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나는 이미 수 십번은 실패 했을 법한 새해 계획을 또 세웠다. Todo 리스트 젤 윗칸에 ‘요가수련 주 4회 이상, 매일 5분 명상’ 이라고 쓰면서도 과연 올해는 지킬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의심 한가득. 그리고 아니나 달라, 실패 투성이 1월이 어느새 다 가버렸다.
벌써 십 몇년도 더 된 날들의 이야기. 8개의 방송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휴가는 커녕 잠 잘 시간도 없던 ‘겉으로 볼 때만 잘나가던’ 방송국 아나운서 시절.
한 자리에 앉아서 길게는 15시간씩 녹화를 하다보니 허리와 어깨도 진작에 아작이 났고 각종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은 바닥. 일 많이 하면 뭐하나 월급은 똑같은데 같은 찌질한 생각이나 하며 언제 회사를 관둘까 고민하던 그 시절. 이제 겨우 20대인데 이러다 일찍 죽겠다 싶어서 운동도 할 겸 제발로 동네 요가원을 찾아갔던 게 요가와의 첫만남이었다.
요즘처럼 zen 스타일 고급진 센터에서 세련된 핏의 레깅스 차림으로 아사나나 명상을 즐기는 요가문화가 대중화되기 전, 당시 내가 살던 동네 구석진 골목 허름한 건물 3층 ** 요가원에서는 몇 안 되는 수강생들이 단체복을 맞춰입고 마치 택견을 연상케 하는 헐렁하고 낭창한 몸짓을 단체로 따라하고 있었다. 얼떨결에 등록을 하자 당일 수련때 입으라고 나눠준 황토색 개량한복 느낌의 옷은 실루엣도 컬러도 몇 블럭 떨어진 숱가마 황토방의 그 옷과 너무나 유사해 입자마자 ‘아 찜질방 가서 지지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그 요가원은 한 달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 두게 되었는데 표면적으로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였지만 누리끼리 황토색 찜질복도, 왜 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자꾸만 따라하라고 시키던 흉하디 흉한 심하아사나(사자자세)도 도무지 매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단게 더 솔직한 이유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떠난 미국유학 시절에 접한 룰루레몬과 요가수업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나는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요가센터를 드나들었고, 여러 개의 지도자 자격증을 따면서 진짜 요기니가 되었다.
요가를 하면서 매일 수련을 갈 정도로 요가에 푹 빠져 보기도 했고, 1년 이상 매트를 펴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누구는 몇 달만 배워도 날라다니던데 내 아사나는 십 수년째 제자리 걸음. 후하게 쳐줘서 중급 수준정도? 특히 후굴이나 어깨 사용하는 동작 및 몇몇 내 신체적 한계를 체감하게 하는 동작들을 할 때면 너무 안되는게 부끄러워서 요가 한 지 몇 달 안 된 초보인 척 하기도 한다. 명상을 해보자며 관련 책은 한아름 사뒀는데 뭔 명상만 하면 5분도 안되어 잠이 쏟아져서 매번 실패하는 건 또 어떻고.
서울 메이트 속 효리는 고난도의 동작도 척척, 슈퍼스타 출신이 심지어 요가까지 잘하던데 그정도는 돼야 어디 가서 요가 좀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풀이 죽기도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뭐든 쉽게 포기하고 질리는데 선수인 내가 방송 외에 유일하게 긴 시간 좋아하며 노력해온 것, 앞으로 꾸준히 하고싶은 것은 현재로서는 요가 뿐이다.
요가를 꾸준히 짝사랑 해 온 지난 십 여년 간 내 인생의 많은 결정적 장면들, 힘든 선택과 책임의 순간에 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많은 의지가 되어 주었다.
지난 십 여년 동안 나는 평생 다닐 줄 알았던 회사를 관뒀고, 나쁜 남자와의 연애 및 이별 후유증에 호되게 몸살을 앓기도 했고, 천만 다행으로 너무 웃기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과 출산을 하고, 소중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코로나 세상을 만나 마스크와 함께 40개월 가까이 아이를 키우며 힘든 고비마다 요가 매트 위에서 땀흘리고, 비우고, 깊은 호흡을 채우며 여기까지 왔다.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한다고 안그러던 인간이 깊어지고 현명해지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다. 나는 여전히 예민하고 까칠하고 고질병인 ‘욱’도 있고..무엇보다 개구쟁이 사내아이를 키우면서 가뜩이나 내 속에 잠재해 있던 화가 점점 많아지는 걸 느낀다.
앞으로도 나는 이런 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선의 일상과 평온을 보장받고자 올해도 부지런히 요가를 하고, 명상이랑도 친해지고, 또 이 과정들을 틈틈이 기록해보려 한다.
나처럼 타고난 화가 많은 예민 까칠이들이여, 속는셈 치고 같이 요가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