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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현진 Mar 09. 2023

제가..예민한 건가요?

일상에서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한번쯤은 작정하고 써보고 싶었다.  일상에서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제가..예민한 건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래 니가 예민하다"고 한다면 내가 고치는(척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선 스스로 성격파탄이 아닌가 했던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테고 그 후엔 내가 예민해지는 상황을 가급적 안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런 상황에서 최대한 지혜롭게 빠져 나오는 나만의 메뉴얼을 좀 구체적으로 만들어 보려 한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은 5am. 오늘은 새벽 2시 조금 넘어 눈이 떠졌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깨다보니 컨디션도 그저 그렇다. 촤악 가라앉은 느낌과 더불어 약간의 두통이 있는 상태가 어젯밤부터 이어지는 중이다.


어제 아이의 새 유치원 학부모ot가 있었는데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긴장을 했나보다. 어른인 나도 이런데 39개월 아이에게 3월 신학기의 매일이 얼마나 새롭고 버거울까. 갑자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의 조그만 어깨를 보듬어 주었다.


그렇게 그대로 침대에 누운 채로 다시스르르 잠들면 좋으련만.. 폰질만 한 시간을 하다가 결국 포기. 찌뿌둥하고 추욱 가라앉은 몸뚱이를 일으켜 차 한잔 마시며 유튜브를 켰다.


따뜻한 차 기운이 몸에 퍼지니 명상이 하고싶어져 좋아하는 요가 선생님의 채널로 가서 짧은 명상호흡을 따라했다. 손가락을 이용해 한쪽 콧구멍씩 막고 번갈아 숨을 쉬는 나디쇼다나, 깊게 내쉴 때마다 음~하고 진동을 만들어주는 브라마리 호흡. 둘 다 산만하고 예민해진 마음을 추스르는 데 좋다고 하셔서 해보니 진짜 마음이 좀 부드러워 진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소한 것에 그토록 예민할까? 다 꺼내서 말하자면 몇 날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언뜻 생각나는-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것들만 적어본다.


우선 나는 타인과의 물리적인 거리에 아주 민감하다.

대중교통을 탈 때 내 뒤에 누가 바짝 붙어서 타는 것이 힘들다. 어차피 모두 탑승해야 출발하는 것을, 빈 자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겠지만 누군들 앉아서 편하게 안 가고 싶을까. 무엇보다 대중교통 이용 시 타인과 최소한의 거리 유지는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엔 개인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가 아닌가.


또 당연한 기본 에티켓을 넘어 개인적인 목표이자 바람인 ‘어떤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잃고 싶지 않은’ 의지를 담은 필사적인 노력이기도 하다. 차분히 내 차례 기다렸다 버스 타기, 앉을 수 있으면 않고 언제든 필요시 담백하게 자리 양보하기. 내 지상 최대 목표인 '곱게 나이들기' 위해서 내가 일상에서 지키는 사소하지만 아주 중요한 태도이다.


 자주 가는 마트에서도 나의 불편함은 계속된다. 아직 계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뒤에 기다리던 사람이 자기 물건을 한창 계산중인 내 쪽으로 마구 집어 올리거나, 혹은 커다란 카트를 막바지 포장중인 내쪽으로 휙 밀어내며 어서 비키라는 무언의 압력을 줄 때 나는 짜증이 난다. 그런 사람들은 주차장에서 보면 꼭 자기 차에 짐을 싣고 빈 카트를 차 옆에 덩그러니 두고 사라지곤 하지. 카트 보관소가 버젓이 따로 있지만 거기까지 갔다 오기엔 너무 바쁘거나 아예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알고싶지 않거나.


호텔 로비에서 주로 보는 회전문 그 좁은 한 칸에 굳이 낑겨서 같이 타려는 사람, 무거운 문 열고 먼저 나가면서 문 안 잡아주는 사람도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 아, 남이 문 열면 빛의 속도로 몸만 쏙 넣어 먼저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지. 여기에 더해 엘리베이터 탈 때 나보다 한참 늦게 와놓고 문 열리자마자 얌체처럼 먼저 쏙 타는 사람에 이르면 정말 우리나라 선진국 맞늬? 되묻게 된다.


운전할 때 내 차 뒤로 너무 바짝 붙어서 숨막히게 혹은 위협적으로 따라 붙어서 빨리 가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운전자도 자주 만난다. 이런 사람들은 내내 뒤에 붙어서 내 운전을 답답해 하다가 추월해서 가면서 꼭 창문 내려서 눈으로 욕하고 가더라. 이래뵈도 운전경력 20년에 구축 아파트 상상초월 곡예주차도 웬만하면 한번에 클리어 하는 운전부심 쩌는 사람인데 나 참. 어차피 시내는 50킬로 제한속도, 스쿨존은 30킬로인데 어쩌란 말인지. 횡단보도 우회전에서 아직 초록불인데 사람 없단 이유로 어서 안가고 뭐하냐고 빵빵거리는 뒷 차는 정말. 싸우자!


