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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30. 2023

청년 노동자 분쟁대응과 노동조합의 역할

'일'과 '문제' 그리고 '개인'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그 문제를 마주하는 ‘개인’


  지난 주 목요일 퇴근시간이 한 참지난 저녁 9시 노동상담이 들어왔다. 광주청년유니온이 열었던 행사에 참여한적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이 분은 식품제조공장에 다니고 있다는 50대 남성이었다. 늦은시간 연락하여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고 한 시간 가까이 통화를 하였다. 취업한지 두달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공장의 휴업일이 늘어나 제대로된 월급을 받기 어렵고 임금은 최저임금을 아주 조금 상회하는 정도 수준이었으며, 상시근로자수는 15명정도로 10인 이상 기업이었지만 취업규칙은 존재하지 않았고 근로계약서도 취업한지 두달이 지나서야 작성하였고 내용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싸인만하고 사측에서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공장상황이 좋지 않아보였고 아주 사소한 이유들로 계속해서 사유서를 작성하게 하고 사직을 종용하였다고 한다. 노동청에 신고를 하겠다고 말하니 그만두라고는 말은 하지 않지만 다음주 월요일에 인사위원회를 개최한다고 하였고, 금요일 비슷한 방식으로 함께 일하는 여사님이 해고를 당하셨다고 한다.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으며 통화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드리는 가운데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가 있다. ‘오늘 통화를 통해 제가 궁금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너무 잘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분은 지역에 노동센터에 전화하여 상담을 하셨다고 하였지만 너무나도 불성실하게 답하는 직원 때문에 실망감이 크셨다고 한다.그리고 6시 전에는 공장에서 핸드폰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상담을 받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내가 한 것은 상황을 충분히 들어드린 것과 해고와 관련된 일반 법률의 규정과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규정, 그리고 대처 방법 등을 말씀드린 것 뿐이었다. 


  이 분은 청년노동자가 아니다.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를 토론문의 상당을 할애한 이유는 청년유니온 활동을 하며 만나는 청년 노동자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과 유형과 형태의 상이함이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일’의 터전은 녹록치 않다. 유니온이 주목하고 만나고자 하는 청년들의 경우 대부분 ‘큰’ 일터보다는 ‘작은’ 일터에 위치해 있으며, ‘갑’보다는 ‘을’, 아니 ‘병’ 또는 ‘정’의 위치에 놓여져 있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그리고 그 ‘정’자와 ‘비정’자를 붙이지도 못하는 프리랜서, 플랫폼, 특수고용, 5인미만 사업장, 초단시간 노동, 현장실습, 교육생, 취업준비 등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으며, 이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가장 기초적인 규칙인 ‘법률’이 존재하지만 와닿지 않는 상태에 놓여져 있다. 


  ‘일 터’는 우리가 일생을 보내는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공간으로 ‘삶의 터’이다. 하지만 ‘삶의 터’라는 단어가 보여지는 따듯함은 온데 간데 없으며,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은 일을 하되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 언제 해고되어도 어떠한 문제도 없는 사람, 언제 사고가 일어나 죽음을 마주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근로계약은 ‘인간’이라는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권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말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은 것인 현실이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 ‘중대재해 처벌법’ 이 세가지 법안은 너무나도 상징화 되어버린 죽음들 위에 만들어진 법들이다. 죽음들 위에 만들어진 법임에도 여수의 홍정운군은 현장실습을 하다 죽었으며, 광주 광산구의 해양에너지 회사를 다니던 청년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 


  ‘최저임금’, ‘임금체불’, ‘주휴수당’, ‘근로계약’ 초창기 유니온의 슬로건이었던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 침해부터 ‘감정노동’, ‘폭행’, ‘성범죄’, ‘괴롭힘’, ‘중대재해’까지 우리가 대변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노동환경은 험난하기만 하지만 여전히 청년유니온 아니 노동조합은 이들을 여전히 ‘개인’으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은 잘 알지 못하며(무지하며), 저항 할 수 없으며(무력하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게 놓쳐버린 수 많은 ‘개인’들이 떠오른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문제’. ‘분쟁’,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


