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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Nov 27. 2023

상상(想像)

 요일부터 비가 왔다. 사람 없는 젖은 길을 걷는다. 그러다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나를 아는 어떤 무리들이 발견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곤 미리 왜 혼자 걷고 있는지 둘러대 본다. 텅 빈 거리에서. 그런 이상한 상상을 가끔 한다.


 사무실 창문 밖으로 이차로가 보인다. 듣고 있는 음악을 만든 밴드가 거기서 공연하는 걸 상상한다. 사람들이 놀라며 저게 뭐야, 한다. 놀라고 분주한 사람들. 순수한 호기심에 젖어 한마음이 된 무리들을 상상해 본다.



 머니를 보고 왔다. 치매에 좋다는 화투패만 척척 잘 맞추는 할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연신 기도를 한다. 하나님 아버지…. 거실에 웅크려 식탁에 앉은 할머니를 슬금슬금 피했었다. 호랑이 같은 눈초리에 걸리기라도 하면. 드디어 환하게 웃는 할머니 눈은 겨워서 제대로 볼 수 없다.


 같이 사는 상상을 한다. 언양불고기를 잘게 자르고, 소리치듯 말하고, 아침마다 조마조마. 떨어져 있을 때 상처받지 않는다던 소노 아야코 말이 떠오른다. 할머니를 보고 올 땐 나의 이기심과 거리감이 끔찍하고, 유리문 안 할머니의 인사가 사무친다. 할머니 침대에서 잠들던 생각을 한다.



 화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농산물 가격에 대한, 교권에 대한, 해고에 대한, 정치에 대한 시위가 미어져 영화를 놓쳤다. 원주민과 침략자를 다룬 영화였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꽂고 분주히 갈 길 가는 아저씨들이 옆으로 지나가면 그 냄새를 맡으며 상상을 하곤 한다. 저들도 바라는 대로 살아진다면.


 상상을 한다. 월요일마다 닫는다던 도서관이 활짝 열린다면, 병동에 유행하는 치매 클리닉이 효과만점이라면, 해고금지 부스를 수놓은 예쁜 자수가 효력이 있다면, 피아노를 들으며 저마다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씩이라도 이뤄진다면. 사실 이상하지 않은 상상들이 이뤄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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