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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소방관 May 23. 2021

창조를 위한 결별

새로워지기 위해 버려야하는 이유

누구나 새로운 것을 좋아한다. 깨끗하고 신선한 것을 갈망한다. 나 역시 반질반질한 새것의 모양새와 향기가 좋다. 가끔, 레트로처럼 옛 것의 그리움이 발현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느낌의 문제이지 형상은 역시 새것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이론, 새로운 사람 등 많은 새로운 것들이 매일 쏟아지는 세상이다. 결국 새로운 것을 우리는 매일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새것은 다시 헌 것이 된다. 아끼고 아낀 들 시간의 풍화를 겪는 모든 피조물은 색이 바래지기 마련이다. 세상만사의 이치이고 당연한 현상이다. 헌 것은 뒤로 미루어지고 그 자리를 새것이 차지한다. 돌고 돈다.


새것은 창조를 통해 만들어진다. 모방도 창조이니 대다수의 새것이 모방에서 나오는 작금의 현실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한 창조를 위해 제일 먼저 할 것은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새것이 헌 것이 되었는데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 익숙해진 것에 대한 결별이 두려운 것이다. 새것을 바라는 마음이 쌓여가는 만큼 헌 것도 쌓여간다. 사용하지도 않는 헌 것들이 온 집안에 꾸역꾸역 밀려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새로운 다짐은 며칠 만에 헌 것이 되어 마음 한 구석에 켜켜이 쌓인다. 뒤늦게 작은 죄책감이 밀려오는데 그것을 상쇄시키기 위해 또 다른 다짐을 하며 억지로 새로워지려고 한다. 창조가 아니라 번민이다. 버리지 못함의 연속이다.


비워야 한다. 똥을 싸고 오줌을 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질의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 내 몸 안에서 제 역할을 다해 영양분을 골고루 살과 뼈로 보냈다면 음식은 똥이 되고 배설을 기다린다. 자신의 역할을 위대하게 이루어 낸 것이다. 더럽고 보기 힘든 것이 똥이 아니다. 배설은 먹기 위한 가장 숭고한 작업이다. 살기 위한 원초적 본능이다. 그렇게 매일을 버려야 우리는 산다.


창조하고 달라지고 싶다면 버려야 한다. 겨우내 손 한번 대지 않았던 좁은 내 방을 봄기운이 들어찬 주말 오후 탈탈 털어 정리했는데 버릴 것이 반이다. 수 백 기가가 넘는 노트북의 자료를 한나절 내내 정리했더니 버릴 것이 태반이다. 버리고 나서 보니 버리려고 마음먹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나 보다. 그 후 마음은 홀가분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공간도 생겼으며 또 다른 창조를 하기 위한 욕구도 솟아난다.


아끼는 마음과 다른 맥락이다. 소중함이 묻은 것들을 마구 버리자는 말도 아니다. 생각 없이 받아들인 새로움이 결국 금세 헌것이 되어 방 한구석에, 노트북 하드 디스크에 내 마음 어딘가에 쌓여가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 것들과 결별하고 이제 내개로 다가올 새로운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하고 더 다듬어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은 이유를 여기에서 찾았다. 창조를 원한다면 결별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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