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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후(三不朽)

글은 일상이어야 한다

by 글쓰는 소방관

내 첫 책 기사를 써준 매경 김유태 기자의 기사는 구독까지 해가며 빠지지 않고 읽는다. 김 기자는 문화부 기자답게 책, 영화, 연극 등 문화계 소식을 심도 있게 전하는데 기사마다 울림이 크다.


좀 지난 기사이긴 한데 수천억의 매출을 내는 건실한 중견기업의 회장이 고령의 나이에 공부하며 느낀 소회를 김 기자 특유의 담백한 기사로 냈었다.


기사의 주인공 황재철 회장은'삼불후(三不朽)라는 말을 했는데 인간은 썩지 않는 세 가지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공(功) 즉 업적이고, 또 하나는 덕(德) 즉 인격이며, 마지막 하는 언(言) 즉 글이다. 언뜻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고사인 듯 하지만 분명 지금에 빗대어볼 만도 하다.


업적이 별거겠는가? 자기 일에 충실하고 그 안에서 일가를 이룰 만큼 열심히 했다면 그게 공이다.


인격이 별거겠는가? 내 가족 사랑하면서 인심 베풀고 욕심 거두어 바르게 살면 그게 덕이다.


언이 별거겠는가? 누구나 읽고 쓸 줄 알겠으니 내 맘, 내 생각 적어 남기면 그게 글이다.


다만 글 얘기에 좀 더 보태본다. 우리는 글에 너무 소홀하다. 사람들은 글을 너무 쉽게 본다.

까막눈이 거의였던 옛 시절엔 글 안다는 것이 곧 계급이었겠지만, 누구나 읽고 쓰는 요즘은 글 쓰는 일을 높게 쳐줄 일 없다고 보는가 보다.


한번 보자. 충무공이 자신의 일기를 남기며 후대의 성웅으로 추앙받길 바라거나 예상했을까?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쓰며 자신의 글이 오랜 시간 뒤에도 길이 읽히는 걸작이 되길 원하며 썼을까?


아니다. 그냥 썼을 것이다. 숨 쉬듯 말이다. 식자가 글을 쓴다는 것은 당연한 행위였고, 글은 일상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자신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삼불후의 하나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연 소득 최하위 직업을 추린 또 다른 신문기사를 봤다. 작가가 최하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을 보고 삼불후가 무색했다. 딴엔 돈 되는 일이 아니니 쓰지 않는가라는 생각에도 미쳤다.


돈 되는 일이어야 득달같이 몰려가는 행태야 자본주의 국가에서 당연하다고 하지만 수천억 자산가가 종국에 자신을 남기기 위해 만학을 불태우며 글을 쓴다는 기사를 보니 잠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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