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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서 Jul 22. 2021

정신과 가길 망설이는 어른들에게

성인 ADHD를 진단받은 이십 대 중반 사회 초년생

  

병원에 갈까 말까?     


정신질환은 현대인이 앓는 마음의 병으로 느리지만 점차 편견을 낮춰가며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식으로 예전보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의 허들은 낮아진 편이다. 하지만 나도 병원에 가볼까? 라는 생각에 도달하는 사람 중 직접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병원 방문을 고민하는 이유는 개인마다 다양할 것이다.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접해서 일수도 있고 비용이나 분위기가 걱정돼서, 향후 걸림돌이 될까 봐, 등 방문을 보류하는 이유는 나열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만큼 많다. 그럼 병원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나 또한 같은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 나는 내가 성인 ADHD가 아닐까 오랜 시간 의심하였고 결국 자신 스스로를 분석해 방문 여부를 결정짓자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래는 정신과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를 수없이 고민하게 했던 증상들이다.    


  

①어떤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여기서 일이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일과부터 높은 강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 특정한 일은 놀라울 정도로 몰두하는 경향 같은 것도 없었다. 나 같은 경우 청소와 같은 집안일, 직장 업무, 좋아서 하는 취미 활동까지 모든 활동이 전반적으로 집중하기 어려웠다. 청소는 어렵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쌓여 있기 일수였고, 가장 지루한 일과라 느끼는 업무는 10분조차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은 단 5분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취미라도 즐기면서 하고 싶은데 게임을 하다가도 금방 SNS에 빠지거나, 침대에 눕거나 하는 등의 행위가 잦아 진전 속도가 매우 더뎠다. 백수일 땐 그나마 노는 데라도 집중했던 것 같은데, 취직하니 하루 치 모든 집중력을 직장에 소진하고 그러면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입사 초는 직장이 아닌 곳에서 흘러가는 1초가 아까워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놀곤 했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니 집에 오면 온종일 자는 일밖에 못 하게 됐다. 

     


②자주 깜빡한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 방금 들었던 이야기, 물건 위치 같은 것들을 뒤돌아서면 잊는다. 외출할 때 물건을 챙겨도 한 두 가지는 꼭 빠트려서 전부 챙기는 걸 포기한 수준까지 왔다. 기억하려는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니다. 잘 까먹는 걸 아니까 이번엔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잊는다. 특히 직장에서 이메일로 발송해야 할 것을 누가 지적하기 전까지 까먹고 있거나, 챙겨야 하는 서류에서 몇 가지는 빠지는 일이 잦았다.      



③시간 개념이 없다.     

학교 다닐 적 지각은 자주 하지 않았는데 등교 준비하는 시간은 항상 빠듯했다. 가족이 제발 여유 있게 준비하면 안 되냐고 지적도 여러 번 했지만, 지금까지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시간이 빠듯해서 허둥대다 보면 또 무언가 잊고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기 싫었던 학교를 가는 것뿐만 아니라 어딜 놀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④일을 체계적으로 처리하지 못한다.

특히 할 일이 많으면 어느 것부터 손대야 할지 정리가 되질 않아 머리가 새하얘질 때가 많았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어려워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는 식이었다. A를 하다 B를 해야 할 것 같아 B로 빠졌다가, 갑자기 잊고 있던 C가 떠올라 C를 하고, C를 하다 또 D로 빠지는…. 그러다 보면 앞의 A와 B는 아예 까먹고 내가 뭘하려 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 빠진 적이 많았다. 



⑤말귀가 어둡다.

누가 얘기를 하면 말소리는 들리지만, 내용이 들리지 않아 다시 한번 말해달라 부탁 해야하는 경우가 굉장히 잦았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게 기억이 난다. 어느 정도였냐면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친구가 답답하다 못해 대화를 포기했던 적도 잦았다. 게임을 하거나 영상을 볼 때도 소리와 대화가 섞이면 대화 흐름의 절반 이상은 놓치고 그랬다. 이것과 관련하여 소음이 딱히 없어도 누군가 설명할 때 문장이 길어지면 이해가 전혀 안 되었다.


⑥가만히 있지 못한다.

보통 ADHD를 앓고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증세라 생각했던 사항이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든지, 부산스럽게 뛰어다닌다든지 하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가만히 있는 건 잘 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착각이란 걸 깨닫게 된 때는 취준 시절 한창 면접을 보러 다녔던 때였다. 스스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다른 면접자들을 살펴보고서 처음으로 이질감을 느꼈다.

