상황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불편함의 분야(?), 카테고리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과해질 때에는 혐오하는 대상에 대해 '화'를 분출하고 상대에게 가해를 일으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 또한 사회적 동물이기에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 어느 정도 동화되어 있다.


나보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거기에 대해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 불편한 시선이 있었고 남녀문제에 대한 글이나 실제 만남에서 대화를 할 때 일부 편협한 발상으로 모두를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았다.


먼저 내가 느꼈던 '불편함' 중 하나인 여유로움을 자랑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는 내 환경에서부터 기인했다고 본다. 아마도 내가 여유롭게 잘 사는 부류에 속했다면 나도 그들처럼 했을 수 있고,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시절, 그래서 해보고 싶어도 해보지 못했던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그렇게 늘 견뎌야만 했던 가난했던 마음이 사회에 대한 불만,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런 마음은 내가 못 가진 것을 가진 친구들을 볼 때면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들 중 좋은 것들을 누리고 그것이 당연한 모습, 혹은 자랑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은 항상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불편함에는 질투, 부러움 그리고 슬픔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에 대해 공격을 가한다거나 불편함을 대놓고 티 내지는 않았지만, 점점 그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혐오스러움은 결국 나를 고립시키게 만들고 그 화살의 촉은 나를 향하게 된다는 것을 모른 채.


혐오라는 감정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갉아먹는 '쓸모없는 감정'인 것 같다.



무엇인가를 혐오를 한다고 내 인생에 좋아질 것은 없다.

내가 무엇인가를 혐오한다면 그것들 또한 나를 반기지 않을 것이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렇게 되면 나는 더욱 고립될 것이고, 무언가를 분노하는 마음만 짙어것이다.


결국 혐오는 내 안에 응어리로 남아있는 불편함 감정이며, 나를 죽이는 감정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비교하고 좌절하고 혐오하는 것을 멈추고, 모두가 타인보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가꾸고 뽐내며 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바라야 하는 게 올바른 삶의 자세인 것 같다.


세상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불공평함의 시작이라 것을 인정하고, 내가 부러워하는 그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며 내게 주어진 것들의 당연함보다는 소중함을 깨닫고, 내가 가진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며, 가엾은 여러 상황들을 지나치지 않고 품을 수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잘 살고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혐오하는 시대에 대한 글을 연재해 보려고 한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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