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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실 Apr 11. 2021

눈물은 원래 차갑다

[명절, 후회, 쿨]

명절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핑계로 조금 일찍 집에서 나와 친구들을 만났다.


그 말은 내가 만날 친구들도 일찍 집에서 출발(도망)했다는 말이다.


초 저녁쯤 슬금슬금 모인 친구들은 당연스레 명절 하소연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하 그 놈의 취직 얘기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아니 누군 놀고 싶어서 노냐고. 애초에 맘 편히 놀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취업준비 하는데 왜 일년에 몇 번 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몇 분 얘기들은 걸로 마냥 논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뭔 말을 하던 그냥 답은 정해져 있는 거지 원..."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였다.


당연히 우리 중 가장 큰 타깃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어색함은 없었다.


"야 너도 일 다녀봐서 알잖아. 일해도 '이직 생각은 있냐', '이제 자리 잡았으면 결혼 준비해야지', 끝도 없어 끝도. 그냥 우리 나이 대 사람들이 마냥 부족해보이고 그래서 그런다 해야지"


다른 친구가 짐짓 적당히 위로하며 화제를 전환하는 듯 했지만 한편으로 연봉, 결혼 문제를 꺼내들며 불을 지폈다.


그러자 또다른 친구도 장작을 쏟아냈다.


"그것도 그래. 난 솔직히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하는 거? 좋지. 근데 지금 우리 사는 게 매달 나가는 월세, 공과금에 빚 갚는 거 빼면 남는 거 얼마나 된다고. 나는 이 쥐꼬리로 나 하나 감당하기도 바빠.”


“나도 혼자 사는 거 외롭고 싫으니까 나한테 쓰는 거 포기할 수는 있겠는데 포기하면 감당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잖아. 내가 포기한다고 결혼을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지 많은 거 바라고 싶지 않다."


이후부턴 불행 경쟁이었다.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 겨뤄 값을 치루지 않아도 되는 위로를 얻기 위해 치열한 침을 튀겼다.


나는 그 사이 아무 말이 없었다.


적당히 악에 받친 토악질을 쏟아내던 한 친구가 한참이 지나서야 내 상태를 살폈다.


"야 넌 왜 말이 없어? 무슨 일 있어?"


"아니 난 별일 없어. 우리 집에선 서로 일이나 결혼같은 거 안 물어보거든."


그때 주변 시선이 조금 달라지는 걸 느꼈다. 혹여 가장 강력한 불행 경쟁자의 출현이라도 나올까 걱정 반 궁금 반으로 가득했던 눈빛들은 이내 안도와 편안함으로 변했다.


"이야 니네 집은 좋다. 어른들이 깨어있네. 그래서 니가 맨날 좀 쿨하구나"


부러움이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잘못된 타이밍에 잘못된 시선이 덧씌워져 버린 탓이다.


"흠 그런가"


왠지 그 반응에 선뜻 당당히 가슴을 펼 수 없었던 나는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 말에 반쯤 귀가 쫑긋 솟은 듯한 낮은 자세를 취했다.


그래야 내가 다치지 않을 것 같았다.


"야 당연하지 #$#@$$"


역시 오산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명절 잔소리가 내게 쏟아졌다. 마치 너만 이 수렁에서 빠져나가선 곤란하다는 듯 했다.


그렇게 적당히 이야기를 흘려보내니 시간도 같이 흘러갔다.


"나 먼저 간다."


누구 하나가 광기 어린 감상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사고로 내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 풋풋했던 예전 모습을 주워 담고 냉소적인 어른이로 돌아갔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다들 잘 가라"


나는 그렇게 훌훌 털고 일어나는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 마음의 정체와 마주했다.


사실 우리 집 친척들이 서로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건 누구하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기준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혼, 빚, 실패.


어쩌다 보니 친척 모두가 인생에 남을 상처 하나씩 가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을 지적할 여유도, 용기도 없었다.


그저 명절 만큼은 아무일도 없던 듯 남들처럼 가족과 모여 서슬퍼런 세상의 잣대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이다.


눈에 띄는 '흠결'이 없는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결혼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 본인께서는 그 '속박'이 그렇게나 싫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침묵한다.


이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친구들이 그러했듯 동경이 뒤따른다. 비혼이 인정받는 이 시국에 맞는 신세대 부모님이란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신세대가 아니다. 지금과 전혀 다른 가치관과 경험이 켜켜이 쌓인 세대인데도 신세대처럼 생각한다.


아이 같지 않은 아이, 노인 같지 않은 노인.


어느 세대던 보통 세대의 그들과 다르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어머니가 나에게 결혼을 하지 말라는 건 본인께서도 결혼을 후회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결혼이란게 지금 내 존재의 이유다.


어머니가 시간을 돌려 결혼이란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다. 그건 어머니도 잘 알고 있을거다.


적어도 지붕 속 가정이 아닌 머릿속 가정법에서 만큼은 나보단 어머니 본인이 더 애틋했으리라.


그걸 원망할 수는 없다. 다만 슬퍼하지 않을 수도 없다.


존재의 이유를 후회당하는 슬픔은 그 무엇보다 무겁다.


나는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위험한 도박을 찾는다.


"엄마 그럼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결혼 안 할 거야?"


"안 해. 그때는 나를 위해 살아볼거야"


그 말이 너무 진심이란 걸 알기에 차마 "그럼 내가 없을텐데 괜찮아?"라는 말 따윈 나오지 않는다.


그걸 가볍게 꺼내 보일 수 있는 마음의 공간도, 내 존재를 부정하지 말아달라는 이기심 어린 부탁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주변에선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쿨'하다는 이유로.


그게 쿨한 거라면, 눈물은 원래 차가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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