다른 면접자들은 문자 그대로 ‘가만히 있을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엉덩이 붙이는 것만 할 줄 알지 앉아서 손톱을 만지거나, 자세를 고치거나, 신발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수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야지! 라고 생각해도 1분만 지나면 그대로 또 그러고 있다. 내 몸이 내 의지로 조절이 안 되고 있구나, 라는 사실은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⑦어릴 적에도 현재와 유사한 사항들이 있었다.

중고등 학생 시절 수업에 집중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가만히 있는 게 내 의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집중하는 것 또한 내 의지로 되지 않았다. 수업을 듣다가도 곧잘 다른 생각으로 빠지곤 했고 집중해야 한다 스스로 상기시켜도 어느샌가 다른 짓을 하게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시험을 치면 항상 OMR카드 마킹 실수를 한다든지, 옳지 않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를 옳은 걸 골라 점수를 날린 다든지, 시험지 앞장만 풀고 뒷장은 풀지 않았다든지, 다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풀지 않은 문제가 있는 걸 마지막에 발견했다던지 같은 문제가 꼭 발생했다.

     

스스로 느낀 주된 문제 증상들은 이렇고 성격, 행동 특성으로는 잦은 멍때림, 잦은 공상, 쉽게 질리고 욱하는 성격 등이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증상을 가진 나는 병원에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읽는 이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가지 않아도 괜찮다였다. 이미 우울증으로 반년 정도 병원에 다닌 전적이 있어 정신과에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사람에 비하면 허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로 쳐도 좋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가지 않았다. 나의 우려와 걱정이 가벼웠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위와 같은 증세로 성인 ADHD가 아닐까 의심하고 방문을 고려했던 기간만 최소 6년이 넘는다. 어쩌면 답답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나라는 개인이 내린 판단은 그러했다. 그런 결과를 도출한 일련의 사고 과정이란, 이정도야 별거 아니니까. 그냥 내가 멍청한 걸 수도 있으니까, 나보다 심한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나의 고질적인 성격과 시간이 오래 지남에 따라 무뎌진 자기 객관화가 합쳐진 결과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혼자 안고 살아가다 보면 그것을 발견할 기회를 놓치곤 한다. 나처럼 운 좋게 환경이 갖춰져 의심하는 단계까지 도달했다 할지라도 홀로 그 단계에 머물러 있다 보면 분명 나인데도 나를 제대로 잘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의심하는 것을 의심하게 되어버린다. 나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것 같다고 여겨버린다.     

위와 같은 증상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전부 말하진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직하게 몇 개 까먹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내가 말한 증상들은 전부 전형적인 ADHD 증상이 맞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서두에 있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병원에 갈까 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야 한다.      

병원에 가자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기다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성인 ADHD는 아동기에 치료되지 못한 것이 성인이 되어서도 남아 있는 것으로 아동기에 치료하면 가장 좋은 것이라 하였다. 이렇게 보면 치료에 늦은 감이 있지만. 사실 빠른 것일 수도 있다. 이번에도 수많은 어제와 같이 미뤘더라면, 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더라면, 병을 진단받은 오늘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병원에 방문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이 늦은 사람들을 나무라려는 의도도 없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여 더는 다치는 일 없도록 하자는 의미다. 혹시 위 증상들이 자기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병원에 방문하는 걸 고려해보라고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싶다. 물론 전문성 없는 개인 경험담보다 검증된 기관에서 나온 ADHD 자가진단을 간단히 해보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쉽게 할 수 있다.


내가 쓴 글로 진단 없이 나는 ADHD 환자구나! 하는 확신으로 이어지는 걸 바라는 것 또한 아니다. 병세에 대한 판단은 의사가 내려주는 것이 정확하며 치료도 그 과정을 거쳐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글을 작성한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고 향후 상태와 비교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지난날의 나처럼 정신과 방문을 고민하는 또 다른 나에게 정신과로 향하는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주기 위함이 크다. 정신과는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 사실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 오는 곳이다. 병원이라는 이미지처럼 마냥 삭막하지 않다. 대기하는 내원자 중 어떤 일로 방문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오게 됐는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정신과도 그저 사람 사는 곳다운 공간이다.    


현재 예약이 가득차 바로 세부적인 검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약을 먼저 먹고 있다. 검사는 가장 빠르게 잡아 10월이었고 약을 어느 정도 복용한 상태에서 보면 좀 더 수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약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나아질 수 있는 지에 대한 방법은 알아가는 중이며, 앞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의 이야기도 간간이 써 내려가 공유하고 싶다. 더 나은 삶은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성인 ADHD를 진단받은지 일주일이 지났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걸 망설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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