  2020년 9월 광주시립극단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조연출과 배우 들을 만났다.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불공정계약, 보험 미가입, 계약서 미작성 등등 노동인권침해의 종합판이 그곳에 있었고 이들은 이를 고발한 이들이었다. 그렇게 광주청년유니온은 광주시립극단대책위를 구성하였고, 기자회견, 노동청, 국가인권위 고발, 1인시위, 미디어 출연, 항의방문, 점거, 민사소송까지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청은 전국 최초로 프리랜서 배우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며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을 인정하였고, 광주시와 가해자들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은 광주시의 공식 사과문 발표로 합의에 과정에 이르렀으며, 시의회와 함께 예술인의 권리와 지위를 보장하는 취지의 조례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고, 대책위 활동을 하며 주장했던 ‘예술인 권리 보장법’이 제정됨에 따라 조례 제정을 위한 TF를 구성하는 것을 논의 과정 중에 있다. 


  숨가쁘게 달려온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정말 다행히도 배우들은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 중 한 배우이자 광주청년유니온 조합원은 지금 전국 순회공연을 진행하고 있는 함께하는 연극 전태일의 1번 전태일로 연기를 하고 있다. 많은 성과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있는 한 마디가 있다. 전태일로 출연하는 이 조합원과 함께 회의를 하던 중 ‘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바뀌는 시늉이라도 할까요’라며 간절한 심정을 털어놓았을 때이다. 


  우리는 한 개인의 삶을 구해내기 위해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의 삶을 둘러싼 구조를 읽어내리며 이를 사회문제로 대두시키고 변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는 때로 너무나도 지난하고 누군가에게는 파괴적이며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지나온 1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그에게 있어 결코 나와 같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잘 이해해야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내야한다.


  광주시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던, 국민은행 청원경찰로 일하면서 고객에게 폭행을 당했으나 경기도로 부당전보를 당했던, 의도적인 직장내 괴롭힘으로 사직을 종용받고 있는, 말도안되는 무자비한 폭력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말도안되는 계약조건으로 감금되어 일하고 있었던 청년들, 파쇄기에 몸이 끼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죽을 수 밖에 없었던 25살 청년 장애인 노동자까지 지금까지 광주청년유니온이 마주하였던 청년 노동의 현실이 그러하였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같다고 그랬던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이 사회는 멈추었다고 하지만 이 사회의 멈춤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있었으며, 그 멈춤이 없는 가운데 여전히 그 비극적인 영화는 상영되고 있었다. 때로는 이 영화의 관객으로서 때로는 이 영화의 보조출연자로서 광주청년유니온은 함께했다. 그렇게 함께하는 가운데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정말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함께 싸워주는 ‘조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어찌보면 ‘송곳’과같은 이들은 날카롭지만 단단하다는 것. 


  광주청년유니온이 엄청난 단체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유니온을 통해 상담을 신청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년이다. 그리고 이들은 어떠한 종류의 ‘문제’ 또는 ‘갈등’ 또는 ‘분쟁’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한 자문, 도움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연차수당, 퇴직금, 근로계약, 임금체불 등 간단한 자문부터 누군가 곁에 서서 싸워주어야만 하는 이야기 까지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뭐부터 해야하는지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다. 


현장이라는 무기를 들고 어떻게 변화를 조직할 것인가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이 사회에는 현장의 문제를 발굴하고 대변하며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매우 적다. 우리의 역사가 짧으며 뿌리가 얕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유니온이라는 조직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대변되지 못하는 이들을 호명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변화를 조직하고자 하는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일궈가기 위해 수많은 활동가들이 헌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노동조합의 역할은 무엇인가? 두 말하면 입이 아프겠지만 ‘개인’이 아닌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조직’하는가?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조직’을 통해서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2010년 탄생하여 구직자를 포함한 청년세대의 보편적 노동권리를 이야기한다는 정체성으로 출발하였으며, 기존의 노동조합에 조직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변화를 만들어왔다. ‘주휴수당’이 그랬고 ‘배달 30분제’가 그랬으며 ‘미용실 실태조사’가 그랬고 ‘패션어시’가 그랬다. 


  그렇기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조직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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