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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chan Lim plays Bach

J.S. Goldberg Variations BWV988

by Jinny Mar 05. 2025

Yunchan Lim

Herbst Theater, San Francisco /  Feb 25th 2025

음악의 아버지 바흐에 대해서는 아마 누구라도 한번 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왜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이며, 분명 헨델은 남자 얼굴인데 왜 어머니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는지, 그럼 바흐와 헨델은 부부 사이인 것인가? 나는 이런 실없는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어쨌든 바흐는 그 옛날 음악사에 대단한 업적을 남겼고 오래오래 기억될 사람이다 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집 근처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아주 기초적인 바흐 곡들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 당시 악보에는 콩나물도 몇 개 없고 굉장히 쉬워 보이는데 오른손과 왼손이 참으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며 바흐 곡은 보기보다 매우 어렵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1685년에 출생하여 1750년에 사망한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65년의 세월을 살며 (그 시절 음악가로서는 나름 장수하심) 자식을 20명이나 키우면서 독실한 기독교 종교 음악인으로 굉장히 성실하게 일 한 작곡가이다. 애를 하나 키우는 입장에서 자식이 20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그의 음악에 왜 고뇌와 희열과 깊은 감동을 포함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일생의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숭고함과 고결함이 거의 모든 그의 음악에 베어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한 부분을 제외하고서도 내가 가장 바흐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음악이 굉장히 수학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처음 들어보면 전체 곡이 끝나기 전에 이미 끄거나, 다른 걸로 돌렸거나, 잠들었거나… 대부분 너무 지루해 하는 곡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메인 주제인 아리아를 듣는 순간, 어! 나 이거 들어본 적있어! 할 만큼 매우 친숙한 곡이다. (양들의 침묵이라는 영화에 아리아가 삽입되어 대중에 더욱 친숙해짐) 이 유명한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를 갖고 있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이미 어떤 귀족이 잠을 좀 잘 자보려고 불면증 치료를 위해 바흐에게 의뢰해서 만든 곡이라는 설이 있을만큼 마음 편안하게 잠들기에 딱 인 곡이고, 골드베르크라는 당시 이 곡을 초연한 바흐의 제자의 이름을 따서 출판된 곡이다. 이런 스토리를 듣고, 아- 오랫동안 내가 이 음악을 끝까지 못 듣는 건 당연한 것이구나 생각해 왔는데 막상 이 곡에 대한 여러 음반을 듣고, 어떻게 구성이 되었는지 알게 되니, 다시 한번 바흐 이 양반은 천재임이 틀림 없구나 싶었다. 내가 어릴적 대학 수학능력 시험과 함께 논술영역이라는 것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도입이 되며 너도나도 논리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음악에서는 바흐를 통해 어떻게 음악적 논리가 펼쳐져야 하는지 가장 잘 알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바흐의 음악은 실제로 연주하려면 그 음악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에서는 원래 멜로디의 반복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성과 대단한 발전을 이뤄내면서 음악적인 창의성을 더더욱 부각시켰다는데에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미국 시골에 거주하는 워킹맘이 올 해 초 고민 끝에 결정한 원정 공연 관람은 임윤찬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였다. 샌프란시스코 데뷔 무대이기도 하고, 이미 리스트의 초절기교, 쇼팽의 에뛰드 전곡 음반을 통해 이 어린 연주자가 얼마나 한 작곡가의 곡들을 통째로 연주할 때 그 깊이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 증명했기에, 바흐의 이 대단한 곡을 실연으로 들을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공연 두세달 전부터 글렌굴드의 1955 & 1981년 녹음 버전, 손민수 교수님의 명동성당 실연버전, 랑랑과 올라프손의 음반을 비교해 가며 들었고, 솔직히 그동안 갔던 그 어떤 공연보다 가장 많이 공부했다. (안드라스 쉬프, 임동혁, 다비드 프레이, 지용 등 유투브와 애플뮤직에 가능한 웬만한 버전 다 들어봄 - 일하면서 노동요로 계속 틀어 놓기도 하고, 집중해서 몇몇 변주는 따로 반복해서 듣기도 함) 아마추어 피아노 연습생으로써, 아리아와 변주 1,2 번은 본인이 연습도 해 봤는데 역시나 왜이리 어려운 것인지…다시 한번 작곡가의 위대함과 연주자들의 엄청난 노력과 실력을 감탄할 뿐이었다. 직접 쳐보고, 많이 들어본 나의 개인적인 최고 연주 선택은 - 손민수 교수님의 명동성당 연주이다. 완벽하면서도 오버하지 않는 그 절제와 전혀 건조함이 느껴지지 않는 음색.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은 속도와 프레이징, 그리고 명동성당 자체가 주는 그 소리의 울림까지 바흐가 280년이나 지난 후에 이 시대에 와서 듣는다면, 손민수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단 성당에서 연주했으니 추가 점수 ㅎ) 워낙 글렌굴드의 두 음반이 유명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콧소리 너무 거슬렸고, 20년 이상의 차이를 두고 한 사람이 얼마나 다르게 같은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에 매우 흥미로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 했다.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예전에 금호영재 콘서트 영상을 본 적이 있었고, 그 후 윤이상 콩쿨 우승 그리고 대망의 세계 무대를 뒤흔든 반클라이번 콩쿨을 통해 단 번에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가 되었다.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보려고 뉴욕필 협연을 2023년에 본 적이 있는데 그 후 거의 2년만에 그의 실연을 리사이틀로 미국 서부에서 보게 되었다. 진작에 전석 매진된 공연이고, 샌프란시스코 사는 친구 덕에 표를 구해서 그녀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이하느리의 “…round and velvety-smooth blend…” (한국어 제목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이 곡은 마치 안개가 자욱히 낀 호수 위로 바람에 흩날리는 잦은 물결 같았다. 하늘과 호수와 지면의 경계가 매우 모호한 자연의 어느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주면서도 십대가 작곡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성숙함이 가미 된 현대곡이었다. 제목처럼 벨벳을 어루만졌을 때 나는 느낌의 소리를 피아노가 공기중으로 퍼뜨려 주었다.

