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노잼, 흔들림]
친구와 게임을 몇 판 한 뒤 피시방을 나섰다. 나는 게임에 취미가 없지만(정확히는 무엇도 열렬히 좋아하지 않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그 친구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역시 게임을 하면서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자신이 즐겁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그는 기도하듯 연신 '꿀잼'을 되뇌었다. 개선장군처럼 "왔노라, 했노라, 재밌었노라"를 외치기도 했다.
컴퓨터로 가득 찬 피시방은 따듯하다 못해 더울 지경이었다. 건물 밖까지 나가니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장시간 게임을 했더니 머리가 띵하니 흔들리고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어 졌다.
"배고프니까 떡볶이나 먹으러 가자"
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굳이 '떡볶이나'라고 부르며 폄하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친구의 답은 더 가관이었다.
"야 뭔 떡볶이야 그건 초딩이나 여자애들이 먹는 거지 걍 짱깨나 때리자"
놀랍게도 그는 고작 한 호흡에 어린이와 여성, 중국인을 동시에 비하했다. 내 음식 취향을 비하한 건 덤이다.
그런데 왠지 그 말에서 내가 '떡볶이'를 굳이 '떡볶이나'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그의 말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했다. 만약 여기서 내가 반박을 한다면 그는 나를 '노잼' 혹은 '씹선비'라고 부르며 조롱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꿀잼'이 돼야 했다. 적어도 '노잼'은 되면 안 됐다. 그래서 나는 떡볶이를 포기했다. 그리고 떡볶이를 보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추억도 포기했다.
나는 그를 따라 중국집(그의 표현으로 짱개집)에 갔다. 그는 당연스레 "술 한잔 할 거지?"를 물어왔다. 거듭, 나는 '노잼'은 되면 안 됐다.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막상 잔이 채워지니 한 잔 두 잔 비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시야가 흔들리고 짜장으로 검게 물든 접시가 보였다. 곧 초등학교 졸업식에 짜장면을 먹었던 게 떠올랐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졸업식 전날 부모님은 술을 마시고 크게 다퉜다. 나는 새벽까지 이어진 싸움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어떻게 치렀는지 모를 졸업식이 끝나고, 부모님은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며 미안한 마음에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굳이 저항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의미 없이 오고 가는 말들 속에 젓가락이 흔들릴 뿐이었다. 그때도 '노잼'은 되고 싶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부모님은 숙취로 골아떨어졌다. 밤을 지새운 나는 한동안 베란다 밖에서 흔들리는 햇살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열어본 졸업식 사진 속엔 그날의 기억이 선명했다. 연신 변기를 붙잡고 토를 했던 아버지는 핼쑥한 모습이었다. 과음으로 얼굴이 퉁퉁 부은 어머니는 한겨울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내 작은 눈이 더 작아져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졸업식 사진을 열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나는 내 졸업식 사진을 포기했다.
자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오늘 인심 좋은 분식집 아주머니가 건네주던 푸짐한 떡볶이와 거기에 담긴 따듯한 친절을 접어두었다. 대신 내가 '노잼'이 되지 않기 위해 택한 것은 거무튀튀한 기억이 묻은 짜장면과 어른이 되면 절대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술이었다.
그러자 문득 한 가지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그렇구나.
나는 오늘 나이기를 포기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