아 어떡하지 아직 10분의1도 안했는데. 내 글이 누군가에게 너무 스트레스로 다가올까 걱정이 된다. 안그래도 힘든 일상 얘는 또 뭘 이렇게 팩폭해서 더 피곤하게 만드냐며 응 너가 예민한 게 맞다..벌써 결론 내려버릴 것 같은 두려움. 그런 의미에서 2절은 짧게 하고 끝낼 테니 끝까지 읽어 주시길.





아주 기본적인 공중도덕이라 유치원생도 알만한, 해야되는 것과 하면 안되는 것의 구분이 안되는 사람도 많더라.


요즘 각종 금지 싸인에 꽂힌 아들은 하루에도 열 두번 '금연구역'이라고 되어있는 금지 싸인을 소리내어 읽는데 열에 일곱번 이상 바로 근처에서 버젓이 흡연하는 사람을 보게된다. 필려면 집에서 문 꼭 닫고 피길 제발..아이 손잡고 온갖 인상 쓰고 티 팍팍 나게 옆을 지나가도 눈하나 깜짝 안한다. 공중도덕은 껌처럼 무시하는 사람인데 오죽할까. 기대한 내가 바보. 자매품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침뱉지 마세요 도 있다. 이런 사람들 보면 조용히 복화술로 요즘 우리집 유행어인 "헐크 스매시!" 를 날려준다.


 또 하나 '카메라 촬영 금지' 는 특히 아이 데리고 다니며 유치원, 미술학원, 각종 놀이체험 장소에서 정말 많이 보는데 물론 잘 지키는 분들도 많지만 신경도 안쓰고 폰카 눌러대는 사람들 너무 많다. 교실 창 곁에 앉아있는 사람 1도 신경 안쓰고 막 몸으로 밀어부치면서 아 대박 아 대박..너무 귀여워 손하트 막 만들면서 찰칵찰칵 하는 거 보면 진짜 파이터 기질이 또 스멀스멀 하지만 동네에서 또 마주칠까 싫은 티도 못내고 넘기는 경우가 더 많다. 저기요 남의 아이 초상권은요? 라이브 모드로라도 바꿔놓고 찍으시든가. 찰칵찰칵 휴.


아 나는 또 한줄 서기에도 목숨 거는 편이다. 우리 동네 인기 빵집은 한줄서기, 하다못해 요즘 쇼핑몰이나 마트 등등 웬만한 곳 화장실은 다 한줄서기다. 그런데 굳이굳이..몇 분 째 한줄 서 있는 사람들 개무시하고 계산하는 손님 끝나는 타이밍 딱 맞춰 절묘하게 새치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땐 나도 확 눈 돌아서 안 참는다. "한줄서기예요" 라고 짧고 강한 일격을 날리면 대부분 머쓱해서 줄 제일 뒤로 가지만 우리 동네 빵집 단골 몇몇 어르신들은 "응 알어" 라거나 "나 몇개 안샀어 금방 끝나" 웃음기 가득 온화한 말대답으로 시간끌며 절대 비키지 않는 강한 내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이고 민망한 내 입. 아 여기서 쫌더 쎄게 나가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무서워서 못그러겠다.




온갖 불평불만-누군가에겐 개소리 일지도 모를-을 정성껏도 써내려오다 보니 날이 밝았다. 아직 일상에서 내가 욱하는 포인트가 엄청 많이 남아 있지만 읽는 여러분의 정신건강과 긴 불평불만 글에서 오는 피로도를 감안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사실 써놓고 보니 굳이 '제가 너무 예민한 건가요?' 물어보지 않아도 내가 꽤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인 건 확실해 보인다. 나 혼자 저런 것들 다 잘 지키고 산다며 속으로 안그런 사람들에게 글로 꼰대짓 하려는 낌새도 보이고. 무엇보다 정작 나야말로 성격이 급하고 여유가 많이 없기 때문에 이런 작은 부분에도 욱욱 하게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쯤에서 좀 궁금하긴 하다. 무던한 성격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경우에 어떻게 반응할까.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저런 것들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지,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그냥 넘길 지, 속으로 약간 불편은 해도 굳이 티내지 않고 넘어가는 지. 혹시 본인이 그런 분이라면 댓글로 제게 노하우 공유 좀..


어쩌다 보니 또 기승전 요가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되지만 나는 그래서 요가와 명상을 시작했다. 지난 몇 년 아이 키우느라 소홀히 했던 수련을 올해 들어서 더욱 부지런히 하며 아예 앞으로의 내 인생의 뜻을 그 쪽에 두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요가명상이 없는 내 인생은 얼마나 더 예민하고 잔뜩 당겨진 활처럼 긴장감으로 가득할 지 상상이 되고 괴로워서. 일상에서 만나는 진상들(그들에겐 내가 진상)과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상황들, 원치 않는 손해와 구설들로부터 완전무결하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 내 삶의 평온은 내가 노력해서 찾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진짜 바닥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쪽에 한 표 던지지만 내가 지향하는 더 나은 모습의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하면 내 안에 좋은 자산은 더 좋게, 안 좋은 부분은 최대한 미약하게 힘을 빼 놓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제와 똑같이 화내고 후회하며 살고싶지 않다면 매일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내일 아침에도 따뜻한 차와 열 번의 브라마리 호흡으로 하루를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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