이 하느리의 곡을 마치자 마자 거의 바로 이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메인 테마인 아리아를 연주했다. 페달링을 조심스럽게 넣어 건조하지 않게 또한 너무 느리지 않게 시작했다. (어떤 연주자들은 바로크 곡을 연주할 때 페달을 전혀 쓰지 않기도 한다)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아리아를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정석의 느낌을 벗지 않을 정도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서막을 올렸다.

변주 1번에서는 경쾌한 느낌을 잘 살려 슬슬 시동을 걸었고, 종종 나는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흰 도화지에 연주자가 그림을 그려나가는 듯한 식의 감상을 자주 하는데 이번 연주에서는 한 폭의 그림이라기 보다는… 연주자가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다가왔다. 변주곡의 묘미일 수도 있겠고, 이 천재 연주자의 영특한 해석 능력이 빛을 발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 음악 속 소설은 마치 옛 유럽 속 남녀의 사랑 이야기여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조심스럽게 시작된 이야기는 6번과 7번 발전에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채고, 자신의 마음을 노래하듯 표현했다. 오, 임윤찬이 슬슬 시동을 거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건 변주 8번인데, 조심스러움은 이제 뒤로 하고, 신나고 설레이는 표현을 아주 밝으면서도 확실한 멜로디 라인과 화성의 주고 받음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 캐릭터가 점차 드러나면서 완벽하게 9번 카논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에 각인될 만한 강렬한 첫음과 저음의 깊은 음색을 매우 자신있게 변주 10번 푸게타로 들어섰다 (첫 음에서 심장을 강타해야 한다는 그 말에 딱 맞는 시작). 그리고 수학적으로 흐트러짐 없이 딱딱 들어맞는 양손의 호흡. 있는 듯 없는 듯 아주 미세한 루바토적 지연을 노트에 주면서 분위기 고조하며 연인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변주14번에서는 트릴천재의 속도감 넘치는 연주 속에서 절대 서두르지 않아서 완벽하게 계산하여 준비한 듯한 아름다움이 하염없이 분출되었다. 이어지는 마이너 변주들에서는 절제된 감정을, 메이저 변주에서는 가벼운 나비가 날아다니듯, 이 연주를 들으면 그 누구도 바흐의 곡이 딱딱하다거나 지루하다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표현력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과연 이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지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전개가 계속 되었다. 개인적으로 변주 19번에서 연주자 자신이 진심으로 행복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 인상 깊었고, 다시한번 저음 연주의 매력에 감탄이 나왔다. 25번은 이야기의 긴 서사를 써내려가는 것 같았는데 피아노 악기 자체의 매력을 마음껏 뽐 내었다. 고조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의 대화를 숨 참으며 엿듣는 느낌으로 듣다보면 다시 밝은 분위기로 전개 된다.실제 악보에서는 32분음표가 난무하고 양손의 위치를 자주 바꿔가며 참으로 정신없이 쳐야 하는 상황인데 마치 미슐랭 레스토랑 요리사의 칼질처럼 매우 정확하고 (분명 페달을 쓰는데 뭉개지는 음이 하나도 없이) 먹기 아까울 디스플레이를 해서 내어준 요리 같았다. 그럼에도 한 입 물면 사르르 녹아 감탄을 자아내는 맛을 가진 소리로 29번과 마지막 변주 30번을 연주했다. 마치 협연 곡의 카덴자 처럼 절정의 모습과 임윤찬 특유의 손가락 날리는 퍼포먼스까지 잊지 않고 해주며 이야기를 결말 지어졌다. 마지막으로 아리아 다카포 - 연인 이야기의 행복한 추억을 다시 곱씹으며 막이 내렸고, 약 70분 정도의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연주는 마무리 되었다. 마지막 음을 친 후, 거의 20초 가까이 여운을 둔 후에 일어났는데 모든 관객이 이 시간과 공간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감히 임윤찬의 연주를 들으며 한낱 사랑이야기를 떠올린 관객의 평이지만 듣는 내내 제인 오스틴의 명작, 오만과 편견 스토리와 2005년에 제작된 영화의 배경이 함께 떠올라 음악에 더 큰 감성을 더했고, 아직도 20대 초반인 어린 피아니스트의 대담한 해석이 오랜 감동으로 남을 연주였다.

혹여나 싸인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씨디와 악보를 챙겨 갔지만 역시나 받지는 못했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돌아왔지만 오랜만에 정서적으로 가득 충전을 해서 행복했다. 식상한 말이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너무 기대되는 연주자이고,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꼭 음반으로 남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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