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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실 Dec 20. 2020

이별을 만드는 이별

[혜성, 능력, 그녀]

오늘 그녀와 헤어졌다.  


결혼한 지 5년, 연애까지 합쳐 11년만이다.  


헤어지는 길에 딱히 할 말이 없던 우리는 아들에게 물었다.


"혜성이 오늘 뭐 먹을까?"


"스파게티!"


"스파게티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하자 알았지?"


"응! 알았어”


3개월 만에 가족 외식에 신이 난 아들을 보니 담담했던 마음이 쓰렸다. 그간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가족 나들이 장소가 가정법원이다.


부모가 이혼하는 자리에 아이를 데려간다는게 말이 안되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었다. 유치원은 코로나로 문을 닫았고 부모님 외엔 이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결혼을 반대했던 부모님은 이혼도 반대했다. 마음대로 결혼하고 마음대로 이혼할 거면 마음대로 연락하지도 말라고 했다. 그런 부모님에게 이혼하러 법원에 가야하니 아이를 봐달라는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았다.


"엄마 좋아!"


"엄마도 혜성이 좋아..."


아들은 연신 엄마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런 아들을 보는 그녀도 얼굴이 좋지 않았다.  




원래 우린 생각도 성격도 비슷했고 흔한 싸움 한 번 없이 결혼했다. 애가 타는 뜨거운 사랑을 하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따듯한 사랑을 했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처음 만났어도 거의 부부나 다름없이 지냈다. 주변에서 우리를 부르는 별명도 인생 2회차 노부부였다.


군대와 어학연수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우린 당연스레 서로 결혼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곧장 이를 선언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졸업해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내가 입사한 회사와도 멀지 않았다. 굳이 따로 살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은 반대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너무 일찍 결혼하는걸 걱정했다. 그녀 부모님은 딸이 가진거 없는 남자에게 시집가는게 마뜩치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강행했다.


부모님 도움 없이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마냥 좋았다. 서로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레 혜성이가 생겼다. 얼어붙은 부모님과의 관계도 하나 뿐인 손자 재롱에 녹아내렸다.


그렇게 행복했던 우리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건 혜성이가 걷고 뛰기 시작했을 쯤이었다.


그녀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이미 입사 초부터 에이스 딱지를 달았던 그녀는 혜성이를 가진 뒤에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혜성이 이름도 내 우주의 태양 같은 아내 곁에서 그녀처럼 빛나는 사람으로 자라 달라는 뜻으로 지었다.


문제는 그녀가 능력이 ‘너무’ 좋았다는 점이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는 혜성이가 2살 되던 해에 그녀에게 해외 신사업을 맡아보라고 제안했다. 20대 젊은 나이에 오로지 능력 하나로 자회사 전문 경영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는 내게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완강히 반대했다. 그녀가 능력을 인정받은 건 좋았지만 아이에겐 엄마가 필요했다. 나 혼자 혜성이를 감당할 생각도 너무 막막했다. 우리는 이 문제로 몇달을 토론했다. 오고가는 말은 많았지만 도저히 의견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출국 시점 전까진 서로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와중에 절충안도 오갔다. 누구보다 딸이 우선이었던 장모님은 내게 혜성이를 맡아줄테니 딸을 한 번만 봐달라며 간곡히 애원했다.


나는 그 모습에 크게 흔들렸다.


처가와 사이가 풀린 뒤로는 여행도 자주 다니며 아들처럼 지내온 터였다. 내 손을 꼭 붙드는 장모님의 거친 손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혜성이 아빠로 살면서 부모 마음이라는걸 충분히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제안을 거절한 건 오히려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죄를 지은게 아닌데 왜 그녀의 부모가 내게 사정하면서까지 육아를 해야하냐고 말했다. 내가 해외로 가겠다고 했으면 시부모님은 반대로 그녀가 일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을거라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딸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가정에서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 해줘야 했다. 주변 도움까지 거절하는 그녀의 말은 결국 그 모든 역할을 내가 맡아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그럼 선택해. 내가 먼저인지 그 뭣 같은 사장 자리가 먼저인지."


나는 홧김에 유치한 막말을 뱉었다. 내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터라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그런데 그렇게 뱉은 말은 시간이 갈수록 진심으로 변했다. 나는 내가 뜻을 꺾어 그녀를 보내주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되면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결국 포기한다면 자신을 주저앉힌 날 원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럼 혜성이는 내가 키울거야"


난 아이까지 무기로 썼다. 나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날 원망하더라도 내심 후일은 좋을 것이라 기대했다.(그러나 그 기대가 근거 없는 허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더 적확한 후일이었다.)


꿋꿋하던 그녀도 혜성이 얘기에는 크게 흔들렸다. 그녀는 혜성이와 같이 해외로 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차마 내게서 혜성이까지 데려 가겠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그녀는 내가 처음 이별을 시사했을 때보다 훨씬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에 결국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는 엄마에게 아이보다 일이 우선인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 안에서 그렇게 사랑스럽던 그녀는  어느새 독한 여자가 돼 버렸다. 우리 사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건 그때부터였다.




출국일은 내일이었다. 그런데도 오늘에야 이혼 도장을 찍은건 그만큼 오래 고민한 결과였다. 그녀는 스파게티를 다 먹고 나서는 길에 한참 동안 혜성이를 안았다.


"아들...엄마가 혜성이 사랑하지 않아서 가는거 절대 아니야...엄마 너무 미워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줄 수 있어?"


그녀는 말을 하면서도 혜성이를 쳐다보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떠났다.


혜성이와 둘만 남게되니 마음이 복잡했다. 혼자가 돼 본지도 너무 오래됐다. 그간 알고 지내온 친구들도 그녀와 함께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녀와 헤어진다는건 그들과도 헤어진다는 말이었다. 어느새 한 몸이 되었기에, 나 자신과도 헤어지는 일이었다.


내가 그녀와 함께 쌓아온 시간들은 이제 혜성이 하나로 남았다.


난 엄마와 헤어져 풀이 죽은 아들 손을 꼭 잡았다.


어른들 세상이 만든 이별이 아이가 자신의 세상과 이별하게 만들었다. 그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제 혜성이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거다.


무엇보다 앞으로 아들에게 수도 없이 설명해야 할 일도 걱정됐다.


가끔은 태양과 헤어지는 혜성도 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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