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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현진 Feb 14. 2023

화가 많아서 명상을 합니다.



얼마 전 독서명상 원데이 클래스에 다녀왔다.


요가 수련을 하면서 명상도 꾸준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가끔 명상수업에 참여할 때마다 기면증도 아니고 어쩜 한 번도 빠짐없이 매번 미친 듯 잠이 쏟아지는 지 제대로 명상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명상을 한다고? 나름 독서부심 쩌는 나로서는 이거야 말로 나같은 사람을 위한 시간 이라며 당장 등록. 평소 웬만큼 중요한 일 아니면 주말 독박 육아의 루틴을 깰 핑계가 없지만 수업이 너무 궁금해 결국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께 다섯 살 개구쟁이를 토스하고 집을 나섰다. 강남 끝자락에서 무려 사대문 안으로, 오랜만에 지하철로 한강을 건넜다. 설렘 가득 주말 육탈 만으로도 소기의 목적 달성.




최근 몇 년간 붐이라고 할 만큼 명상이 대유행이다. 점점 사는게 팍팍해져서 그런가? 누구보다 내가 소중하다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며 명상을 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sns에서  #명상, #meditation, #알아차림 #마음챙김 등의 키워드로 조금만 검색해보면 관련 이미지가 수없이 쏟아진다. 유행하는 건 다 따라해봐야 하는 스타일이라 자연스레 관심이 옮아 붙게 되었고, 무엇보다 팔로워가 많은 명상 계정 속 그(녀)들의 편안하고 세련된 이미지들이 좋아 적극적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만면에 띈 온화한 미소와 말간 피부(명상을 오래 하면 피부도 좋아지나?), 내가 늘 꿈꾸지만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극 미니멀라이프와 채식, 유행이나 타인에 흔들리지 않는-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자기확신이 부러웠다.


아마도 그저 보여지는 이미지에 치중한 경우가 아주 많을 테고 왜인지..무림의 명상 고수들은 인스타도 안할 거 같지만(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를 만 한 이미지 메이킹, 브랜딩을 꾸준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들 나보다 낫네..싶었다.


매번 명상을 시도 할 때마다 수마와 사투를 벌이는 신세다 보니 괜히 못난 마음이 불쑥 올라와 '이런 흉내 내기가 다 무슨 소용이람? 다 가식이지..‘ 하다가 가식도 십년을 떨면 진심이 된다고,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목표를 이룬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진짜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을 해야 인생이 바뀐다고 했던 친구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십 수년 전 첨 들었을 땐 말도 안되네 가식적인 년 했었는데 살다보니 와 맞네 똑똑한 년 하고 뒤늦게 수긍이 갔다.






부끄럽지만 나는 성인 adhd가 아닌가 심각하게 의심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웬만해선 집중을 잘 못한다. 머릿속은 늘 수 많은 잡념으로 뒤엉켜 있고 결혼과 출산 이후 급격히 많아진 역할과 책임이 버거워 꽤 긴 시간 우울감을 느껴왔고 따라서 감정의 기복도 심한 편이다.


무엇보다 워낙에 평생 관종 집중형 그룹 (무용과, 미인대회,방송국)에 속해 지내다 보니 매사에 타인의 평가나 잣대에 굉장히 민감하게 촉을 세우는 편이다. 40대 평범한 주부인 지금도 늘 내가 원치 않는 존재 혹은 상황에 휘둘리고 동요하며 왜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이따위일까 하며 자신에 실망하기를 반복하다보니 명상을 하면 내 감정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가끔 가까운 또래 지인들과 얘기해보면 나와 비슷한 고충을 겪는 경우가 생각 외로 많아 놀라기도, 위안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매일의 일상을 안정된 기분 상태를 유지하며 어른답게, 견고하고 충실하게 사는 게 모두에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군..하는 묘한 안도감도 느꼈다.


각별한 노력의 결과로 혹은 타고난 훌륭한 성정으로 한결같이 잔잔한 호수의 수면같은 마음상태를 유지하며 사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최소한 하루에도 여러 번, 별 거 아닌(가끔은 별 거인) 이유로 수시로 빡치면서 앵그리버드가 되는 나로서는 내 마음 하나 다스리기가 제일 힘들다.


이런 잦은 사소한 빡침을 매번 티내기도 귀찮고 에너지도 없고, 그러니까 다들 이러고 사는거지 하며 억지로 무시하고 넘어가길 반복하다보니 내 감정에 자꾸 무뎌지고 행복하지 않은 마음에 점점 익숙해져만 가는 게 서글픈 생각도 들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아이에게, 하물며 한티역 사거리 학원가에서 매번 나를 개빡치게 하는 무개념 운전자에게 조차도 쌈닭처럼 마구 쪼아대고 나면 그런 내가 싫어서 기분은 한없이 땅 속으로 꺼져든다. 스스로에게도 좀 더 너그러워지고 싶지만 그게 너무 힘들다. 휴. 심호흡 좀 하고.




최근 몇년 육아 외에는 내 존재를 증명할 곳도, 필요로 하는 곳도 없단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호기롭게 회사를 관둔지 10년이 다되어 가는데 딱히 이룬 것도 앞으로의 비전도 별로 없어 보이고, 이제 내게는 주부와 엄마로서의 역할 말고 다른 미래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아 답답했다. 세상 변하는 속도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는데 정작 따라잡고 싶은 의욕이 안 생기는 마음상태도 걱정이 되었다.


230대를 극성맞고 유난스럽게, 너무 열심히 나를 갈아서 살아서인지 잔뜩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과 예민함은 일상 곳곳에서 복병처럼 나를 괴롭힌다.


40대 애엄마가 된 이제는 열심 강박에서 벗어날 법도 한데 혹여나 그 불똥이 아이 육아나 교육에 옮겨붙을까 겁이 나는 요즘이다. 매사에 무리해서 애쓰고 증명하려 하는 유치한 생각에서 벗어나 담백하고 심플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나름 각고의 노력을 해왔고 그 일환으로 나는 결국 일요일 한 낮에 열린 독서명상이라는 이름의 클래스에 잔뜩 기대를 안고 다녀왔지만..이번에는 헤드뱅잉까지 하며 졸다보니 수업이 끝나 있는게 아닌가.


선생님은 명상 중에 졸린 건 명상의 목적인 이완이 아주 잘 되었기 때문이라며 졸릴 땐 그냥 자도 된다고 죄책감을 내려놓으라고 말씀해주셨다. 또 명상 때마다 반복적으로 졸린 건 평소 잠이 부족하다는 말이니 평소 수면 시간을 늘리는 게 어떻겠냐고 진심 어린 조언까지 해주셨는데 거기에 대고 평균 수면 시간이 9시간인데요..라고 할 순 없어서 그냥 애 키우고 살림 하느라 늘 잠이 부족해서 힘든 척 연기를 했다.




이쯤이면 포기 할 만도 한데 나는 한 술 더 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는 3월에 개강한다는 집중 명상 프로그램 일정을 둘러보았다. 포기를 모르는 자여 결국 그 곳에 다다르기를 바란다 제발.


일상을 지배하는 크고 작은 화나 불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릴 때, 그리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내려놓지 않을 때 결국 명상은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아직까지는 철저한 내 짝사랑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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