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냄새, 노력, 겨울]
엄마는 여자처럼 살아야 한다.
적어도 원한다면.
어렸을적 나는 냄새가 심했다. 몸에 땀이 많고 움직이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소아비만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탓도 있었다. 보통 그런 아이를 좋아하는 친구는 많이 없다.
덕분에 나는 학교에 갈 때마다 자존감이 뚝뚝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학창시절은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엄마가 보기 드물게 자존감이 매우 높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가끔 무례할 정도로 당당했지만 동시에 은근한 배려를 배풀 줄 알았다. 그런 성격 탓에 어딜가도 주변에 사람이 넘쳤다. 소심한 아빠와 살면서부턴 무시받지 않기 위해 더 당당하려 노력했다. 난 그런 엄마를 보며 스스로 떳떳한 사람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키가 자라고 운동으로 땀을 흘리는 법을 배우면서 냄새는 사라졌다. 비록 낮은 자존감의 냄새를 맡은 승냥이들이 가끔 들러붙기는 했지만, 그런데로 살아갈 만큼 무뎌지기도 했다. 그쯤이었다. 엄마가 무너지기 시작한 게.
엄마는 술을 좋아했다. 특히 겨울이면 술잔 위를 거울 삼아 반대 모습을 빗겨 보곤 했다. 그때는 홀로 높은 해일도 받아낼 것 같은 당당함이 잠시 고도를 낮추는 시기였다.
그럴 때 엄마는 잠든 나를 붙잡고 눈물을 보였다. 마음이 어렸던 나는 늦은 밤 잠에서 깨는 것도, 내게 슬픔을 투영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말했다.
“엄마, 난 엄마가 밤에 술마시고 나 깨우는거 싫어”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는듯 가볍게 대답했다.
“그래 노력할게”
이후 엄마가 나를 깨우는 일은 사라졌다. 나는 내 합리적인 직언이 엄마의 나쁜 습관을 없앴다는 생각에 조금 우쭐했다.
내가 성인이 되자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일들이 점차 줄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많은 부분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열심히 쳇바퀴 굴리며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어느 겨울 엄마는 말했다.
“나도 이제 여자처럼 살고 싶어…”
엄마는 그때도 술을 마신 상태였다. 짜증이 몰렸다. 정신 하나 다잡지 못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더 정확히는 내 기억(편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엄마, ‘여자처럼’이 뭐야?”
“당당하게 사는데 남자, 여자가 어딨어?”
“엄마처럼 사는게 남들보다 더 대단한거야”
생각 대신 머리만 커버린 아들은 뭐든 대단한 거처럼 쉽게 떠벌렸다. 엄마와 아들이라는 지극히 불평등한 관계 위에서 남녀평등을 외쳤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 또 내 쪽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모진 세월 치뤄야 했던 모난 이야기들은 생각치 못했다. 그래서 그 생각처럼 짧은 세치 혀를 놀리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
살얼음판 같은 아들의 판단 위에 누구보다 솔직했던 어머니는 이야기 꺼내는 걸 주저하게 됐다. 솔직히 그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 당당했던 어머니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온갖 종류의 ‘독한 여자’라는 표현을 들어야 했다.
친정에서 들려온 아쉬운 소리를 매정하게 끊어내야 했을 때
시댁에 말 꺼내는 게 어려운 남편을 위해 대신 입을 열어야 했을 때
새벽일 마치고 돌아와 엄마만 찾는 아들의 생떼를 온몸으로 거절해야 했을 때
그 외 가슴을 조여오는 모든 순간에서 시간이 갈수록 짙어지는 지독한 상처가 남았다. 그때 어머니가 냈어야 했던 신음은 내 잘난 충고에 막혀 겨울 바람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구멍 뚫린 어머니의 자존감은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녀의 삶은 그만큼 아슬아슬하고 절박하게 이어져 왔다.
고작 냄새에 눈치를 보고 세상을 짊어진 듯 살았던 나는, 그래서 어머니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나는 어머니가 몇 년에 한 번 약해지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나에게 어머니의 노력은 내 냄새보다 가벼웠고 매년 겨울이 지나는것보다 당연했다.
그때 난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어느 무덤가의 흙내가 너무 슬퍼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